무작정 떠나 더 재밌다! 1박 2일 제천, 단양여행

결혼 후로는 매년 추석 두 주 전에 찾게되는 제천. 

늘 '벌초'를 이유로 떠나지만, 10년째 여전히 철없는 며느리는 그저 콧바람 쐬는 것에 신이 난다. 


느릿느릿 여름을 나고있는 산과 들, 강변을 끼고 달리는 탁 트인 도로, 이따금씩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오토바이들의 행렬에 내 자유로운 영혼을 실어 보낸다. 


사실 오늘 이야기는 무려 한 달이나 지난 제천, 단양 여행기다. 그냥 스킵할까 했지만, 꼭 기억하고 싶은 마음에 더 늦기 전에 포스팅 해 본다. 




청명한 하늘과 탁 트인 도로, 강변을 낀 드라이브 코스. 이런 길을 달릴 수 있다면 누가 벌초를 마다하겠는가~ 

(물론 내가 풀을 베지 않아서 하는 말이지만... 풀은 베지 않아도 아침 일찍 음식을 마련하니 쎔쎔!) 


▲ 금강산을 닮은 금월봉에서. 손자 손녀 사랑이 지극하신 아버님 


벌초 후, 시간이 남으면 시가의 친척댁에 방문하거나 계곡에서 도랑을 치고 놀곤 한다. 

올해는 시부모님, 시동생과 함께 잠시 주변 관광을 하기로 했다. 


▲ 청풍 문화재 단지

이미 해가 뉘엿뉘엿했지만, 올 봄에 가려고 했다가 벚꽃축제로 통제되어 들르지 못했던 청풍문화재단지로 서둘러 떠났다. 예로부터 청풍은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많은 문화 유적이 있었다. 그러나 충주댐 건설로 많은 곳이 수몰되었다. 청풍문화재 단지는 수몰전에 지역의 향교, 관아, 민가 등의 문화재를 원형 그대로 현재 위치에 이전, 복원해 조성해 옛 제천, 단양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한적한 민속촌 같은 분위기. 아이들이 민가에 관심을 보여 직접 내부에 들어가 보기도 했다.


▲ 청풍 문화재 단지 내 민가


민가 4채 안에는 가마솥, 부지깽이, 멍석 등 생활 유품이 1,600여 점이나 전시가 되어 있었다.
아이들이 궁금해 하니 수몰 전, 제천에서 청년기를 보내셨던 시부모님께서는 물건 하나하나의 쓰임새를 설명해 주셨다. 


수몰 직전 마을의 모형을 전시해 놓은 박물관에서는 어머님께서
"내가 여기 포목점에서 미니스커트를 해 입고, 혼날까봐 장독대 뒤에 숨겨놓곤 했는데" 라며 추억에 잠기기도 하셨다는. 

어머님의 핑크빛 꽃처녀시절 이야기를 듣는 건 언제나 재밌다.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알 리가 없는 다섯 살 둘째 군은 그저 분위기 만으로도 무섭다고 난리. ㅎ



길을 따라 언덕을 오르니 청풍대교가 한눈에 들어오는 팔각정이 있다. 

고장이 났는지 동전을 넣지 않아도 멀리까지 잘 보이는 망원경으로 경치를 보고,



다시 카메라에, 눈에 담아본다.



"어디서 저녁이나 먹고 올라가자~"

"송어회 어때? 토종닭 잘 하는 데도 있는데?"


저마다 의견을 내다가 결국 싸온 음식도 해결할 겸, 시원한 계곡에 자리를 잡기로 했다. 

그러나 시골의 밤은 빨리 오는 법. 해가 넘어가자마자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이대로 계곡에서 저녁을 먹다가는 상을 치우기도 전에 깊은 밤이 될 것이 뻔했다. 



라이트를 설치하고 돗자리를 펴는 동안 나는 부리나케 주변을 탐색했고,
눈에 띈 민박같은 팬션의 사장님과 가격을 흥정했다.



그렇게 자리잡은 계곡 근처의 보금자리(?).
마침 새로 지은 팬션이라 예약이 다 차지 않았고, 시설도 깨끗하고 새것이었다.   



가장 좋았던 건 이렇게 평평한 바위가 완만하게 깔린 얕은 계곡이 곁에 있다는 것.

여름이라면 너무나 좋은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었겠지만, 가을의 문턱이라 물이 너무 차서 손을 담궈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내년 여름을 위해 일단 찜꽁~!



무작정 잡은 숙소지만, 가족 모두가 대만족이었다.
공기가 좋아서인지 숙면을 취하고 다시 나들이에 나섰다. 

폭신한 양털처럼 고운 숲으로 뒤덮인 고수대교를 지나면~ 


▲ 지갑에 고수동굴 스탬프를 찍는 진아. --;


깊은 산 속에 옹달샘, 아니 단양 고수동굴이~! 

아이들은 '동굴'에 들어간다는 것 만으로도 무척 설레어 했고, 마침 입구에는 스탬프를 찍을 수 있는 곳도 있어서 더욱 재밌어 했다.  



나는 어릴적 수학여행으론가 가 보고 처음이었다. 원래 이렇게 긴 코스였던가?



종유석과 석순, 석주들로 화려하게 장식된 고수동굴. 아름답기도 하고 기괴하기도 하고. 



다리 아프신 시부모님께서 괜찮으실까 걱정도 됐지만, 그보다 오랜만에 찾은 고수동굴 체험을 즐기시는 듯 해서 무척 다행이었다.


고수동굴 다음 코스는 '구인사'


구인사는 불교의 한 종파인 천태종의 총본산으로 아버님께서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라고 하셔서 들렀다. 

사진에 보이는 곳 까지는 주차장에서 셔틀 버스를 타고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정상까지 오르는 길이 만만치 않다. 보통의 사찰과는 다른 대단한 규모의 현대식 건물들을 구경하며 일주문, 사천왕문을 지나면 승려 및 신도의 교육을 위한 시설과 대강당, 기도실, 도서실 등이 차례로 나온다.



몇 천명의 신도가 함께 식사할 수 있다는 공양간 앞에서는 신도들의 식탁을 책임질 어마어마한 숫자의 장독대도 만날 수 있다.



정상에는 '대조사님 탄신 100주년 법등 해설'이라는 탑(?)이 있고, 



그 맞은편에는 천태종을 창시하고 구인사를 창건한 대조사가 모셔져 있는 대조사전이 있다. 


사실 여기서 내가 살짝 놀랐다. 가장 높고 좋은 곳에 부처가 있는 여느 불당과는 달리 상월원각 대조사의 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1911년 강원도 삼척에서 태어난 대조사는 열반에 올라 부처와 같은 지위를 가지게 되었다고 수행중인 신도가 우리에게 귀뜸해 주었다. 



대조사전 마당에서 내려다본 구인사의 아름다운 풍경.



절에 왔으면 약수 한 그릇~! 불심 깊은 신도들이 약수터 위에 각종 불상과 염주를 올려 놓았다.



대법당 앞에 선 아들은 아버지의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고, 



며느리는 오랜만에 손 한번 잡아보시라며 등을 떠민다.



"이미 차가 막힐 시간이니 조금만 더 있다 갈까?"

핑계는 그랬지만, 다들 옛 생각도 나고 오랜만에 나온 나들이를 조금 더 즐기고 싶었던 것 같다.


단양 시장에서 요기를 한 우리는 계단참에 앉아 패러글라이딩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보며 그저 앉아 있었더랬다.



역시나, 막히는 고속도로. 

그래도 무작정 떠나 더 재미있었고, 왠지 짠하고, 왠지 먹먹한 그런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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