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0년 전통의 초밥 도시락, 보우스시

야근 후 빈집에 들어와 홀로 끼니를 때우려던 어느 날 저녁, 가나자와로 온천여행을 다녀오신 부모님께서 깜짝 방문을 해 쇼핑백 하나를 놓고 가셨다. - 평소 일본 출장이 잦으신 부모님 덕에 난 어려서부터 일본 장난감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더 이상 장난감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나이가 되자 부모님께서는 입이 즐거워지는 선물을 하나씩 사오기 시작하셨는데 요즘은 결혼한 딸내미를 위해 우메보시 같은 반찬거리를 사오곤 하신다.-
기대에 찬 눈빛으로 쇼핑백을 들여다보니 잘 포장된 도시락이 하나 보인다.

냄새를 맡아보니 시큼한 것이 김초밥 같기도 하고... 일단 포장을 풀어본다.

벗기고 벗겨도 끝없이 나오는 정성스러운 포장. 그 정성스러움 앞에 숙연한 기분마저 들었다.
나무껍질을 묶은 매듭을 풀고 속지를 벗겨내자 롤케익 같이 길쭉한 초밥의 자태가 드러났다. 초밥을 싸고 있는 죽순(?)을 걷어내니 하얀 광어살이 보이고, 그 속엔 배합 초로 양념 된 밥알들이 차지게 뭉쳐 있었다.

근데 이걸 일본에서부터 가져왔단 말인가? 비행기 타고 몇 시간을, 상온에서?


생선 초밥은 시간이 지나면 금세 상하게 되어 도시락으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 시큼한 냄새를 의심하며 안내서를 보니 신선함이 생명인 보통 초밥과는 달리 보우스시는 만들 때부터 오랜 시간을 숙성시켜 장시간 보관이 가능한 초밥이라고 한다. 가나자와에는 일본의 3대 시장 중 하나라는 '오미쵸 시장'이 있는데, 시장이 처음 생기던 280여 년 전부터 상인들의 도시락으로 사랑받던 초밥이 바로 이 보우스시이다. 

보우스시에 쓰이는 생선은 오미쵸 시장에서 공수한 싱싱한 생선으로 2시간 정도 소금절이를 했다가 30분 동안 깨끗한 물에 씻어 하룻밤을 재우고, 다음날 20분간 식초에 담갔다가 꺼내고서 다시 하룻밤을 숙성시켜 만든다. 밥은 배함초로 반죽해 나무틀에 채우고 누름쇠로 눌러 반나절 정도 지난 것을 쓴다. 재료의 특색을 살리기 위해 생선에 따라 다시마나 죽순, 나무껍질 등을 초밥위에 올리기도 하는데, 이런 것들이 숙성되는 과정에서 감칠맛을 더한다고 한다.

만드는 과정이 까다롭고 오래 걸려 숙성 초밥은 '만든다'는 표현보다는 오히려 '담근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초밥을 '담근다'라고 하기도 한다는데, 숙성초밥에서 유래한 표현이라고 한다. 이 지방 요리사들은 즉석 초밥을 마치 인스턴트 식품처럼 생각하기도 한다고.  

이제 오해를 풀고 보우스시를 시식해볼 시간. 동봉된 작은 칼을 이용해 한 입 크기로 잘라본다.

오랜 시간을 숙성시켜 만든 스시는 향만큼이나 그 맛과 풍미가 상당히 다르다. 갓 잡은 싱싱한 생선의 쫀득하고 깨끗한 맛도 좋지만 처음 맛보는 부드러운 숙성 초밥은 정성이 느껴지는 장아찌 같은 맛이랄까... 생선 고유의 맛은 상대적으로 덜하지만 잘 배합된 재료에서 우러나오는 깊은맛이 있었다. 

시기별로 제철 생선을 맛보면 좋을 것 같다.  아무리 숙성초밥이라도 여름엔 불에 구운 장어가 좋구나. ㅎㅎ 

이 정도의 포스라니 가나자와를 한번 가봐도 좋을 것 같다. 여행을 부르는 여행자의 선물. 맥주를 부르는고나~

[Tip]
* 보우스시 홈페이지: www.bouzushi.com
* 가나자와 관광청(한국어): http://www.kanazawa-tourism.com/korean/
  우리에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가나자와는 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역으로 풍부한 해산물로 유명하다. 
  이지역의 초밥과 가이세키 요리는 신선한 해산물이 듬뿍 들어가 있으면서도 가격이 착해 일본에서도
  손꼽힌다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