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정취 물씬 풍기는 서울성곽 도보여행

온 나라가 걷기 열풍입니다. 걷기와 문화 답사를 결합한 '도보 여행'은 요즘 새로운 여행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는데요. 이미 잘 알려진 제주 올레길이나 지리산 둘레길 외에도 가까운 한강둔치나 남산 등 주변의 걷기 좋은 곳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그린데이도 얼마 전부터 주말마다 서울시내의 도보여행지를 찾아다니며 가을 정취를 만끽하고 있는데요. 최근에는 예능 프로 '1박 2일'에 방영되어 더욱 유명해진 서울성곽 길을 다녀왔습니다.


보물 1호 흥인지문(동대문)

서울성곽길은 4대문인 숭례문(남대문), 흥인지문(동대문), 숙정문(북대문), 돈의문(서대문)과 4소문인 창의문, 혜화문, 광희문, 소의문을 포함해 한양을 둘러싸고 있는 18.7Km 서울성곽 둘레를 걸으며 그 안에 깃든 역사와 문화, 생태를 느껴보는 산책로입니다. 이곳에는 국보 8개를 포함해 총 169개의 문화유산이 곳곳에 위치해 있어 성곽길을 걸으며 역사의 어제를 들여다 볼 수 있는데요.

특히 가장 아름답다는 숙정문에서 북악산까지는 청와대 가까이에 있어 수년간 출입이 통제된 구간이었는데, 2006년 숙정문에서 창의문으로 이어지는 북악산 내 성곽길이 개방되고, 이어 올해 2월 말 와룡공원에서 북악산길로 이어지는 북악하늘길이 개방되면서 비로소 전체 성곽길이 원래의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고 합니다.

서울성곽길 초입에 있는 안내지도. 길을 잃지 않도록 중간중간 안내가 잘 되어있다. 

서울 성곽 산책로는 4대문 근처에 있는 남산, 낙산, 북악산, 인왕산을 기준으로 1~4코스로 나뉩니다. 저는 첫 코스로 경사가 완만해 산책삼아 다녀오기 좋다는 낙산코스(동대문~혜화문)를 선택했습니다. 

지하철 1호선 동대문역에서 내리면 서울성곽길 안내표시가 있고, 성곽 둘레로 난 산책로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성곽길 초입부터 길게 늘어진 울긋불긋한 담쟁이 넝쿨이 가을의 정취를 더합니다.

신이 난 아이는 잎들을 모아 던지며 낙엽놀이에 여념이 없습니다.  

잘 포장된 산책로를 따라 걷는 낙산코스는 경사가 완만해 아이가 걷기에도 무난합니다. 그래서인지 구두를 신고 한껏 멋을 낸 연인에서부터 가족단위 여행객, 나이 지긋하신 노인들까지 이 곳을 찾는 분들의 연령대도 참 다양합니다.

천천히 걸으며 만나는 서울의 구석구석은 참 여유롭고 새롭습니다. 성곽 근처에는 동대문 역사문화공원이나 전태일 거리 등 서울의 역사를 볼 수 있는 곳이 많아 한 번쯤 시간을 내서 둘러봐도 좋을 것 같더군요.
 
성곽 주변에 삶의 터전을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 문틈으로 보이는 마을 풍경이 사뭇 정겹습니다. 고즈넉한 마을을 걷다 보니 심신의 피로가 풀리는 기분이 듭니다.
 
성곽 안쪽으로 들어서니 지대가 꽤 높은 오르막길이 펼쳐집니다. 성곽은 이렇게 내벽과 외벽으로 나뉩니다. 오래전에는 보초를 서는 군인들이 내벽을 따라 이 길을 걸었겠죠. 주변에는 나팔꽃을 비롯해 도심에서는 보기 어려운 꽃과 풀이 피어나고, 성곽 너머로는 서울 시내의 모습도 조망할 수 있습니다.

낙산공원 팔각정

1시간여를 걸어 도착한 낙산공원 팔각정. 먼저 도착한 여행자들과 함께 간식을 나눠 먹으며 사는 이야기를 나눕니다. 도보여행이 좋은 점은 무엇보다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죠.

낙산에서 바라본 서울 풍경. 전쟁 같은 일상에서 벗어나 여유롭게 서울을 내려다보는 재미란~

정상에 다다르면 소음은 온데간데없고 새 지저귀는 소리만 들립니다. 서울에 이렇게 조용한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조용하고 한적한 길. 성곽은 전쟁의 역사를 거치며 부서지고, 보수하기를 거듭하며 얽힌 사연들이 참 다양합니다. 자세히 보면 쌓인 돌의 모양도, 그 색깔도 제각각입니다. 현재 남아 있는 성곽은 대체로 태조, 세조, 숙종 때의 것이라고 하는데, 그야말로 살아 있는 박물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성곽 외벽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재밌는 벽화들을 볼 수 있는데요. 아마 벽화로 유명한 이화마을이 근처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혜화문 쪽으로 계속 걷다 보니 무슨 이유에선지 길이 끊겨 있습니다.

바로 옆에 난 주택가 골목길이 한성대입구역으로 이어져 있어 어쩔 수 없이 돌아서는데, 이 골목 풍경 또한 재밌습니다. 좁은 내리막길 양쪽으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의 오래된 흔적이 참 정더군요. 다만 길이 매우 좁아 조금만 떠들어도 골목 전체에 울리니 지역 주민을 위해 기본적인 에티켓은 지켜줘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벌써 낙산 코스를 다 돌았군요. 이렇게 마무리한 주말 성곽 걷기 여행. 다음 주에는 북악산 코스를 도전해보자며 결의를 다졌다지요. 


걷기 좋은 계절, 가을입니다. 높푸른 하늘 사이로 비치는 가을볕이 따사로운 요즘, 잠시 자동차의 시동을 끄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천천히 걸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굳이 멀리 떠나지 않아도 우리 주변에 길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튼튼한 두 다리만 있으면 언제든 떠나고 쉬어갈 수 있으니 걷기 여행이야말로 가장 자유롭고 편한 여행이아닌가 싶습니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천천히 걷다보면 무심코 지나치던 주변의 풍경들도 이야기를 가진 멋진 길이 되어줄 것입니다. 

[Tip] 서울성곽 정기안내 프로그램
종로구에서는 10월 24일부터 12월 12일까지 서울성곽 둘레를 안내하는 '서울성곽 정기안내 프로그램'을 시범운영한다고 합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서울 성곽의 네 코스를 한 주에 한 코스씩 답사하며 성곽 전문가와 함께 문화재에 깃든 사연들을 이야기할 수 있다고 하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서둘러 신청해 보세요. 
(종로구 홈페이지(www.jongno.go.kr)에서 매회 30명씩 선착순 모집)

* 서울성곽 정기안내 프로그램
* 서울성곽 관광안내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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