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레메 파노라마, 요정 굴뚝 사이를 누비다

기대 없이 올랐던 우치히사르에서 뜻밖의 절경을 만나고 (지난 글: 카메라를 내려놓을 수 없는 곳, 우치히사르) 료이치와 함께 3Km남짓 떨어져 있다는 괴레메 마을로 향하는 길. 두 시간 남짓 걸어 마을 비슷한 곳을 만났다.

조각 천을 길게 찢어 나무에 묶어놓은 모양새며 낡은 상점들의 모습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시크릿 가든의 신비가든 같은 이미지가 풍기는 이곳에서 우리는 길을 물을 겸 좀 쉬어가기로 했다.  
 
상점 구석구석을 돌아보니 이곳의 독특한 정취와 어울리는 물건들이 꽤 있다. 터키 어디서나 쉽게 만날 수 있는 카펫도 여기서 만나니 마치 마법의 양탄자라도 되는 것 같았다. 진짜 마법이라도 부려 괴레메 마을까지 우리를 태우고 가면 얼마나 좋을까.

메블라나 댄스 (수피 댄스)를 형상화한 조각품들. 노천 시장에 놓이니 모두 하늘을 보고 있어 감동 두 배.

각종 골동품과 나자르본주의 푸른 눈이 돌가루 섞인 카파도키아의 바람과 함께 어우러져 마치 진짜 보물 상자에서라도 꺼내온 듯 느껴진다. 
  
알고보니 이곳은 '괴레메 파노라마(Goreme Panorama)'라는 이름을 뷰포인트였다. 요정의 굴뚝처럼 솟은 괴레메의 바위기둥들과 멀리 테이블 마운틴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으로 카파도키아를 찾는 여행객들의 필수 관광코스다. 보통은 여행사의 투어 프로그램을 통해 관광버스로 와서 잠시 머물다 가지만 우리는 괴레메 마을까지 걸어가야 했기에 방향을 확인했다. 저 멀리 돌기둥 너머의 마을이 바로 우리의 목적지. 설마 돌기둥 사이를 가로질러 가야 하는 건가? 

갑자기 어디선가 아저씨 한 분이 나타나서 추운데 차나 한잔하고 가란다.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동안 계속 우리 뒤를 쫓으며 말을 걸더니 둘이 커플이 아님이 밝혀지니 집요하게 나를 잡고 늘어진다. 해가 지기 전에 숙소에 도착해야 하고, 여기서 마을까지는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 상황이니 정중하게 차를 거절하고 길을 묻는데, 차를 마시기 전에는 알려줄 수 없다며 찬바람. 결국 그냥 마을이 보이는 방향으로 걷기로 했다.

나자르본주의 수호가 있기를... 요정의 굴뚝 사이로 들어서는 료이치와 나.

멀리서만 보던 돌기둥 숲으로 걸어 들어갈 때의 기분이란.... 두려움과 불안, 기대가 교차하며 형언할 수 없다.
  
한발 한발 뗄 때마다 이런 절경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제대로 가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점점 평온해지는 마음. 그때 멀리서 한 남자의 외침이 들려왔다. 틀린 길이라고...; 고개를 들어보니 차를 권하던 그 남자가 손짓으로 마을 방향을 일러주고 있었다. 의심이 들었지만 우리를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에 감사하며 일단 따라 가보기로 했다. 

바위 사이를 누비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사진에서는 웃고 있지만, 사실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 등산화 신은 긴 다리로 성큼성큼 바위산을 내려간 료이치와는 달리 청바지에 가벼운 스니커즈만 신은 나는 등산 준비가 전혀 안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침에 내린 비로 모래로만 이루어진 길은 질척하고 미끄러웠고, 바위는 무척 가팔랐다. 더구나 바위 사위로 부는 칼바람은 살을 에는듯했다.

힘든 길이 계속되는데도 포기하지 않고 걸을 수 있었던 건 이렇게 중간마다 마주치는 숨막히게 아름다운 자연이 있기 때문이었다. 정말 'beath taking'이란 표현이 어울리는 풍광.

이렇게 두 시간 남짓 걸었을까.... 멀리 내가 머무는 괴레메 마을이 보인다. 어찌나 반갑던지...

료이치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멋진 경험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괴레메 동굴숙소의 따뜻한 난롯가에서 몸을 녹이며 하루를 회상해 본다. 뜻밖의 멋진 풍경. 길 위에서의 만남과 헤어짐. 다양한 사람들의 천차만별 삶의 방식. 이런 매력에 여행은 계속 할 수 밖에 없는가보다.
그런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일일 가이드를 자청(?)했던 료이치에게는 고작 사과 한 개 나눈것 밖에 준 것이 없군... 메일로라도 다시 감사 인사를 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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