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를 내려놓을 수 없는 곳, 우치히사르

터키여행 8일 차, 카파도키아에서만 4일째. 계획대로 하자면 오늘 아침 페티예로 떠나야 하지만 기상 악화로 하루 더 묵는 중이다. 동행하던 친구를 먼저 한국으로 보내고 카파도키아를 좀 더 둘러보기로 했다.
 
숙소지기에게 추천받은 곳은 카파도키아에서 가장 높다는 '우치히사르(Uchisar)'. 해발 1,300m(한라산의 성판악 코스 높이)에 있는 세 개의 요새인데 비둘기가 많아 '비둘기 요새'라고도 불리는 곳이다. 구멍이 숭숭 뚫린 기암괴석은 그 자체로도 멋지지만 이곳이 유명한 진짜 이유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괴레메 마을의 전경이 아름답기 때문이라고. 

우치히사르 성채와 내 맘대로 일일 가이드 '료이치(20)'

괴레메 오토가르에서 돌무쉬를 기다리다가 한 일본인 청년을 만났다. 어디서 왔고, 얼마나 여행 중인지 같은 통상적인 여행자들의 대화를 나누다가 그가 마침 우치히사르로 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이드북 없이 지도만 하나 달랑 들고 출발한 나는 반가운 마음에 내 맘대로 그를 '오늘의 일일 가이드'로 선임했다.

돌무쉬에서. 멀리 우치히사르 성채가 보인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갑자기 터키 현지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동굴 매표소.

한눈에 보기에도 기괴한 우치히사르의 풍경이 담긴 티켓을 끓고 등산을 시작한다.

카파도키아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한걸음 오를 때마다 달라지는 풍경을 볼 수 있다. 바위에 파인 작은 구멍들은 오래전 이곳에 숨어 살던 수도사들이 비둘기를 키우던 공간인데, 바람에 깎여 모습이 완전히 드러나 버렸다.

정상에 다다르자 기괴한 바위들 사이로 아까 매표소에서 마주쳤던 터키 현지인들이 보인다.

몇 명이 다가오더니 같이 사진을 찍잔다. 이거 반대가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여행객은 우린데... 하지만 그들 사이에서 기꺼이 모델이 되어준다.

데린쿠유 지하도시에서 본 무덤 터가 여기에도 있다. 사람 하나 누울 정도로 파인 저곳이 모두 묘지다. 이들도 높은 산에 묘를 쓰는 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건지. 산 아래로 굽어보니 옹기종기 괴레메 마을과 함께 펼쳐지는 풍경이 예술이다.

사암으로 이루어진 산은 성분에 따라 각각 다른 색을 띈다. 철분이 섞이면 붉 색, 인이 섞이면 흰색, 황이 섞이면 노란색.
 
탄성이 나올 만큼 아름다운 경치. 내가 카메라로 이곳저곳을 담는 동안 스무 살 청년 료이치는 사색에 잠겼다. 가나자와 출신의 관광학도인 그는 방학 때마다 3개월씩 세계를 여행하고 있다고 했다. 터키는 이번 겨울의 두 번째 여행지로 이집트를 거쳐 왔다고. 아직 한 달이나 남은 여행일정에 남은 돈이 얼마 되지 않아 도보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는데, 그 용기와 젊음이 부러웠다. 스무 살에 경험한 혼자만의 도보 여행은 평생 값진 교훈이 될 것이 분명하기에...

내려갈때는 올라가던 길과 반대편으로 가게 됐다. 다시 돌무쉬를 타러 왔던 곳으로 돌아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나의 일일 가이드 료이치가 괴레메 마을까지 걸어갈 것을 제안한다. 3Km정도 되는 거리이니 충분히 걸을 수 있다는 거다. 까짓 거 료이치의 말동무도 되어줄 겸 걸어보기로 한다. (하지만 곧 후회했다. 산길 3Km는 정말 멀었다는...;)

이 개는 대체 어디서부터 따라온 건지.... 무서워 하는 나를 위해 개를 유인해 주는 상냥 청년 료이치. 

그런데 올라올때 봤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 구석구석 바위엔 구멍이 뚫리지 않은 곳이 없고, 그 사이를 도로와 풀밭이 메우고 있다. 바위 위로 아슬아슬 집들이 얹어진 모습이 신비롭기까지 하다.
 
끝없이 펼쳐진 동굴 수도원의 모습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더욱 신기한 것은 아직도 이런 동굴 집에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것.

빨랫줄에 널려 있는 옷가지들이며, 식수를 길어놓은 물통 등 삶의 흔적들이 보인다. 맘 같아서는 더 가까이 가 내부를 한번 보고 싶었지만 참기로 했다.

잠시도 카메라를 내려놓을 수 없는 멋진 풍경에 감탄하며 길을 걷고 있는데, 멀리 하늘에 수상한 물체가 보인다.

열기구 아니냐는 말에 걸음을 멈춘 료이치.

길을 내려서자 계곡을 따라 너무나 근사한 파노라마가 펼쳐지고, 그 위로 열기구가 하나씩 보이기 시작한다.

지난 글에도 밝힌 바 있지만 이번 터키여행은 카파도키아를 열기구로 날아보고 싶은 로망 때문에 시작됐다. 기상 악화로 연 나흘째 열기구가 뜨지 않자 나는 일정을 조정에 카파도키아에 몇일 더 묵어가기로 했다. 바로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바람이 심해 뜰 수 없다고 했는데... 그래서 친구는 결국 기구를 타보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갔는데... 어떻게 된 거지?


당장에라도 숙소로 달려가 따지고 싶은 심정. 하지만 괴레메 마을까지는 너무 멀었고, 이곳은 돌무쉬가 다니지 않는 한적한 도로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색색의 능선을 따라 사라져가는 벌룬의 모습을 아쉬움 듬뿍 담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뿐... 마음을 접고 보니 이 광경을 직접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멋진 경험이라는 생각이 든다.

점입가경, 가면 갈수록 아름다운 풍광에 눈을 뗄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이미 두 시간 넘게 걸었는데, 도무지 마을이 보이지 않는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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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1) 신년 계획중 하나인 터키 여행기 끝내기를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매주 1~2편씩 올릴 예정이니 많은 성원 부탁드려요. ^^;

덧2) 방문자수가 늘어 리퍼러를 봤더니 오랜만에 다음뷰 베스트에 선정됐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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