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뒷골목에서 마주친 러시아의 맛, 사마르칸트

'쓰빠시~바(Спасиб)', '즈뜨라스트부이쩨(Здравствуите)' 

곳곳에서 들려오는 낯선 외국어에 잠시 이곳이 러시아인가 하는 착각이 듭니다. 거리의 상점에는 키릴문자로 된 간판이 걸려 있고, 지나는 사람 대부분은 러시아나 중앙 아시아인들인 곳,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뒷골목에서 만난 생경한 풍경입니다. 

서울 한복판에 자리 잡은 러시아 마을, 어떻게 생겨났을까요? 열쇠는 시장에 있습니다. 동대문 시장을 드나들던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의 보따리상들이 시장 근처에 모여 살면서 그들만의 거리를 형성한 것입니다. 러시아로 의류와 화장품을 수출입하는 회사들이 생겨나고, 이들이 생활하는 주거지가 형성되자 근처에는 자연스럽게 고향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음식점들이 자리 잡게 됐습니다. 

가장 유명한 곳은 '사마르칸트'인데요. 7년 전 우즈베키스탄에서 이주해와 고향의 이름을 걸고 전통 음식을 만들기 시작한 이 음식점은 입소문을 타고 러시아, 우즈벡인들을 불러모으고, 별미를 찾는 한국인들에까지 유명세를 떨쳤습니다. 골목에는 벌써 세 개의 '사마르 칸트'가 생겼는데요. 한글이름은 '사마리칸트, 사마르칸트, 사마루칸트'로 다르지만, 알파벳은 SAMARKANT로 같은, 모두 한 가족이 운영하는 음식점입니다. (한국 간판업자가 발음을 다르게 표기했다는 웃지못할 에피소드가 있더군요.)

사마르칸트에서는 40여 가지의 다양한 러시아, 우즈벡 전통 음식을 맛볼 수 있습니다. 다년간의 화려한 러시아 출장 경력을 자랑하는 스티브와 함께 가장 대표적인 러시아 음식이라는 샐러드와 빵, 스프, 그리고 꼬치구이를 주문했습니다.

삼각형 페이스트리에 양념한 양고기를 넣어 구운 빵인 '삼사'. 손으로 찢어 매콤한 소스에 찍어 먹는 모양새나 듬뿍 든 고기 소가 빵이라기보다는 만두에 가까운 음식입니다. 인도의 사모사와도 비슷한데요. 내용물이 튼실해 간단한 한 끼 식사로도 괜찮아 보이더군요.


러시아 음식엔 술이 빠질 수 없죠. 짭짤한 삼사에 시원한 맥주 한잔 곁들이니 다른 안주가 필요 없습니다. 맥주가  제격이라는걸 증명이라고 하듯 옆 테이블 손님들은 퇴근길에 삼사에 맥주 한잔 걸치고 나가는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나온 채소가 듬뿍 들어간 고깃국 보르쉬. 보르쉬는 소고기 국물에 비트를 잘게 썰어 끓인 후 파와 크림을 얹어 내는 음식인데요. 러시아에서는 우리네 된장찌개처럼 매일 먹는 음식이라고 합니다. 보르쉬에는 원래 케피르라는 러시아식 요플레를 넣는다는데, 식당에 따라 마요네즈나 사워크림을 쓰는 곳도 있다더군요.

크림을 고깃국물에 풀어 먹는다니 무척 느끼할 것 같았는데요. 무채가 들어 있어 영락없는 우리네 고깃국 같았습니다. 오히려 더 시원하고 부드러운 맛이 느껴졌달까요. 지인은 러시아에서 해장용으로 많이 먹었다고 하는데, 휘휘 저어보니 큼지막한 갈빗살이 한 덩이 들어 있어 물가 비싼 러시아에서 영양보충식으로도 좋을 것 같았습니다.

한참을 기다려(30분 이상 기다린것 같아요) 나온 오늘의 메인요리, 두둥~! 궁극의 샤슬릭입니다. 샤슬릭은 '꼬치에 꿴 음식'이라는 뜻으로 중앙아시아 유목민에게서 전래한 음식입니다. 50Cm가 넘는 기다란 쇠꼬챙이에 양고기를 두툼하게 꽂아 은근하게 자작나무에 굽는 것이 대표적인 요리법이죠.
 

아마 꼬치에 꿰어 굽는 음식 중 가장 큰 사이즈가 아닐까 싶은데요. 다른 음식과 함께 먹으면 인당 한 꼬치면 충분할 정도입니다.

샤슬릭을 먹는 방법은 여러 가지인데요. 일단 꼬치에서 고기를 빼내어, 양파나 토마토 같은 채소를 곁들여 먹거나, 또띠아 같이 얇은 빵에 싸서 먹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숯불에서 은근하게 구운 양고기 샤슬릭은 육즙이 그대로 살아 있어 담백하면서도 독특한 향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양고기를 즐겨 드시는 분이라면 분명 좋아하실 맛~! 중독성 있는 맛으로 종종 찾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어느덧 주위를 둘러보니 식당에 한국사람이라곤 우리뿐이더군요. 낯선 음식, 낯선 음악, 낯선 사람들로 북적이는 사마르칸트에서 러시아 여행이라도 온 듯 샤슬릭 한 조각과 함께 맥주를 들이켰습니다. 이곳에서는 우리가 이방인지만, 골목을 조금만 벗어나면 그들에게 더욱 낯선 풍경이겠죠. 고향의 음식이 있고, 음악을 들으며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이곳은 어쩌면 오랜 옛날 모래바람을 맞으며 실크로드를 따라 걷다 쉬어가던 카라반들의 휴식처와 닮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사마르칸트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우즈베키스탄의 전통 의상과 식기들.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의 향수가 담긴 메뉴판

실제 사마르칸트는 우즈베키스탄 제 2의 도시로 '중앙아시아의 로마'로 불리는 곳입니다. 2700여 년 전 유럽에 로마가 세워질 무렵, 중앙아시아에서는 사마르칸트가 도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로마, 아테네, 바빌론 등과 함께 가장 오래된 도시로 손꼽히는 이곳은 아름다운 유적이 많고, 중국과 지중해권 실크로드의 교역기지로 유명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라고 합니다. 
 

글을 쓰며 사마르칸트에 대해 이런 저런 정보를 접하니 당장이라도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사마르칸트로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드네요. 하지만 현실은 그럴 수 없죠. 가끔 이방인이 되어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을때, 이국적인 곳에서의 별미를 맛보고 싶을때, 그럴때마다 동대문 사마르칸트에서 맛본 샤슬릭과 맥주 한 잔이 생각날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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