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친구들과 함께한 특별한 수다, 카페즈키

언제나 시작은 그렇다. 퇴근길에 잠깐 집에 들르겠다는 친구의 페이스북 글을 보고 다른 한 친구가 함께 오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피자를 구워 저녁상을 차리고 입가심으로 달래장에 곤드레 밥을 내어 놓았다. 어설픈 밥상이지만 언제나 감탄하며 맛있게 먹어주는 친구들. 디저트로 친구가 사온 망고까지 든든히 챙겨먹고는 산책이나 하자며 집을 나섰다. 
  

이 동네로 이사오던 올 봄부터 점찍어놨던 '카페 즈키'. 흰벽에 파란 차양. 넓은 창으로 언뜻 보이는 아기자기한 인테리어가 마음에 들어 꼭 한번 친구들과 들러야겠다고 마음억었던 곳이다. 이름에서 풍기는 일본풍의 분위기가 그대로 녹아있는 이곳은 알고보니 합정, 상수동 카페 골목을 찾는 이들에게 나름 이름이 난 곳이었다는. 

구석 자리마다 놓여있던 작은 테이블에는 하루키나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이 그득하게 놓여있고, 심지어는 간이 책장에 스탠드까지 있어 마치 일문학을 좋아하는 친구네 같았다. 늦은 시간이라 옹기종기 앉아 맥주병을 기울이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친구의 자취방같이 편하고 익숙한 분위기 때문인지 다들 오래도록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좁은 공간에 깨알같이 정리된 장난감과 소품들은 하나같이 정이 가지 않는 것이 없다. 카페지기의 세심함에 감탄~. 

가끔은 벼룩시장이나 전시도 열린다. 카페 즈키에서는 접수를 받아 한 사람씩 벼룩시장을 열 수 있게 해주는데, 빈티지한 소품이나 손뜨개 목도리 같은 레어아이템도 만날 수 있다. 친구는 예쁜 베네통 목도리를 천원에 득템~ 난 필름 케이스가 탐났는데, 인조가죽이라 만지작 거리다 그냥 놓고 왔다.

맘 같아서는 맥주를 한잔 하고 싶지만, 홀몸이 아닌지라 애써 참고 요거트 스무디를 주문했다. 이런저런 상황을 고려해 숙제하듯 아이를 가지다보니 포기해야만 하는 내 자유가 더 그립고, 지켜야할 Do & Don'ts를 더 참아내기가 힘들다. 다행인건 맥주 대신 요거트를 마셨지만 대화의 깊이가 줄어드는건 아니었다는. 11시가 넘도록 계속된 이야기 끝에 우리는 서로를 조금씩 더 보듬어 안을 수 있었다. 도덕적 잣대와 통념? 그런거 다 뛰어 넘는 공감대! 오랜 친구는 그래서 좋다.

요즘 동네 골목길 산책을 자주 다니다 보니 이런 특색있는 카페들이 주변에 꽤 많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홍대 근처라는 지역적 특성 때문인지 5월~11월까지 매월 마지막주에는 '희망시장'이라는 이름으로 지역 주민들이 참여하는 벼룩시장도 열린다. 점점 상업화 되어가는 홍대거리 대신 합정, 상수동 거리에는 아티스트들이 주인이 되어 지난 5월엔 '오월 어느날 축제'가 기획되기도 했다. 요즘 우리 동네에서는 골목에 어울리는 인디음악과 예술가들의 공연이 열리고 거리의 카페는 물론이고 식당, 심지어는 방앗간에서까지 전시와 '공간 주인장과의 대화'가 마련되고 있다. 그나마 내가 숨통을 조금 트고 살아갈 수 있는 이유랄까... 조만간 카메라를 들고 한번 나서봐야겠다. (위 사진은 모두 아이폰으로 촬영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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