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거품 위에 새겨진 클로버, 이태원 베이비 기네스(Baby Guinness)

다국적의 문화가 공존하는 이태원은 상상 여행을 하기에 딱 좋은 곳이다. 특히 스페인 음식점인 게코스 가든, 뉴욕풍 브런치 카페인 마이 첼시, 그리스 음식점 산토리니 등이 모여 있는 해밀턴 호텔 뒷길은 세계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공간으로 여행이란 키워드를 떠올리기에 참 적당하다. 어스름한 저녁, 친구들과 어울려 잔 술을 기울이며 오가는 이국의 이야기들, 이태원은 이제 외국인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해방공간이 된 지 오래다.    

어느 금요일 오후, 퇴근길 한잔이 고픈 남편이 모처럼만에 이태원 뒷골목 데이트를 신청했다. 쌀쌀한 날씨에 걸쭉한 유럽 맥주가 당기던 나는 서둘러 아이를 챙겨 길을 나섰다.

발길이 향한 곳은 강렬한 초록색 문이 인상적인 아이리시 펍, '베이비 기네스'. 

기네스라는 상호가 아이리시 펍임을 말하는 이 집은 들어서는 입구에서부터 계단, 실내 장식까지 모두 소박한 (혹은 시골스러운) 아일랜드 장식으로 인테리어가 되어 있어 아이리시 펍 특유의 분위기가 물씬 느껴진다. 아일랜드에는 이런 분위기의 펍이 1만여 개나 있다고.

카푸치노의 거품처럼 밀도 높고 크리미한 거품이 한 가득인 맥주, 킬케니(KILKENNY)를 첫 잔으로 주문했다. 언뜻 보면 색깔 때문에 아이스 커피 같기도 한 이 맥주는 내 페이버릿 중 하나다. '유럽맥주 견문록(이기중 , 즐거운 상상)'이란 책에 보면 '아이리시 크림 에일 맥주인 킬케니는 기네스의 맛에서 약간 더 라거의 맛이 느껴지고 시원하나 깊은 맛은 조금 덜하다'고 표현이 되어 있는데, 내가 느끼기엔 묵직한 맛은 그대로이면서 씁쓸함이 덜하고 목 넘김이 부드러워 좋다.

사실 킬케니는 몇 년 전, 태국 여행 중 꼬창이라는 섬에 있는 아이리시 펍에서 처음 맛봤다. 스콜이 쏟아지던 해변, 시골스런 섬마을, 낯설지만 왠지 어울리는 아이리쉬 펍, 비를 피하기 위해 들어갔지만 멋진 음악이 흘러나오던 그곳에서 뜻밖에 맛있는 맥주를 만나게 되어 기분 좋았던 오후... 맥주 때문인지 흥겨운 음악 때문이었는지 비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킬케니는 그날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혀끝으로 추억하는 여행은 더욱 즐겁다.         

아직 저녁 전이라 피쉬앤 칩스를 하나 시키고, 아이에게도 먹인다. 맥주 마니아인 우리 부부. 아이를 낳기 (데려오기?) 전에는 하루가 멀다고 맥주 투어를 다녔는데,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육아를 책임지게 되면서 즐거웠던 그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아쉬운대로 아이를 데리고 가기에 적당한 곳을 몇 곳 찾아내어 즐기는 정도. 그런 면에서 베이비 기네스의 테이블 석은 꽤 괜찮았다. (금연인지 담배 피우는 사람도 없고.) 

두 번째 잔은 아이리시 맥주의 대명사 기네스 드래프트로 주문했다. 오~ 그런데 이 집, 파인트 잔에 담긴 기네스 거품에 아일랜드의 상징인 클로버를 새겨준다. 카페라떼 거품에 각종 이미지를 그리는 라떼아트는 봤어도, 맥주 거품에 그림을 그려주는 건 처음 봤다. 뭔가 더 특별한 기네스를 만난 느낌~

기네스 드래프트를 따르면 먼저 엷은 고동색을 띠며, 이를 불빛에 비추면 포도주색으로 보인단다. 2분 정도 후에 검은색이 되면 마셔도 된다는데, 테이블로 배달되기까지는 아무래도 2분이 넘는 시간이 걸릴 테니 색이 변하는 과정은 보지 못했다. 또 완벽한 기네스 파인트(568ml) 맥주 한잔을 마시기 위해서는 다음 조건에 맞게 따라 마셔야 한다는데 세계 150여 개 나라, 매일 약 1,000만 잔 이상의 맥주를 판매한다는 기네스사의 엄격함과 자부심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완벽한 기네스 생맥주를 마시기 위한 퍼펙트 파인트 ('유럽맥주 견문록(이기중著) - 즐거운 상상' p.82 발췌)

1. 기네스 파인트 잔을 사용할 것. 이 잔은 이상적인 대류의 흐름을 만들기 위해 유체역학적으로 치밀하게 계산된 유리잔인데, 여기에 맥주를 따르면 작은 폭포(surging)라 불리는 대류가 만들어지고, 미세하면서 크림 같은 거품이 생긴다.
2. 최적 온도인 5~8도를 유지할 것.
3. 90초~120초간 두 번에 나눠 천천히 따를 것.
4. 커다란 거품을 만들지 말 것.
5. 파인트 잔에서 높이 14~21mm의 거품을 만들 것.
6. 거품이 넘치게 따르지 말 것.
7. 기네스 사가 정한 6단계에 따라 맥주를 따를 것.


기네스로 칵테일도 만드나 보다. 기네스와 킬케니를 반반씩 섞어 만드는 BLACK & TAN, 기네스와 호가든을 섞은 BLACK & HOE (혹은 Dirty HOE라고도 부른다.)등 맥주 칵테일과 기네스에 위스키를 섞어 만든 칵테일이 흥미로웠다. 보드카와 깔루아로만 만드는 줄 알았던 블랙 러시안에 기네스를 더하면 아이리시 블랙러시안이 된다니 재밌는 네이밍에 한 잔 시켜보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부부는 고도의 자제력을 발휘하여 이쯤에서 집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내려오는 길에 보니 2층 바에서는 외국인 단체 손님이 홀 전체를 차지하고 있다. 손에는 클로버 새겨진 기네스 한 잔씩을 들고 춤추며 왁자지껄 흥겨운 분위기. 언젠가 성장한 아이와 함께 이런 분위기를 즐길 날이 오겠지....  

즐거웠던 시간, 꼬 창에서의 추억, 그리고 이태원 프리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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