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8.22 09:14 / 센티멘탈 여행기/중국 베이징, 텐진
부르르릉~ 부르르릉~ 침대가 떨릴 정도로 울리는 진동에 눈을 떴다. 더듬더듬 머리맡에 둔 휴대폰을 찾아 시간을 확인하니 5시 반. 통신사는 어느덧 차이나 모바일로 바뀌어 있었다. 크루즈 여행 3일째. 드디어 첫 번째 기항지인 텐진의 국제 크루즈항에 도착하나 보다.
텐진 국제 크루즈 터미널은 마치 거대한 공항과 같다. 하선도 공항처럼 배에서 터미널까지 구름다리를 놓아 이동하게 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구름다리로 건너는 것이 아니라 1층에서 기항지 하선 수속을 마친 후 구름다리로 올라가야 한다. --;)
도착은 일찍 했지만, 수속 관련 문제가 있었는지 하선은 9시쯤 이뤄졌다. 오후 5시 반까지는 다시 배로 돌아와야 하는 빠듯한 일정이라 서둘러 내렸는데... 이런, 터미널 앞을 아무리 둘러봐도 예약해 놓은 택시가 보이지 않는다. 다급한 마음에 택시를 섭외해준 지인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해 보니 우리가 내린 곳은 보통 한국발 여객선이 도착하는 '탕구항'이 아니라 별도의 국제 크루즈 터미널이란다. 분명히 크루즈 선사에 물어본 그대로 알려줬는데, 우리 쪽에서 뭔가 착오가 있었나보다. 다시 시작된 기다림...
1시간쯤 흘렀을까, 터미널 입구에 나가 있던 남편이 뛰어들어오며 손짓을 한다. 무표정한 택시 기사, 어색한 웃음으로 '미안하다'라고 말해보려 하지만 당황해서인지 간단한 중국어가 쉽게 생각나지 않는다. 다행히 선해 이는 기사는 어디부터 갈 거냐며 미리 지인으로부터 받은 관광지 리스트를 보여줬고, 우리는 텐진의 발상지라는 '고문화 거리'부터 둘러보기로 했다.
여느 무역항이 그렇듯 도로 양옆에는 컨테이너 박스와 크레인이 즐비하다. 텐진 출장이 잦은 남편 왈, 예전에는 그나마 가로수마저 없어 황량했다는데, 베이징 올림픽을 기점으로 며칠 만에 항구에서 텐진 시내까지의 도로주변에 일제히 나무를 심었단다. 얘기를 듣고 보니 어쩜 저렇게 같은 키의 나무를 일정한 간격으로 심었는지, 1시간을 고속으로 달려도 지루한 나무들의 행진은 끝나지 않는다. 중국이 올림픽 전에 건물을 짓고 환경을 정비하는데 무려 42조 원을 쏟아부었다는데 과연 중국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싶다.
거리 초입에는 관광객을 위한 먹거리가 즐비하다. 마침 토요일라 주말을 맞아 나들이 나온 중국인 관광객들로 북적북적.
아침 일찍부터 비몽사몽 여행을 나선 꼬마는 택시에서 멀미를 좀 했더랬다. 고문화 거리에 가면 아이스크림을 사주겠노라고 달래서 재웠더니 차가 멈추자마자 귀신같이 아이스크림 가게로 달려간다. 아직 잠이 덜 깬 얼굴이지만 제 손으로 직접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사 먹은 아이는 의기양양!
고문화 거리의 메인로드. 내게는 베이징의 난뤄구상 (관련 글: 제국의 뒷길을 걷다, 난뤄구샹(南锣鼓巷)을 떠올리게 하는 풍경이다. 난뤄구상 보다는 뭔가 좀 인위적이고 덜 세련되긴 했지만 중국색 짙은 거리 풍경이 나름 볼만했다. 우리로 치면 인사동 정도 되는 느낌이랄까? 독특한 조각과 그림,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중국 전통 의복과 붓 등을 팔고 있었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골동품스러운 보석함이나 생활용품을 늘어놓고 파는 난전도 만날 수 있다.
길을 따라 걷다보면 청 말기의 사상가 엄복(嚴復)의 청동상도 만날 수 있다. 엄복은 당시 영국 유학파 지식인으로 청일전쟁 이후 제국의 침탈에 맞서 국민에게 계몽사상을 일깨우며 개혁운동을 펼친 사상가라고 한다.
골목으로 접어드니 고즈넉한 좁은 길이 펼쳐진다.
우리가 골목길의 정취에 젖어 사진을 찍고 찻집을 기웃거릴 즈음 아이는 제 키만한 사자와 놀이를 시작했다.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는가 싶더니 조심스럽게 입속에 손을 넣어 보고는 깜짝! ㅎㅎ
아이는 다니는 중간마다 길을 멈춰 나름의 볼거리를 즐겼다. 저 인형. 실크 잠옷을 입고 바닥에 엎드려 양쪽 다리를 번갈아가며 까딱거리는데, 어찌나 실감 나던지...
다니다 보니 아이의 시선을 사로잡는 물건이 참 많다. 그밖에 관심을 보이던 장난감들. --;
8일간의 크루즈 여행을 다녀와서 아이에게 뭐가 제일 기억에 남느냐 (정확히는 '여행 가서 뭐 봤지?')란 질문을 한 적이 있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자전거'라고 답하는 아이. 우리는 당연히 자전거 많은 중국 거리의 풍경이겠거니... 하며 내심 함께한 여행에 보람을 느꼈었다. 그런데... 얼마전 이 사진을 본 아이. 급 흥분하며 이게 바로 여행에서 본 자전거라며 좋아하질 않는가...; 아이의 눈높이를 맞추기란... 참 쉽지 않다.
고문화 거리에는 무료입장이 가능한 절이 있다. 관광 온 사람들이 피워대는 향에 들어서는 입구부터 향내가 진동해 왠지 호기심이 생기는 곳이다. 특이한 것은 저 북인데, 동전을 던져 북을 울리면 그 북 소리만큼 부가 따른다고 한다. 개인의 부를 위한 기복신앙을 믿고, 재물이 최고라 여기는 이들... 바닥에 수북이 쌓여 있는 동전을 보며 좀 씁쓸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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