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의 금요일, 엉뚱한 서울 여행기

나는 지독한 방향치다. 특히 지하도를 건널때, 분명 지상에서 미리 출구를 확인했는데도 지하에서 길을 헛갈려 다른 출구로 나오곤 한다. 간혹 누가 내게 '여행을 좋아하면서 어떻게 방향치일 수 있냐'고 묻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때면 난 방향치이기에 골목을 누비고, 사람을 만나 길을 묻고, 새로움을 만날 수 있는거라고 얘기하곤 한다.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제 때 제 시간에 도착해야 하는 중요한 상황에서는 아주 곤혹스럽다. 가령 입사면접이라던지.... 오늘이 그랬다. 입사면접은 아니었지만 그만큼의 기대와 설렘이 있었던 중요한 자리. 약속 시간 30분 전에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휴대폰으로 주변 풍경을 찍으며 여유롭게 걸었는데, 그만 길을 잃었다. ㅠㅠ Path와 휴대폰에 남은 나의 엉뚱한 서울 여행기를 정리해 본다.


AM 10:16

 

"이 시각에 혼자 버스를 타 본 것이 대체 얼마 만인지. 별게 다 새롭다" - 이대 사거리 (via Path)


AM 10:30


 "장군님, 잘 계시는군" - 세종로 (via Path)


AM 10:35

 
"20년 전 쯤으로 돌아간 기분." (via Path)

 

AM 10:37


비슷해 보여도 다 쓰임새가 다른 것들.

...
여기까지 사진을 찍고는 좀 서둘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 왔지만 약속 장소에 적어도 10분 전에 도착해야 예의니까.
더구나 나는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세팅할 노트북도 들고 있지 않은가.
...
그런데,문제는 여기에서부터 시작.
스마트폰을 보니 갑자기 3G망이 먹통이다. 지도 앱만 믿고 따라왔는데...
물어물어 골목을 돌아 근처까지 가서 전화로 위치를 물으니 국세청 옆 건물이란다.
종각역으로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간다.

... 
하지만 내가 알고있는 국세청 건물은 현재 국세청이 아닌 (구)국세청 건물.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을땐 이미 약속시간이 지나고 있었다.


 

AM 11:46

 
"일찍 도착했다고 여유 부리다가 늦어버렸다. ㅠㅠ 이미 쏘아버린 화살, 잘 되기만을 바랄 뿐!" (via Path)

 
들어갈때 사진은 없고, 나오면서 찍은 흔들린 사진만 있다. 
캐나다 끝발원정대 1차 서류심사 합격 후, 2차 여행계획 프리젠테이션.
나름 열심히 준비했는데, 여러모로 아쉽기만 하다.

AM 11:57 


속상한 마음에 좀 걸어보기로 했다. 
 

 

종로에서만 볼 수 있는 낯선 풍경. 보통 광장시장 근처 화훼 상가 앞에 이런 헌책 노점이 많다.
이런 곳에는 '한국의 약초', '오래 사는 비법' 같이 어르신들이 관심있어 할만한 책만 파는 줄 알았는데

오피스가 많은 종각역 근처라 그런지 재밌게도 페이스북 관련 서적이 메인이었다.


AM 12:12


서울 역사 박물관까지 20여분을 걸었다.
떠나는 기차에 손 흔드는 모녀의 모습을 보니 괜스레 감정이입.
더 걸어야 하나보다. 


AM 12:28

 

이제 길 가다가도 이런 것만 보이고... (via Path)

 

AM 12:35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는 전시회가 한창이었다. 재밌는 기획.
하지만, 이 버스는 집으로 가는 버스가 아니었다. OTL.


 


장르는 팝아트. QR코드를 찍어보면 작품에 대한 설명을 볼 수 있다. 


 

PM 7:29

 

작은 방 창문 너머로 보는 여의도 벚꽃축제 전야제. 불꽃놀이의 계절이 시작됐구나. (via Path)

 

PM 10:07

 

 For some, Friday the 13th is never unlucky. (via Facebook, 하이네켄 팬 페이지)

엉뚱한 서울 여행 탓에 정작 중요한 일은 그르쳐 아쉽고 우울하기만 했던 오늘 하루.
하지만 사진으로 돌이켜 보니 황당하게도 오늘 역시 소소한 여행의 즐거움을 느꼈던것 같다.
이미 내 손을 떠난 화살... 이제는 마음 비우고 결과를 기다려야겠지.

 For some, Friday the 13th is never unlucky.
Please keep your fingers crossed for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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