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홀에서 세부로, 벚꽃 엔딩

나흘간의 휴식을 끝내고 보홀에서 세부로 돌아가는 날.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비치체어에 누워 수영하는 진아를 바라보다가 문득 아픈 둘째가 궁금해졌다. 식구들 몰래 객실로 들어가 한국으로 건 전화, 그런데 방금 병원에 다녀오셨다는 어머님의 목소리가 그닥 밝지 않다. 기관지가 나빠져 좀 오래 두고 봐야 할것 같다고...

 

Day 5. 보홀에서 세부로, 26/32 , 가끔 구름

 

 

 

한동안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문을 열고 남국의 푸른 풍경을, 내리쬐는 태양을, 여유로움을 마주할 수 없었다. 6개월도 안된 아픈 젖먹이를 떼놓고 나와 벌을 받는 것인가 싶기도 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문앞에 우두커니 서 있던 나를 깨운건 진아의 목소리였다.

 

"엄마~ 진아 수영하는 것 좀 보세요~"

 

물을 좋아하지만 필리핀에 올때까지만 해도 누가 잡아주지 않으면 깊은 곳에 들어가기를 두려워 하는 아이였는데, 이제 진아는 달랑 구명조끼만 하나 걸치고 물장구 치며 무려 2M 수심의 수영장을 자유로이 오간다.

 

 

맞다. 이번 여행은 정균이가 태어난 이후 소홀했던 진아와의 시간을 위한 여행이었지.

진아의 해맑은 미소를 보며 당장 돌아갈 수 없다면 어머님 말씀대로 모든 것을 당신께 맡기고 주어진 시간을 더욱 충실하게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올해 비치체어에서 마시는 마지막 맥주가 될지도 모르는 산미구엘 오리지널 한 병을 남편과 함께 사이좋게 비웠다.

이제 다시 떠나야 할 시간.

 

 

보홀 선착장에서 리조트로 들어올때 워낙 고생했던 기억이 있어 나갈때는 미리 밴을 예약해 두었다.
차창밖으로 색색의 트라이시클이 여유로이 오가는 한가로운 보홀 풍경을 감상하다보니 어느덧 부두.

 

 

배는 무려 두 시간 반이나 늦게 도착했지만 (아무래도 필리핀은 연착이 생활화 된 듯...;) 쾌적한 선내 컨디션 덕분에 영화도 보고 졸기도 하며 세부에 도착했다.

 

 

확실히 보홀과는 사뭇 다른 도시의 풍경. 예상치 못하게 배가 너무 오래 연착되는 바람에 숙소에 도착하니 벌써 해가 어둑어둑 하다. 필리핀에서는 6시만 되면 해가 지고, 8시경에는 칠흙같은 어둠이 깔리더라는...

 

 

세부에서는 '래디슨 블루 호텔(Radisson Blue Cebu)'에 묵었다. 부두에서 택시로 5분 거리에 있는 대형 호텔 체인이기도 했고, 먼저 다녀온 남편의 직장 동료의 강력한 추천과 조식 포함 1박에 10만원 대로 생각 외로 저렴한 요금, 그리고 어린이 추가 차지가 없다는 것 등의 조건이 좋아 더 알아보지 않고 예약을 했는데, 생각보다 룸 컨디션과 조식 퀄리티가 썩 괜찮았다. 세부에서 바다를 낀 샹그릴라 급의 고급 리조트를 원하지 않는다면, 세부 시티에 자리잡은 래디슨 블루도 괜찮은것 같다. 

 

 

래디슨 블루만이 가진 장점이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객실마다 아이팟이나 아이폰을 꽂아 사용할 수 있는 스피커가 있다는 것이다. 짐을 푸는 동안 남편이 버스커버스커의 음반을 틀어놨더니 갑자기 노래를 따라부르며 춤을 추기 시작하는 진아, 그리고 즐거워 하는 아이의 모습에 덩달아 신이 난 부부. ㅎ

 

 

평소 차에서 즐겨 듣던 익숙한 음악에 새로운 장소에서 흘러나오니 또 이렇게 반갑다. 가족 모두가 세부 한복판에서 난데없이 '흩날리는 벚꽃 잎을~' 열창을 하며 덩실 덩실~... ^^

 

 

원래 계획은 근처의 SM몰에서 느긋하게 쇼핑도 하고, 유명한 '골든 까우리' 등 맛집 순례도 해볼 계획이었는데 너무 늦기도 했고, 마침 토요일 저녁이라 가는 곳 마다 사람이 많아 일단 대충 저녁을 때우기로 했다.

 

 

하지만 때운 저녁치고는 너무나 훌륭했던 그 날의 식사. come home to great-tasting tradition.이란 문구와 줄을 선 필리핀 현지인들을 보고 예약 후 30분 정도 기다려 들어갔는데 정말 이번 여행에서 맛본 최고의 필리핀 음식이었다. 식당 이름은 치카안(CHIKA-AN sa cebu). 샐러드부터 후식까지 음식 종류도 수십 가지의 필리핀 전통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다시 숙소로 들어오는 길에 들른 호텔 내 수영장. 리조트에 비하면 작은 규모이지만 호텔치고는 꽤 아기자기하고 수심도 다양한 노천 수영장이 있다. 주말에는 풀사이드 바베큐 부페도 열리니 일정에 여유가 있다면 한번 이용해봐도 좋을 듯. 이렇게 필리핀에서의 마지막 밤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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