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아의 다섯 살 생일을 축하해~!

"초를 몇 개 꽂아야 할까?"

"다섯 살이니까 당연~히 다섯 개지~!"

 

유난히 후텁지근한 날이었다. 몸도 마음도 젖은 빨래처럼 축축 늘어지던 일요일 밤.
가나슈마저 끈적하게 녹아 흐르는 초콜릿 컵케익에 나는 다섯 개의 초를 꽂았다. 

 

 

48개월. 작은 체구에 비해 말과 행동이 거침없는 아이. 엄마보다 친구가 더 좋고, 친구보다 수영장이 더 좋고. 매일매일 엄마가 됐다가 선생님이 됐다가 버스 운전사가 됐다가... 다른 이의 일상에 관심이 많다. 생일에 양꼬치를 사 달랠 정도로 양꼬치 마니아. 꿈틀이, 빼빼로, 구슬 아이스크림, 과자에 집착하지만 밥은 2살 때 만큼만 먹는다. 글자에 관심이 많고, 되든 안 되든 영어로 말하기를 좋아한다. 동생의 존재를 느끼며 자신을 더욱 드러내고 싶어하는 조잘조잘 다섯 살 수다쟁이. 

 

 

다섯 개의 초를 꽂으며 나는 반성한다. 어른처럼 말하고, 어른처럼 행동하고 싶어하니 아이가 어른처럼 사고하기를 바랐던 것을 반성한다. 친구처럼 대화하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엔 언제나 '엄마'라는 우월적 지위를 내세웠던 것을 반성한다. 아이의 내면보다 다른 이에게 보이는 모습에 더 신경 썼던 것을 반성한다. 둘째를 낳은 이후, 예전만큼 진아를 사랑하지 못했던 것을 반성한다...  

 

 

평생 여러 사람을 사랑할 수는 있지만, 한번에는 꼭 한 명 씩만 사랑할 수 있다. 그 대상이 처음엔 애인이었다가, 첫째 아이였다가 둘째 아이로 옮아가는 거다. 열 손가락을 깨물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지만 안타깝게도 하나의 손가락을 깨물고 있을 땐 다른 손가락의 아픔 따위는 잊히기 마련이다. 내가 잠시 잊고 있는 동안 진아가 느꼈을 아픔을 되새기며 습관처럼 깨물어 굳은살이 배겨버린 내 엄지손가락을 내려다 본다.

 

...

오늘 포스트는 진아의 다섯 살 생일 즈음하여 미성숙한 엄마의 부끄러운 고백.

앞으로 화나거나 짜증 나는 순간엔 이 포스트를 보며 진아에 대한 사랑과 미안함을 되새기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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