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에 대한 편견을 깨다, 콜롬비아 아이스필드 빙하여행

캐나다 로키로의 여행을 계획하며 해보고 싶었던 것이 몇 가지 있었다.
에메랄드 빛 호수에서 카누 타기, 레이크 루이스를 바라보며 오후의 홍차 즐기기, 캠핑을 나온 듯 피크닉, 그리고 두 발로 빙하 디뎌보기.
그저 멀리서 감상만 하는 여행이 아니라 실제로 보고, 체험하고, 나만의 방법으로 느끼고 싶었다.

오늘은 그중에서 가장 기대되는 빙하 여행을 하는 날~!


설상차를 보고 신이난 아이


차를 타고 캐나다 로키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라는 아이스필드 파크웨이(Icefield Parkway)를 따라 달리다 보면 주변의 설산이 점점 가까워지는, 마치 아이맥스 영화관에서나 볼법한 풍경이 펼쳐지는 지점이 있다. 바로 이곳이 콜롬비아 아이스필드(The Columbia Icefield Glacier, 콜롬비아 대빙원)다.


  셔틀버스를 타고 애서배스카 빙하로 오르는 길

가을빛으로 물든 들판과 빙하의 조화가 비현실적이다. 빙하 아래 나무들의 나이는 보통 천 년이 넘는다고


콜롬비아 아이스필드는 북반구에서 북극 다음으로 규모가 큰 빙원이다. 크기가 서울의 반(325㎢)만 하고, 두께는 에펠탑 높이(300m)만 하다. 빙하시대 말기부터 겹겹이 쌓인 눈이 거대한 얼음 덩어리가 되어 이곳의 빙원을 만들었다고 한다. 빙하는 극지방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인 줄 알았는데, 캐나다 로키 한복판에 이렇게 거대한 빙하가 있다니,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믿기지 않았다.



콜롬비아 아이스필드가 진짜 유명한 이유는 두 발로 디딜 수 있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빙하이기 때문이다. 바퀴 하나가 내 키만한 설상차를 타고 빙하 위에 내려 직접 걸어볼 수 있다. 빙하를 달라는 설상차는 타보는 것 자체가 하나의 여행 목표가 되기도 한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아이스필드 센터는 빨간색으로 표시한 곳. 여기서부터는 셔틀 버스를 타고 파란색으로 표시한 애서배스카 빙하 가까이 가면 설상차를 탈 수 있다.


애서배스카 빙하를 바라보며 Snow Coach Road를 따라 콜롬비아 아이스필드를 오르는 길


애서배스카 빙하(Athabasca Glacier)는 콜롬비아 아이스필드를 이루는 30여 개의 빙하 중 끝자락이 폭포처럼 얼어있는 부분이다. 빙하의 아래쪽은 녹아내려 호수를 이루고 이 호수는 애서배스카 강이 되어 재스퍼까지 흐른다고. 콜롬비아 아이스필드는 북미 대륙의 실질적인 분수령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녹은 빙하수가 여러 줄기의 강이 되어 대서양과 태평양으로 흘러든다. 우리가 이제껏 본 수많은 호수와 강의 원류가 바로 이곳이기도 하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산이 마치 아바타의 생명의 나무라도 되는 듯 신비로운 기분마저 들었다.



빙하에 대한 편견 하나, 설상차는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다.


 

그런데 사실 설상차를 타고 빙하를 체험한다고 했을 때 걱정되는 것이 있었다. '위험하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갑자기 눈사태가 나거나 크레바스에 빠진다면?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실제로 애서배스카 빙하는 지구 온난화로 때문에 급속도로 녹고 있어서 안전경계를 벗어나면 위험하다고 했다.



차에 오르니 입구에서 우리를 맞이하던 예쁘장한 언니가 자신을 소개한다.


"저는 이 설상차를 운전하게 될 호주 출신의 드라이버에요.

자~ 우리는 위험한 빙하 위를 달릴 예정이니 모두 안전띠를 매주세요~!"


거대한 설상차를 움직이는 운전자가 여성이라는 점도 놀라웠지만 타자마자 안전벨트 주의를 주는 것에 더 놀랐다. 


불안한 마음에 벨트를 찾는데, 어랏...; 보이지 않는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나와 같은 상황인 듯했다.

알고보니 6륜 구동의 중장비 포스가 넘치는 이 설상차는 빙하에서도 가장 안전한 구역으로만 다닌단다.

얼음을 지치는 사람 키만한 바퀴는 하나만 해도 시가 5억 원이 넘는 고가 장비라고. 그녀는 농담으로 첫 말문을 연 것이었다...;

다행히도 이제껏 걱정할 일이 없었다니 나도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기사의 노련한 솜씨 때문인지 실제로 타본 설상차는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았다. 가끔 덜컹거리기는 했지만,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외모만큼이나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빙하와 산, 역사와 개척자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육중한 설상차를 느릿느릿 운전했다.

어느 순간 난 긴장을 풀고, 사방으로 트인 차창 밖으로 천천히 흘러가는 빙하와 산의 모습을 감상하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빙하에 대한 편견 둘, 빙하는 생각보다 깨끗하지 않다.



창 밖으로 바닥을 보니 조금씩 빙하가 녹아 흘러내리는 모습이 보인다. 그런데 이건 내가 상상하던 빙하의 모습이 아니다. 자갈과 흙먼지가 뒤섞인 회색빛의 빙하라니... 하긴. 수천 년, 수만 년의 시간을 거치다 보면 이렇게 눈과 비, 자갈과 모래가 섞일 수밖에 없겠다. 


 

바퀴 아래 얼음이 갈라진 흔적이 보일 때면 살짝 긴장되기도 했다.


 

조금 더 위로 올라가니 점점 깨끗한 빙하의 모습이 드러난다. 하지만 눈 쌓인 겨울의 모습이 아니고서는 순백의 빙하를 볼 수 는 없을 것 같았다. 드문드문 드러난 에메랄드 빛 빙하의 속살을 보고 진짜 빙하를 달리고 있음을 실감했다.




빙하에 대한 편견 셋, 푸른 빙하가 녹으면 파란색 물이 된다?



안전지대에 오르면 약 20분간 빙하 위를 걸어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

설상차에서 내려 처음으로 빙하를 디디던 그 때, 그 기분은 마치 화성에라도 도착한 것 같았다.


 

사람들은 빙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어느정도 사진을 찍고 난 후에야 주변을 둘러보고 빙하를 직접 만져보기도 했다.



한쪽에서는 빙하수가 흘러 작은 물웅덩이를 만들고 있었다.

손이 시렸지만, 이곳의 깨끗한 빙하수를 마시면 10년씩 젋어진다는 말에 두 손 가득 받아 마셨다. ^^



물은 정말 차디찼다. 하지만 딸아이는 차에서 접은 종이배 띄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거 그럼 쇄빙선이라도 되는 건가? ㅎㅎ


신기한 것은 빙하 자체는 에메랄드 빛인데, 실제 빙하가 녹아 흐르는 물을 보니 투명하다.

수량이 많은 호수나 강 등을 멀리서 보면 또 에메랄드 빛이고, 그 물에 가까이 내려가 보면 또 이렇게 맑고 투명하다.

빙하는 수천 년, 수만 년간 눈과 공기 중에 녹아있는 광물질 때문에 에메랄드 빛을 띤다고 한다. 하지만 그 물이 녹으면 다시 맑고 투명한 물이 된다고 한다.
형태에 따라, 양에 따라, 보는 각도에 따라 달리 보이는 빙하수, 신비롭기만 하다.

 

 


길고도 짧은 20여 분의 빙하 여행을 마치고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  



안타깝게도 애서배스카 빙하는 매년 지구 온난화로 점점 녹아 해마다 몇 미터씩 뒤로 밀려나고 있다고 했다.

3~4년 후에는 아예 빙하 자체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있다고. 아쉬운 마음에 차창 밖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다.


 

다큐멘터리에서나 보던 상황을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니 더욱 아쉽다. 지금 보고 있는 이 모습이 앞으로 우리가 겪게 될 미래의 모습은 아닐지.

정상에서 떠온 빙하수 한 잔으로 마음을 달래본다. 이제부터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봐야겠다는 다짐을 하며.


[여행 Tip]

콜롬비아 아이스필드를 오르는 방법은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앞서 설명한 설상차를 타는 것, 또 하나는 만년설과 빙하로 뒤덮인 이곳을 걸어 오르는 것이다. 산에 오르기 전에는 정말 이 험한 설산을 걸어서 올라오는 사람이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는데, 애서베스카 빙하에 다다랐을 무렵 난 눈인지, 흙먼지인지를 하얗게 뒤집어쓴 진짜 아이스 트래커를 보았다. 용기가 있다면 빙하가 사라지기 전에 이곳을 온 몸으로 느끼며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


콜롬비아 아이스필드 여행 정보 http://www.explorerockies.com/columbia-icefield/

아이스워킹 www.icewalks.com


* 이 글은 SKT로밍 블로그에 기고한 여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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