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모로 본 '카오산 로드 신드롬'

태국에 도착하면 본능적으로 꼭 찾아가는 곳이 있다. 세계 배낭여행자들의 아지트, 24시간 자기 몸집보다 큰 배낭을 멘 여행자들로 북적이는 곳, 게스트 하우스,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 여행사 등 여행에 필요한 모든 것들이 모여 있는 거리이자 배낭 여행자의 성지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바로 방콕의 '카오산 로드'다.


카오산 로드는 1960년대 후반, 히피 문화가 서구 문화권을 휩쓸 때 자유를 찾아 아시아로 떠난 젊은이들이 태국으로 모여들며 생긴 거리라고 한다. '카오산'이라는 이름 역시 외국인들이 붙인 이름인데, 태국어로 카오는 '쌀', 산은 '날것(生)'을 의미하는 단어로 오래전 이 지역이 유명한 '쌀시장'이었던 데서 유래됐다고. 이 거리의 원래 이름은 '방람푸'다.

카오산이라는 이름이 외국인 여행자들 사이에서 알려지면서 여행자를 상대하는 택시들은 '카오산'이라고만 해도 어느 정도 알아듣게 됐다. 세계적인 여행자 거리가 된 카오산 로드에는 그곳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풍경이 펼쳐졌고 사람들은 그 모습을 풍자해 '카오산 로드 신드롬'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아래는 아홉 가지 카오산 로드 신드롬의 전문. 카오산 로드를 한 번이라도 경험해 본 이들은 분명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리라~

Khaosan Road Syndrome

1. I shall wear as big a backpack as possible to bear proud witness of my creed.
나는 나의 신념을 확인하기 위해 가능한 한 무거운 배낭을 메고 다닌다.

2. I shall not leave Khaosan Road without Lonely Planet.
나는 론리 플래닛 없이는 카오산을 떠나 다른 곳을 여행하지 않는다.

3. I shall wear the traditional international backpacker's uniform and don at least one piece of local clothing (e.g. conical hat in Vietnam, Krama in Cambodia etc.) to show my oneness with Asian people.
나는 전통적인 배낭족 복장을 하고 다니면서, 아시안들과의 동일성을 보여주기 위해 (베트남의 고깔모자나 캄보디아의 크라마 같은) 적어도 한 벌 정도 현지인의 옷을 입는다.

4. I shall eat banana pancake and phat thai on regular basis, for it is quintessential Asian food.
나는 아시아 음식의 진수를 맛보기 위해 바나나 팬케익과 팟타이를 즐겨 먹는다.  

5. I shall stay in the cheapest guest house. More money for beer.
나는 더 많이 맥주를 마시기 위해 가장 싼 게스트하우스에 묵는다.

6. I shall drink the local beer, for I shall always endeavor to be in tune with local culture and because it is cheapest.
나는 현지 문화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으로 현지 맥주를 마신다. 가장 싸기도 하고... 

7. I shall make pilgrimage to a Full Moon party on Hat Rin at once in my life.
나는 내 인생에서 꼭 한번은 핫 린(꼬 팡안)에서 열리는 풀문 축제에 순례자의 길을 나선다.

8. I shall bargain without mercy and horn my skill to a sharp edge, so that I can proudly proclaim our sacred motto “I get it more for less than the Local”
나는 “나는 현지인보다 더 싸게 물건을 샀다.”고 자랑스럽게 얘기하기 위해 인정사정없이 물건값을 깎는다.

9. I shall not leave Khaosan Road without having my hair colored, deadlocked, corn-rolled or shaved off.
나는 염색, 레게 머리 등 독특한 머리를 만들기 전에는 카오산을 떠나지 않는다.

이미지 출처: http://snapshots.travelvice.com/view/thailand/bangkok/DSCN4721.JPG.html

초여름 같은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본격적인 여름휴가시즌도 벌써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이맘때면 생각나는 카오산 로드에서의 하루. 여행의 시작과 끝, 그 설렘을 로모로 찍어봤다.

공항에서 1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카오산 로드. 여느 여행자들과 다름없이 배낭을 메고 걷다가 환전을 하고, 게스트 하우스에 짐을 푼다.  

수영복에서 비행기 티켓. 심지어는 가짜 학생증과 운전 면허증까지 없는것 빼고 다 있는 카오산 거리 풍경.


어스름한 저녁이 되면 서서히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거리에는 바나나 로띠를 굽는 달콤한 냄새가 넘쳐나고, 팟타이와 꼬치구이를 조리하는 노점의 연기가 하늘을 메운다.

늦은 밤에도 불야성을 이루는 카오산의 진짜 매력은 노천에서 파는 생맥주를 마시며 카오산 로드 신드롬에 빠진 이들을 바라보는 것이 아닐까.

불교의 나라 답게 카오산 거리 주변에도 고즈넉한 사원이 있다. 아침에 바라본 왓차나 쏭크람.
 

간밤에 내린 비로 거리는 온통 촉촉하다. 무슬리로 간단하게 아침을 떼운 후 사원길을 가로질러 거리로 나간다.

출근하는 현지인들과 여행자들이 뒤섞인 카오산 발 시내버스. 한 발짝만 벗어나도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다. 

한낮의 카오산로드는 적막 그 자체다. 천천히 걷다가 길게 드리운 그림자에 한동안 마음을 뺏겨보기도 하고 

어젯밤 거리에서 피어난 예술혼을 만나기도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노천 카페에 앉아 몇 시간이고 레게 머리를 땋으며 즐기는 망중한. 맥주 한 병 들고 어슬렁거리다가 국적에 상관없이 아무나와 친구가 되고 경계심 풀고 웃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곳. 바로 이런 것들이 카오산 로드에서만 해볼 수 있는 일들이 아닐까. 매년 이맘때면 카오산로드 신드롬에 빠져 떠날 궁리만을 하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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