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를 아우르는 유쾌한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

도쿄 여행을 떠나기 전날 밤, 대강의 짐을 꾸려놓고는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를 보러 예술의 전당을 찾았다.

평일 저녁에 뮤지컬을 보러 나서는 것이 얼마 만인가~ 퇴근길에 팀장님이 주신 티켓으로 직장동료와 각종 공연을 보러 다녔던 지난 시절이 떠올랐다. 그땐 그게 큰 혜택인지 몰랐는데, 지나고 보니 개인적으로는 큰 결심 없이는 가볼 수 없는 큰 공연, 좋은 자리의 티켓이었던 것 같아 새삼 감사하다.


예술의 전당에 올리는 뮤지컬 공연, 게다가 예술의 전당 개관 25주년 기념작, CJ토월극장의 재개관을 기념하는 작품이라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대단한 공연인지를 가늠케 하는 '살짜기 옵서예'. 마치 그 시절 팀장님이 주신 티켓을 받아들고 공연을 보러 가는 듯 기대 반, 설렘 반으로 극장에 들어섰다.


예술의 전당 입구에 걸린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 포스터



'살짜기 옵서예'가 공연되는 CJ 토월극장은 옛 토월극장을 새롭게 리노베이션한 중대형 극장이다. 옛 토월극장은 무대가 넓고 깊으며 객석규모가 작기로 유명했다고 한다. 이런 극장을 연출자들은 좋아했던 반면에 기획자들은 적은 객석 규모 때문에 흥행에 실패하는 일이 잦아 몹시 싫어했다고. 총 270억의 비용 중 150억의 비용을 CJ그룹에서 후원해 리노베이션한 새 극장은 객석 규모가 크게 늘고, 최첨단의 무대시설을 갖춰 연극은 물론 중형 뮤지컬과 오페라, 콘서트 공연까지 가능해졌다. 또 국내 최초로 무대 상부와 하부를 동시에 움직일 수 있는 자동제어장치를 설치해 더욱 다이나믹한 공연을 볼 수 있게 됐다. 그래서인지 실제로 '살짜기 옵서예'공연 시 영화를 방불케 하는 화려한 화면효과를 볼 수 있었다.


CJ 토월극장 내 라운지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은 다양한 방면에서 이루어진다. 특히 문화 후원은 단기간에 효과를 보기 어렵고, 꾸준히 지속적으로 투자해야 하는 까닭에 쉽게 손대지 못하는 부분이지만, 일단 몸으로 체득한 문화는 쉽게 잊히지 않는 장점이 있다. 예술의 전당 CJ토월극장 한 쪽에 설치된 CJ라운지를 둘러보며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해 온 CJ그룹의 경영철학이 자연스럽게 메세나 사업에 관한 관심으로 이어지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극장 주변을 둘러봤으니, 자~ 이제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를 보러 들어가 볼까?



오늘의 출연진은 김선영, 최재웅, 송영창, 김성기 등이 되시겠다.

함께 공연을 보러 간 블로거들이 훈훈한 배비장의 얼굴에 반해 벌써 난리 법석. ㅎ

'살짜기 옵서예'는 고전소설 '배비장전'을 원작으로 한 국내 최초 창작뮤지컬이다. 제주도의 어느 바닷가에서 펼쳐지는 천하일색 '제주기생'과 죽은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여색을 멀리하는 '배비장'의 로맨스에 대한 이야기라니 나도 내심 기대가 됐다.


7번째 공연되는 살짜기 옵서예에서 애랑 역을 맡은 뮤지컬 배우 '김선영'.
양반들을 쥐락펴락하며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보였다.


'당신 생각에 부풀은 이 가슴 살짜기 살짜기 살짜기 옵서예~'

패티 김의 노래로 유명한 이 곡이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의 아리아라는 것을 아시는지?


1966년 예그린 악단에서 처음 무대에 올린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는 한국 최초의 뮤지컬이자 우리나라 뮤지컬 역사의 시작이었다. 이 첫 공연에서 주인공인 제주기생 '애랑'의 역을 당시 라스베이거스 등 해외 뮤지컬 무대를 경험한 패티김이 맡아 큰 인기를 끌었다. '살짜기 옵서예'는 이후로 승승장구, 매 공연마다 뜨거운 화제를 모으며 총 6번이나 다시 무대에 올려지게 되는데 김희갑, 최희준, 펄시스터즈의 배인숙 등 당대의 가수들과 스타배우 신구, 박상규, 희극인 구봉서, 배삼룡, 인간문화재 박초월 등이 출연하며 화제를 모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그간 내가 봐왔던 수입 뮤지컬에서 종종 느꼈던 어색함, 무게감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좀 더 많은 관객이 편하게 뮤지컬을 볼 수 있도록 대중적인 요소를 많이 가미했달까~ 많이 웃고 손뼉치며 신 나게 즐길 수 있었던 공연이었다.



제주의 풍광을 표현한 무대와 고전을 재해석한 화려한 무대와 의상으로 보는 내내 눈이 즐거웠다.



기생들의 화려한 군무도 빼놓을 수 없는 관람 포인트.

가끔은 무대효과가 과하다 싶을 정도로 화려하지만, 그마저도 유쾌한 풍자로 넘길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재미있었다.



남자 주인공은 배비장이지만, 시종일관 '~마심', '~수다' 등 어눌한 제주 사투리로 관객을 웃겼던 '방자'가 나는 더 기억에 남는다.
제주 여행을 떠나 직접 그 구수한 사투리를 들어보고 싶기도 했다.


마무리는 해피 엔딩으로~


한국 최초의 창작 뮤지컬이라는 거창한 수식어보다 제주의 아름다움이, 방자와 비장들의 유쾌한 해학이, 주인공들의 애절한 사랑이 있어 공연을 보는 내내 몰입할 수 있었던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 이 정도라면 패티김의 노래를 18번으로 부르시는 우리 부모님과 함께 꼭 한번 다시 보고 싶다. 뮤지컬이라고 다 진지하고 심오할 필요가 있을까? 한 번쯤은 부모님의 손을 잡고 함께 노래를 따라부를 수 있는 그런 공연을 보러 가보는 것은 어떨까? 3월 말에 막을 내린 것이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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