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끝을 잡고, 난지한강공원 피크닉

날이 좀 풀리면 공원으로 나가자던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녹음이 우거지는 초여름이 되었다.

 

"난지한강공원에서 그린플러그드 서울 2013 공연하던데, 한번 가볼까?"

언제부턴가 주말에 출근하는 것이 당연한 남편이 모처럼 휴일에 쉬게 되었다는 반가운 소식.

 

그런데 입장권 예매도 못했는데 어떻게 공연에 간다는 것인지? 궁금했지만 난 묻지 않았다. 자연스레 떠오르는 장면이 있기 때문이다.

(관련 글: 2011 렛츠락 페스티벌, 천막 뒤 관람후기) 그렇다. 아이들과 함께라 오랜시간 야외 공연관람이 어려운 우리 가족은 몇년 전부터 근처 공원에 돗자리를 깔고 도둑 관람을 즐기고 있었다. 몸으로는 아이들과 자연을 즐기고, 귀로는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때로는 누구의 어떤 음악인지 서로 맞추기도 하면서~. 물론 가수들의 몸짓 하나하나에 열광하며 함께 춤추고 흥겨울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이것 또한 즐거운 공연 관람의 한 형태가 아니겠는가~?

 

 

아무튼 우리는 이렇게 '2013 그린플러그드 서울' 공연을 핑계로 지난 주말, 난지 한강공원 피크닉에 나섰다.


 

챙겨간 것은 김밥과 식스팩, 그리고 새로 산 텐트.

텐트는 내가 지난 미서부여행을 하며 새로 구입한 것인데 한번 제대로 펼쳐 보고 싶어 들고 왔다.

미서부 여행 초반, 장보러 간 코스트코에서 65불짜리 저렴이 텐트를 발견하고는 거품 가득한 한국 캠핑장비 시장에 분노하며 덜컥 사들였다. 하지만 일주일 여의 여행기간 내내 짐을 트레일러에 싣고 다니느라, 한국까지 들고오느라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정도라면 차라리 그냥 한국에서 살것을... 후회도 했다. 그런데 막상 너른 풀밭에 텐트를 쳐놓고 보니 꽤 근사하다. 메쉬소재로 된 텐트는 가족과 함께 여름 캠핑을 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소소한 장비들을 지르는 재미로 사는 남편의 이번 구입품목은 해머와 팩세트. 마침 떠나기 전에 택배가 도착해 참 유용하게 썼다.

 

 

전실이 조금 있는 시원한 매쉬텐트에 방수담요까지 길게 깔아놓으니 거실형 텐트 부럽지 않다.

 

 

텐트가 완성되기도 전에 안으로 들이닥친 아이들. 한 입 가득 과자를 물고 멀리서 들려오는 하드코어한 인디밴드 음악에 맞춰 헤드뱅잉을 한다.

헤드뱅잉은 누가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본능적인 행동이라는 것이 증명되는 순간?! 

 

 

정취에는 취해도 술에는 취하지 않는다는 야외 음주. 가볍게(?) 식스팩으로 달려본다.

 

 

오늘 내가 준비한 피크닉 메뉴는 김밥과 컵라면.
밥을 잘 먹지 않는 딸내미를 위해 올봄엔 김밥을 많이 쌌더니, 이젠 재료가 없어도 대충 모양이 나온다. 이래뵈도 참치와 크래미, 치즈가 들어간 세 가지맛 김밥~! 평소 아이들에게는 끓인 라면도 잘 먹이지 않지만, 오늘은 특별히 컵라면 하나를 허용한다.

 

 

잔디밭에 소박하게 지어진 초원의 우리 집. 멀리 한강 경치와 어우러져 호화별장이 부럽지 않다.

 

 

산책로 주변에는 이름모를 꽃들이 '아직 봄이 끝나지 않았음'을 알리고 있고...

 

 

그 길을 따라 여유로운 사람들의 즐거운 발걸음이 이어진다.

 

 

잠시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보니 웬 시계꽃 한 묶음이...

 

 

무뚝뚝한 성격에 직접 건네지는 못하고, 의자에 올려뒀단다. 스티브를 꼭 닮은 둘째녀석이 집어 내게 쥐어준다.

 

큰아이는 벌써 옆 텐트의 친구를 사귀어 모래놀이터로 마실을 나가고, 둘째녀석은 틈만 나면 텐트를 뛰쳐 나가 풀을 뜯는다.

사실 아이들과의 피크닉은 '쉼' 보다는 '부지런함'을 요한다. 먹을 때 말고는 쉬지 않고 돌아다니는 녀석을 쫓아 다니는 건 좀 힘이 들지만, 이럴 때라도 좀 뛰어 놀아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에 되도록이면 그냥 조용히 뒤를 밟는다.  

 

 

모처럼만에 여유로웠던 휴일 오후, 그런데 갑자기 내리기 시작한 비가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점점 굵어지는 빗방울을 맞으며 서둘러 텐트를 철수하고 막히는 차 안에서 공연을 듣는다.

 

 

한때 열광했던 '톡식'의 '내마음에 주단을 깔고'에 이어 차창밖으로 들려오는 '고고보이스'의 흥겨운 음악~!

 

고고보이스의 '비가 내리네'와 함께 올해 우리 가족의 첫 피크닉은 막을 내렸다. 조금 아쉬웠지만,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가족 나들이~

이제 본격적으로 여름 휴가를 보낼 캠핑장 물색을 한번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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