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이와 함께 떠난 '3박5일 방콕여행 스케치'

올핸 좀 자주 나가는 것 같다고들 한다. 가장 손이 많이 갈 시기의 아이 둘 엄마가 무슨 여행을 그리 밥먹듯 다니냐고도 한다. 
지인들은 부러워하기도, 질투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알듯, 내 여행에는 언제나 '원고'라는 숙제가 꼬리표처럼 따라 다닌다.
대부분은 원해서 즐겁게 떠나지만, 때로는 가고싶지 않은 여행을 어떤 이유로 가기도 하고, 가야만 하는 경우도 있다.

 

이번 방콕 여행이 솔직히 그랬다. '일'로 가는 것은 아니지만 기한이 정해진 항공권을 쓰기 위해 떠난 여행.
티켓을 받는 과정도 썩 유쾌하지 않았거니와 따로 끊어야 했던 아이의 항공권이 생각보다 비싸 마음 상하기도 했다. 
떠나기 전날까지 짐도 싸지 않고, 남편과 옥신각신 투닥거리기까지 했다.

그래도 달리 생각하면 나름 저렴하게 떠나는 가족여행이지 않은가.

무엇보다 '비행기'와 '수영장'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알아서 짐을 싸는 첫째녀석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다. 
숙제 부담없이 푹 쉬고, 그리웠던 태국음식도 마음껏 먹고 오자며 마음을 다잡았다.


 Day 1  인천-방콕


저가항공사를 이용해 처음 떠나는 해외여행. 4인 가족이지만 둘째녀석은 아직 24개월 미만인 관계로 좌석을 따로 끊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저가항공은 기내에 베씨넷(아기바구니) 설치가 안되는 관계로 방콕으로 가는 5시간 30분을 남편과 내가 번갈아가며 안아야 했다. 
좌석이 너무 좁지는 않을까 걱정했으나 다행히 아이 동반 가족이 우리뿐인 관계로 맨 앞좌석을 받아 일반항공사 이코노미석보다 편히 갈 수 있었다.
천방지축, 쉴 새 없이 돌아다니고 싶어하는 둘째군을 제어하기는 무척 힘들었지만, 다행히 방콕에 도착할 즈음에는 잠이 들었다.  


현지시각 21:20 (한국시각 11:20), 3년 만에 찾은 쑤완나폼 국제공항. 꼬불꼬불 반가운 태국어를 보니 아이들과의 고단했던 비행의 기억도 잠시 잊게 된다.


동남아시아 여행의 장점은 교통비 부담이 적다는 것. 게다가 아이들과 함께이니 바로 택시를 잡아타고 호텔로 향했다.
아이들을 다시 재우는 사이 남편은 다시 혼자 외출을 했다.

늦은 시각이었지만 첫날을 그냥 보낼 수 없다며 나간 그가 의기양양하게 들고 온 선물은 바로 이것~!


아... 그리웠다. 저 비닐봉지 속 음식들.

어쩌면 하나같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 커무양(돼지목살 구이), 팍풍화이뎅(모닝글로리 볶음), 쏨땀(파파야 샐러드) - 으로만 싸이퉁(포장)해 왔다. 
오랜만에 맛보는 태국맥주와 음식들~! 역시 떠나길 잘했다.   


 Day 2   방콕 (시암-아시아티크)


아침에 일어나보니 창 밖으론 이렇게 멋진 풍경이~! 금빛 시로코가 내 눈앞에 반짝반짝~

우리가 머문 호텔은 '이스틴 그랜드 사톤(Eastin Grand Hotel Sathorn)'으로 지상철인 BTS '쑤라싹'역과 연결되는 5성급 호텔이었다.
5성급이지만 프로모션으로 가격이 합리적이고, 매력적인 수영장과 조식이 있다기에 선택했다.
검색해보니 요즘 방콕을 찾는 한국 여행객들에게 가장 인기좋은 숙소인 것 같기도 했다.

직접 가보니 방콕의 명동같은 '시암'과는 BTS 네 정거장, 카오산로드나 왕궁, 아시아티크로 갈 수 있는 수상버스, 셔틀보트 선착장과도 한 정거장 거리로 매우 가까워 교통도 괜찮았다. 더운 방콕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걷는 것에 대한 부담이 심했던 나로서는 시원한 BTS에서 내려 바로 호텔 3층으로 건너올 수 있으니 위치적으로도, 시설면에서도 정말 만족했던 호텔이다. 다만 이 주변은 방콕내에서도 알아주는 교통체증지역. 3년 전에 근처에 있는 메리어트 사톤 비스타에 묵었을 때, 시암에서 택시로 40분 걸렸던 경험이 있어 택시 이동을 주로 하는 여행자에겐 비추 호텔이다.


내가 창밖 풍경에 심취해 있는 동안 아빠는 열심히 펌핑중..;
 


아이들이 이렇게 즐거워 하는 모습을 보면 가끔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이 기쁘다.  


점심부터는 방콕 먹부림에 빠져보기로 했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시암의 '솜땀누아(SOMTAM NUA)'
골목마다 마주치는 흰 셔츠에 까만 치마를 깔맞춤한 태국 대학생들의 모습이 반갑다.


'쏨땀누아'의 '누아'는 치앙마이가 있는 태국 북부 (이싼) 사투리로 '맛있다'라는 뜻이다. (표준어로는 '아러이' ^^)
솜땀이 이쪽 음식임에 착안한 이름인 것 같은데, 어쨌든 이곳은 파파야 샐러드인 '쏨땀'과 치킨 '까이양'이 유명한 맛집.
워낙 오래 전부터 맛집으로 이름난 곳이라 한번쯤 먹어보고 싶었는데, 결국 아이 둘을 데리고야 올 수 있었다. ㅎ

맛은? 소문대로~!


쏨땀누아와 더불어 패키지처럼 들러야 하는 후식 전문점 '망고 탱고'.
사실 우리는 쏨땀누아만 위치만 알고 갔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근처에서 식사하는 한국인에게 위치를 물으니 바로 알려주더란. ^^;


휴식을 위해 다시 돌아온 호텔 수영장에서 바라본 숨막히게 아름다운 일몰. 

 


호텔 근처에서 대충 끼니를 때울까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 저녁에도 나가보기로 했다.
셔틀보트를 타고 도착한 아시아티크는 요즘 뜨는 신개념 야시장. 

짜오프라야 강변에 늘어선 분위기 있는 음식점들과 길 안으로 들어찬 수 많은 상점들이 매력적인 곳이다.

시장이라고는 하지만 짜뚜짝 같은 재래시장이 아닌 거대한 쇼핑몰 같은 분위기. 그만큼 가격대도 있다.


분위기에 취해 우리도 강변 식당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강바랑 살랑 부는 노천 자리는 이미 북적북적~
하지만 졸린 둘째녀석이 덥다고 투정을 부리는 통에 우리는 실내로~. 메뉴는 딸아이가 오는 내내 노래를 불렀던 피자로 결정했다.
남편과 나는 까초님 블로그에서 본 호가든 사발잔(^^)으로 여행 분위기를 내보기로 했다. (관련 글: 방콕으로 출장 간 친구를 위한 친절돋는 방콕 맛집들 대공개, 까초님 감사합니다! )

처음보는 호가든 로제 생맥주는 달콤했고, 호가든 오리지널은 익숙한 에일 맥주의 맛이 좋았다. 
생음악도 들려와 분위기 업~! (찡찡거리는 둘째군의 목소리가 그 속에 묻혔다는 건 비밀아닌 비밀... ^^; 결국 피자를 입에 문 채로 잠이 들었다.)   


 Day 3  방콕 (시암 오션 월드, 빅C 마트)


정확히 한국 시각에 맞춰 7시 (태국 시각 5시) 기상하신 둘째군. 덕분에 매일 일찍 아침을 먹을 수 있었다.


사실 난 이런 현지 식당이 더 좋다. 향신료 냄새와 이곳 분위기를 싫어하는 아이들 때문에 이번엔 몇 번 들러보지 못했지만...


카오산로드를 갈까 고민하다가 유모차를 밀고 가기에는 무리라고 판단.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아쿠아리움에 가기로 했다.


'시암 오션월드'는 트립어드바이저에서 2013년 우수시설 (Certificate of Excellence 2013)로 선정한 곳.
(관련 링크:http://www.tripadvisor.com/Attraction_Review-g293916-d1200537-Reviews-Siam_Ocean_World-Bangkok.html)

아이들 눈높이에서 볼 수 있는 대형 어항에 상어 등 대형 어종이 많이 있다.
시간대별로 다이버와 대화를 나눌 수도, 상어나 펭귄 등의 먹이 주기를 관람할 수도 있어 아이와 함께 방콕여행을 계획한다면 한번쯤 가볼 만 하다. 
몽키트래블(전 레터박스) 같은 태국 전문 한국 온라인 여행사에서 바우처를 구입하면 요금의 60%정도 할인 받을 수 있다는건 팁~! (900바트 => 350바트)  


걸어서 15분 남짓 거리에 있는 빅C 마트에 들러 망고스틴과 두리안, 부탁받은 속옷 선물들(태국은 '와코루'가 유명하다. ^^;)을 사서 호텔로~


 Day 4,5  방콕- 인천


이후로는 계속 호텔에서 휴식을 취했다.
비록 썬배드에 누워 맥주 한잔을 마시는 여유를 누리기엔 아이들을 계속 따라다녀야했지만, 남편과 내가 바라던 방콕 여행이 어렴풋이 이런 그림이었던 것 같다. 따뜻하고 여유로운,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 이곳에서 첫째는 '맥스'라는 친구를 사귀고, 함께 수영했다. 밀가루와 우유 알러지가 있는 아이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함께 과자를 먹을 수 없음에 슬퍼하기도 했다. 둘째는 여전히 천방지축이지만, 누나를 더욱 좋아하게 된 건 확실하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는 다행히 아이들이 일찍 잠이 들었다.

 

떠나고 싶지 않은 여행도 있다. 특히 아이들과 함께 하는 여행은 많은 인내와 노력을 요한다.
그래서 앞으로 다시는 이렇게 여행하지 않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언제나 다음 여행을 계획하게 된다.

여행 끝에는 언제나 즐거운 배움이 있고, 그래서 떠날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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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1) 언제나처럼 먼저 일어나 아이들을 챙기고, 제 투덜거림을 받아주신 남편님께 감사드립니다. 당신을 '성인(聖人)'으로 인정합니다.. ^^;
덧2) 다음 방콕 여행기는 페북에 살짝 올렸던 '방콕 먹방'이 이어질 예정입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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