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 불면 남대문 골목길로, 손칼국수 먹고 아동복 쇼핑하다

계절이 바뀌는 이즈음이 되면 내가 항상 찾는 곳이 있다. 바로 남대문 시장.
뜨끈한 칼국수 한 그릇으로 속을 데운 후 돌아보는 활기찬 시장의 풍경은 새로운 계절을 맞이하기 위한 힘이 된다.

요즘 시장을 오가는 사람들의 절반은 중국인 관광객인 것 같지만, 여전히 나는 나와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위안을 얻는다.  

 

 

여름 내 입었던 옷들을 정리하고, 본격적으로 가을 옷을 꺼내입기 시작할 무렵의 시장은 그 어느때 보다도 활기차다.

 
내가 버스에서 내려 늘 가장 먼저 향하는 곳은 남대문 칼국수 골목.

남대문 시장에는 갈치조림, 꼬리곰탕, 회덮밥 등 유명한 먹거리가 많지만, 혼자 쇼핑을 나서며 가볍게 한끼 식사하기에는 칼국수 만한 것이 없다.   


 

칼국수 골목은 4호선 남대문역 5번 출구에서 가깝다. 
시장 초입의 '세계로 안경' 옆에는 비닐로 된 허름한 쪽문이 하나 있는데,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밖에서는 상상 못할 전혀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쪽문을 기준으로 100미터가량 이어져 있는 좁은 골목길에는 수십여개의 칼국수집들이 줄지어 있다. 그 앞에 일열로 앉은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음식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혼자 왔든, 둘이 왔든 대화는 불가. 등 뒤에서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기에 재빨리 그릇을 비워야 한다.

 

매너따위는 기대하기 어렵다. 점심 피크시간에 회전률을 높여야 하기에 호객행위도 만만치 않다. 
내 그릇이 다 비워질 즈음엔 '여기 자리 난다'며 지나는 사람을 붙잡아 주문을 받기도 한다.

 

참 정신없는, 그야말로 시장통 같은 풍경.
그럼에도 내가 굳이 이 골목을 찾아가 칼국수 한 그릇을 청하는 이유는 '지루한 삶' 속의 어떤 '다름'을 원하기 때문인 것 같다.
뒷덜미로 꽂히는 따가운 시선을 의식하며 치열하게 칼국수 한 그릇을 비우고 나면, 이제 뭔가가 시작되는 느낌이랄까? 


사실 남대문 시장의 칼국수 골목이 유명해진 이유는 칼국수 한 그릇을 주문하면 비빔냉면을 덤으로 주기 때문이다.

작은 접시에 담아주지만, 매콤 달콤한 양념에 계란까지 반쪽 얹어주는 것이 제대로다.

메뉴는 칼국수 외에도 보리밥, 찰밥, 비빔냉면 등이 있는데, 밥 종류에는 냉면과 칼국수가 모두 덤으로 따라 나온다.


즉석에서 반죽을 밀어 끓여주는 손칼국수는 칼칼하고 구수하다. 쌀쌀한 요즘 가장 생각나는 음식 중 하나.



뜨끈한 칼국수 한 젓가락에 짜지 앉은 열무김치를 얹어 먹으면 그야말로 폭풍 흡입~!
시골 장터의 칼국수를 먹어보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이런 맛이리라 추측해 본다.


점심을 먹은 후에는 재래시장 산책에 나선다. 눈을 크게 뜨면 들어가는 여름 상품을 득템할 수 있다. 


종착지는 언제나 아동복 코너. 우리 어릴 적 입었던 '부르뎅 아동복'의 간판을 단 건물에는 요즘 부르뎅 아동복은 없고, 보세 아동복 점포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부르뎅 아동복 건물을 기점으로 좌 우에는 마마, 크레용, 포키 등 몇개의 아동복 전문 상가들이 모여있는데, 특히 남대문 아동복 상표로 나름 이름있는 '엠버'와 '코튼' 아웃렛이 이곳에 있어 시장옷 같지 않은 퀄리티 있는 의류, 악세서리를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다.


이번 쇼핑에서 구매한 두 아이의 옷. 거의 아웃렛의 세일코너에서 건진 것으로 모두 질이 아주 좋다. 
진아의 공주풍 쉬폰 치마는 5,000원(부르뎅 아동복), 도톰한 면 가디건과 양말은 각각 15,000원, 3,000원 (코튼 아웃렛),  
정균이의 제깅스와 빨강 울 니트는 각각 3,000원, 5,000원(엠버 아웃렛).

 

총 3만원 남짓한 돈으로 두 아이의 가을 옷도 장만하고, 어머님께 드릴 덧신도 하나 사고, 칼국수도 맛나게 먹고 왔으니 나는야 알뜰 주부?!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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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Tip] 남대문 시장 칼국수 골목

* 위치: 4호선 남대문역 5번 출구 근처, 시장 초입의 '세계로 안경' 옆. 비닐로 된 허름한 쪽문을 찾을 것.
* 추천 식당: 골목내 칼국수는 대부분 비슷한 맛을 낸다지만 내가 즐겨 찾는 곳은 10호 남촌분식. 안쪽으로 깊이 들어가야 찾을 수 있다.
* 메뉴(서비스 품목): 칼국수(비빔냉면) 5,000원, 냉면(칼국수) 5,500원, 보리밥(칼국수, 비빔냉면) 5,500원, 찰밥(칼국수, 비빔냉면) 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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