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 사고시 행동요령, 어떻게 해야할까? - 세월호 사고를 보며

먹먹한 가슴으로 세월호 침몰 소식을 보다가 문득 둘째 임신중에 다녀온 크루즈 여행이 떠올랐다.
당시 나는 임신 6개월에 접어들어 안정기에 접어든 임산부였다.
어디든 떠나고 싶어 좀이 쑤시던 차에 남편과 4살 딸내미와 함께 한중일 크루즈를 타고 여름휴가를 떠났다.



배는 무척 컸다. 세계 2위 크루즈 선사인 미국 '로열 캐리비안 인터내셔널'사의 호화 크루즈 레전드(Legend of the Seas)호,
탑승 가능한 승객은 2,000여 명, 승무원만 약 700명 정도되는 무려 7만톤 급 대형 크루즈였다.
영화를 통해 알려진 타이타닉호가 약 4만 3,000톤, 세월호가 7,000톤인 것을 고려하면 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믿을만한 회사의 크루즈, 게다가 큰 파도에도 진동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대형선박이라 임신중에도 안전하게 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숙소를 옮기지 않아도 된다는 점도, 이동중에도 아이가 놀 수 있는 커다란 수영장과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그런데 막상 크루즈를 타보니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잘 짜여진 안전관련 메뉴얼과 철저한 안전훈련이었다.



선박 사고시 행동요령, '비상 소집장소로 이동하라!'



일단 객실에는 당연히 승객을 위한 구명조끼가 비치되어 있었다. 어린이용 구명조끼는 따로 가져다 줬다. 

승선 첫날, 모든 인원이 배에 탑승한 직후에는 배가 출발하기 전까지 비상 안전훈련 및 구명조끼 착용법, 비상시 소집 장소에 대해 1시간 가량 집체교육을 받았다. 이 비상 훈련(Emergency Drills)은 해상법에 따라 승선 후 24시간 내에 받는 필수 교육이다. 기억에 남는 내용은 비상상황에서는 누구도 선실로 이동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경고음이 울리면 각자 교육받은 소집장소(데크)로 이동해야 한다고 했다. 최후의 수단으로 배를 버려야 할 때 비상 소집 장소에 모여 구조선으로 이동하거나 뛰어내려야 한다. 선원들은 어떤 조치를 취하는지, 예를 들면 선반에 있는 물건이 쏟아지지 않게 장을 잠근다거나 오픈 데크를 폐쇄한다거나 정전을 대비해 엘리베이터를 폐쇄하고, 배가 심하게 흔들릴 경우 계단 끝에 멀미나는 승객을 위한 구토봉투가 준비된다는 한다는 사실도 알려줬다. 배가 흔들리면 난간을 꼭 잡으라는 기본적인 안전수칙도 빼놓지 않았다. 


비상시 진아가 가야할 곳은 Deck 9. 만 3세 아이들은 노란색 손목밴드를 찼다.

만 12세 미만 어린이들은 나이대 별로 손목밴드를 받았다. 밴드의 색은 빨강 노랑 등 다양했는데, 이 색상과 쓰여있는 번호는 실제 응급상황이 발생했을때 선원이 먼저 안전하게 대피시킬 수 있는 표식이 된다. 혹시 아이가 선내 클럽이나 프로그램에 참가하느라 부모와 함께 있지 않더라도 승무원들이 팔찌를 보고 아이를 식별해 소집장소로 이동시켜준다. 부모에게 이 팔찌는 우리 아이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끈이기도 하다. 부모들은 비상시 아이를 찾으러 다니지 말라고 했다. 혼란의 원인이자 배가 더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당시 만 3살이었던 진아가 대피하는 장소는 Deck 9, 실제 교육이 끝난 후에 확인을 하러 갔다. 손목밴드는 가위로 끊지 않으면 빠지지 않게 되어있고, 크루즈 탑승시부터 내리는 며칠간, 밥을 먹거나 파티에 참석할 때도, 기항지 투어를 할 때도 꼭 차고있어야 했다.


배 좌우에는 구명정이 달려 있었는데, 크루즈에 비하면 1/10 도 되지 않는 아주 작은 배였지만 하나에 무려 150명이나 구조할 수 있는 규모였다. 비상시에는 크레인으로 구명정을 내리고 탑승전 안내받은 안전구역에 모여 차례로 탑승한다고.

사실 재미난 쇼 대신 교육으로 항해를 시작한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교육을 받는 동안, 혹은 아이의 손목 밴드를 보며 생각지도 못했던 위기상황을 상상하며 오히려 불안감이 커졌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출항 4일차에, 막상 선상에서 직접 태풍을 마주하고, 항로가 바뀌는 상황을 접하니 잘 짜여진 위기관리 메뉴얼과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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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타닉호의 침몰은 빙산과의 충돌 때문이라기보다는 절대로 침몰하지 않을 것이라는 승무원들의 태도와 안일한 대처 때문이었다고 한다. 나도 그랬고, 아마 세월호에 탄 사람들도 아마 '큰 배에 대한 믿음'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안전 훈련 한번 받지 못했음에도 마지막 순간까지도 안내방송을 믿었고, 선실을 떠나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세월호 관련, 지금은 누구의 잘잘못을 가릴 때가 아니고 구조와 원인규명에 힘을 써야 할 때이다. 그러나 이 믿을 수 없는 상황이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아 자꾸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자식 가진 부모 입장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기적을 바랄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

부디 실종자들이 탈 없이 돌아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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