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년의 시간속으로 떠난 가을여행, 경주 남산 '칠불암'으로

새벽부터 들려오는 닭 울음 소리에 눈을 떴다.

전날 늦게까지 잠들지 못해 깨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문틈으로 스며드는 햇살에 정신만 더 맑아졌다.

문을 활짝 열어젖히니 어느새 해가 중천. 고작 일곱시인데 말이다.

 

 

이날 내가 묵은 곳은 '서악서원'. 신라 학자인 설총과 삼국 통일의 중심인물인 김유신 장균 등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곳이다. '서원'이라는 곳은 원래 인재를 키우고 제사를 지내며 유교적 향촌 질서를 잡아나가는 일종의 사립학교같은 곳이다. 요즘은 내부시설 일부를 개조해 샤워시설과 현대식 화장실, 난방시설을 갖추고 일반인에게도 합리적인 가격으로 하룻밤 묵어갈 수 있게 하고 있다.

 

 

두 세사람이 누우면 꽉 차는 좁은 방, 슬리퍼 대신 고무신, 화장실을 가려면 찬바람을 맞아야 하지만 하룻밤 자고나니 이곳을 아이들이 더 좋아할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 언젠가 다시 이 곳을 찾아 저 작은 고무신을 꼭 신겨보리~ (ㅎㅎ) 

 

▲ 서악서원의 강당으로 사용되는 시습당. 나는 동재에 묵었다.

 

 

오늘은 아침부터 산행이 예정되어 있다. 서둘러 아침을 먹고 경주 남산 칠불암으로 향했다.

등산로 초입에는 사과가 주렁주렁 열린 과수원이 꽤 보였는데, 일행 중 한 명이 인심좋게 한 바구니를 사서 나눴다.

주머니에 대충 넣은 터라 산을 오를 때는 살짝 걸리적 거렸는데, 산 정상에서 맛보니 얼마나 달고 시원하던지~

 

 

아침 산행의 묘미는 이슬 머금은 초록을 만날 수 있다는 것. 

 

 

 

계곡길을 따라 줄지어 쌓아놓은 돌탑은 경이롭기 그지없다. 누구의 어떤 염원이 담겨있을까?

 

 

소나무 숲을 따라 완만한 산길을 한 시간 남짓 오르다보면 갑자기 경사가 가팔라지며 대숲이 시작되는 곳을 만나게 된다.

이 계단을 올라 동남산에서 가장 깊은 골짜기의 끝인 봉화골 칠불암에 이르게 된다.

 

 

와~! 오색으로 물들어가는 경주 남산의 풍경과 칠불암의 조화가 그림같다.

이렇게 험한 산등성이에 어떻게 절을 지을 수 있었을까?

 

▲ 국보 312호, 칠불암 마애석불

 

절터 위에는 불단이 병풍처럼 솟아있다. 이 위에 삼존불이 실감나게 새겨져 있는데, 그 크기와 섬세함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불상들은 통일신라시대 8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각각 마애 삼존불과 사방불로 '칠불암 마애석불'이라 불린다고.

칠불암 마애석불은 국보 312호로 경주 남산에서는 유일한 국보다.

 

 

칠불암 마애석불 앞에서는 일요일을 맞아 법회가 열리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밥 지어지는 구수한 냄새가...

여행을 하며 절에 올라본 적은 있어도, 이렇게 법회를 하는 모습이나 공양을 만드는 모습은 처음이다. 종교를 떠나 경건하고 푸근한 풍경.

 

 

법회가 열리는 동안은 암자를 둘러볼 수 없으니 칠불암 옆 등성이를 따라 조금 더 올라 정상에 다녀오기로 했다.

칠불암에서 동남산 정상까지는 얼마 높지 않은데, 큰 바위가 많아 험하다.

 

 

당시, 산이라고는 관악산 밖에 올라본 적 없는 내게 경주 남산은 닥치는 대로 붙잡고 엉금엉금 기어 오를 수 밖에 없는 험한 돌산이었다.

하지만 힘겹게 오르며 문득문득 뒤돌아 보면 이런 숨막히는 절경이~! 

 

 

산 정상에 다다르니 너무나 신기하게도 낭떠러지 바로 앞에 불상이 있다.

 

▲ 보물 199호, 신선암 마애보살 반가상

 

보리수 잎 모양의 감실 안에 구름을 타고 신선암 마애보살 반가상이 있다.

오른 손엔 꽃을 들고 왼 손은 설법인을 한 부처는 한없이 자애로운 표정으로 세상을 향한다.

보고 또 봐도 감탄에 감탄을 거듭하게되는 신비로운 모습. '하늘에 신선이 노닌다'는 표현이 정말 그대로였다.

 

 

하지만 길이 험해도 신선암 마애보살 반가상을 보러 찾아오는 이들이 많아 내게 허락된 시간은 많지 않았다.

 

 

다시 칠불암으로 내려오니 절 앞에 긴 줄이 늘어서 있다.

비록 법회에는 참석하지 않았지만, 여기저기서 풍겨오는 고소한 비빔밥 냄새에 출출해져 염치 불고하고 나도 따라 줄을 섰다.

 

 

대충 돌탑 턱에 자리를 잡고 태어나 처음으로 먹어보는 공양. 

나물에 잡채를 한 데 넣어 비벼 들깨미역국과 함께 먹으니 그야말로 꿀맛이다.

 

 

이번 경주여행의 하일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칠불암 마애석불(국보)과 신선암 마애보살 반가상(보물)을 본 후, 요즘 경주 시내에서 핫하다는 한 카페에 들어섰다. 한 눈에 보기에도 한옥집 터를 고쳐 만든 카페로 너른 마당에 있는 아이들 장난감이 눈에 띄었다.   

 

 

가을 산행 후에 맛보는 달콤한 우유 눈꽃 빙수.

'혼자 먹기에 너무 많은 거 아냐?' 투덜거렸지만, 그 말이 무색하게도 금새 먹어치웠다.

 

팸투어로 떠난 여행이었다. 한번쯤 가보고 팠던 경주라는 말에 잠깐의 고민도 하지 않았다. (물론, 남편의 스케줄이 되는지는 확인했지만.)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움직여야 했지만, '차없이 떠나는 주말여행 코스북' 저자와 경주 남산연구소에서 짜준 일정이었으니 아마 1박 2일로 떠나는 가장 알찬 경주 동남산 여행이지 않았을까 싶다. 어렴풋한 수학여행의 기억을 더듬으며 떠났으나 대단한 경주의 새발견이었다. 바위마다 숨어있는 불상들에서 그렇게 감동을 받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요즘 국내여행을 다니며 부쩍 내 나라의 아름다움에 대해 감탄하고 무지함에 부끄러워하고 있다. 경주는 꼭 가족과 함께 다시 가보는 걸로~

 

* 이 여행은 '차없이 떠나는 주말여행 코스북' 독자와 블로거가 함께 떠난 팸투어로 경주 남산 연구소와 도서출판 길벗의 후원으로 다녀왔습니다.


[여행 Tip]

경주 남산 연구소 유적답사 (홈페이지에서 다양한 코스 참조)

일시: 토요일 13:30 / 일,공휴일 09:30 / 여름방학중 매일 09:30 

참가 신청: 참가 전일까지 (코스별 선착순 50명)
http://www.kjnamsa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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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댓글(2)

  • 2014.12.09 21:11 신고

    믿기지 않네요. 벌써 한달이 훌쩍~
    한달만에 사방에 눈이 쌓이고, 이 이야기를 지금 쓰고 있는 저는 또 옛날얘기 하는 사람이 되어가고...ㅋㅋ
    그래도 마지막에 눈꽃빙수는 또 먹고 싶습니다. ㅎㅎ

    • 2014.12.20 23:10 신고

      그쵸.. 갑자기 너무 추워졌어요.
      영하 11도에 체감기온은 더 떨어져 볼이 얼어붙는 것 같더니...
      발리 와서 하루 지나니 언제 그랬냐는듯 또 더운 날씨에 적응이 되네요.
      인간이란...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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