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니지안 블루의 로망을 심어준 '지금 이 순간, 튀니지'

내가 막연히 아프리카 어디쯤으로만 생각하던 '튀니지(Tunisia)'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터키여행을 준비하면서다. 

이스탄불로 향하는 항공권을 구하던 중 튀니지의 수도인 튀니스를 거쳐가는 노선을 알게 되었고, 스탑오버를 해볼까 하는 생각에 위치와 여행정보를 찾아봤더랬다. 당시엔 더 저렴한 한공권을 구입하는 바람에 아쉽게도 튀니지에 들러보지 못했으나 아프리카가 생각보다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 요즘 서점 여행코너에 가보면 알록달록한 원색의 표지로 매대를 예쁘게 장식하는 책들이 있다. 바로 상상출판의 '지금 이 순간' 시리즈다. 
2010년 EBS의 세계테마기행 시리즈의 2015년판이라도 할 수 있는 이 책들은 프랑스, 라오스, 페루, 그리고 튀니지까지 총 네 권이 나와있다.


그로부터 5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다시 튀니지를 만났다. 이번엔 책으로. 


여행웹진 <겟어바웃> 필진으로 알게 되어 현재는 페친으로 더욱 친숙한 '권기정 작가'께서 '지금 이 순간, 튀니지 - 일곱 빛깔 지중해의 조용한 천국 (상상출판)'을 펴냈다. '권기정 작가'의 온라인 이름은 '우갈리(Ugali)'다. 우갈리는 옥수수를 개어 만든 아프리카 음식이라고 한다. 케냐 자원봉사나 탄자니아 관광청 근무, 아프리카 대륙 17개국을 여행한 경력을 굳이 들먹이지 않아도 그의 아프리카 사랑이 어느정도인지 가늠해 볼 수 있다.    


지중해와 사하라 사막을 표지 메인색으로 뽑아낸 이 감각적인 책은 2010년 EBS의 세계테마기행 시리즈 중 하나인 '일곱 빛깔 지중해의 조용한 천국 튀니지'를 리뉴얼한 것이라고 했다. EBS의 간판 프로인 세계테마기행 시리즈이니 책의 퀄리티는 검증이 된 셈. 관건은 이후 내용이 얼마나 성실하게 반영되었느냐인데, 놀랍게도 작가는 이 책을 위해 2014년에 다시 튀니지에 방문할 정도로 열성을 다했다고 한다. 튀니지의 역사 중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손꼽히는 재스민 혁명이 2010년에 일났고, 이후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많은 것이 바뀌었기 때문. 독자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이지만 작가로서는 무척 일이 많았을 것 같다. 실제로 작가가 책과 함께 보낸 엽서에 '거의 새로 쓰다싶이 했다'라는 표현이 있는 걸 보니 그 고충이 느껴지는 듯 하다.



자, 그럼 잠깐 튀니지에 대해 한번 알아볼까?

<지금 이 순간 튀니지> 에 따르면 튀니지는 고대 페니키아, 로마제국, 이집트 파티마 왕조가 처음 시작된 곳으로 북아프리카 이슬람 문화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지리적으로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서유럽과 가까워 73년간이나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던 아픈 역사가 있다. 따라서 아프리카 대륙에 있지만, 다양한 문화의 스펙트럼을 볼 수 있는 나라이다. 튀니지를 일컬어 '머리는 유럽에, 가슴은 아랍에, 다리는 아프리카에 있는 나라' 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요즘의 튀니지는 유럽으로 연결되는 비행편이 다양해 유럽 관광객이 많고, 특히 프랑스인들이 즐겨찾는 인기만점 휴양지이다. 우리로서는 굳이 아프리카 여행을 따로 계획하지 않아도 프랑스, 터키 등 유럽여행을 갈 때 한번 쯤 욕심 내 볼만한 지역이기도 하다.    



책을 읽는 동안 튀니지와 터키가 많이 비슷함을 발견했다. 일단 간간히 등장하는 사진 속의 국기부터가 비슷했다. 찾아보니 붉은 바탕에 초승달이 그려진 국기(초승달은 이슬람 종교를 뜻한다.)는 과거 튀니지가 오스만 제국의 지배하에 있을 때 터키에서 받아들인 것이라고 한다. 마을마다 이슬람 성전인 모스크가 있고, 하루 다섯 번씩 알라의 위대함을 알리는 아잔(Azan)소리가 들리는 점. 일상이 종교의 영향을 받고 있지만, 온건한 수니파가 대부분이라 종교적 규율이 상대적으로 느슨하다는 점. 그래서 히잡과 긴 퍼머머리가 공존한다는 점. 사소하게는 카펫 가게에서 차를 대접하며 손님을 호객하는 모습이나 터키 스타일의 진한 커피를 즐겨 마시는 취향까지 모두 터키를 닮았다. 여행 후 지금까지도 심하게 터키앓이를 하고 있는 나로서는 그래서 더욱 궁금하고, 가보고 싶어졌다. 


 지금 이 순간, 튀니지의 목차 - 튀니지안 블루, 올리브 나무, 스타워즈, 사하라 사막 등 제목만 봐도 상상 속 아프리카와 다른 풍경이 그려진다. 


본격적으로 책 속으로 들어가보자!

목차는 튀니지가 가진 자연의 축복 세 가지를 기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바로 Sand, Sun, Sea. 사하라 사막, 태양, 그리고 지중해를 뜻하는 이 세 가지 S를 중심으로 유명한 올리브 나무나 스타워즈 촬영지 등 특산물이나 볼거리, 재미거리 등을 더해 구성했다. 




내용은 튀니지라는 생소한 나라에 대해 차분하고 진지하게, 그러나 어렵지 않게 소개가 되어있다. 역사적, 지리적 사실과 함께 볼거리, 여행 팁, 가는 법 등을 마치 튀니지 방랑을 갓 마친 여행선배가 옆에서 설명해주는 듯 세심하다. 



주요 관광지 뿐 아니라 마트 풍경이라던지, 생동감 넘치는 사람들의 사진이 많아 상상하며 책 읽는 재미가 있다. 



<이금 이 순간 튀니지>는 가이드북이 아니지만 가이드북에서도 제공하기 어려운 꿀팁이나 지식이 들어있다. 예를 들면 바가지가 극성인 튀니지 공항에서 호객꾼에게 낚이지 않는 법이라던지, 콜로세움과 원형경기장의 차이라던지, 주요 볼거리 스팟에 대한 설명이 Travel Tip에 들어있어 실제 튀니지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 



중간마다 색지로 구성된 'INSIDE Tunisia'에서는 이슬람 국가인 튀니지에서 돼지고기를 먹을 수 있는 곳이라던지, 숨은 비화와 같은 흥미거리들이 숨어있다.  



맨 뒤에 등장하는 '튀니지 좀 더 알기'. 나는 책 읽기에 앞서 이 부분을 먼저 읽기를 추천한다. 내용에 종종 언급되는 '재스민 혁명'에 대해 자세하게 나와있어 튀니지라는 나라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튀니지의 음식을 소개하는 부분에서는 침이 꼴깍. 북아프리카, 이탈리아, 프랑스 음식문화가 혼재되어있어 낯설지 않다. 꾸스꾸스같이 한번쯤 들어보고, 먹어봤을 법한 요리도 있다.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인상깊게 본 곳은 '튀니지안 블루의 절정'이라는 시디 부 사이드(Sidi Bou Said)였다. 튀니지의 산토리니라 불리는 이곳은 강한 햇빛을 반사시키기 위해 칠한 흰 벽과 바다를 닮은 푸른 대문을 가진 100년 된 집들이 지중해를 배경으로 시원한 마을 풍광을 연출하는 곳이라고 한다. 유럽 식민시절 프랑스 등에서 건너온 많은 예술가들이 튀니지에서 작품활동을 했는데, 그중에는 이름만 대도 알만한 화가 파울 클레와 소설가 앙드레 지드, 모파상, 발베르 카뮈, 생텍쥐베리, 보부아르 등이 있다고. 이들이 쉬어갔다는 카페 데 나트(Cafe des Nattes)의 사진을 보다가 문득 그곳의 화려한 카펫에 앉아 민트티를 홀짝이며 석양에 물드는 지중해를 바라보고 싶어졌다. 요즘의 내 심정같이 황사로 뿌옇게 물든 하늘을 보다가 눈이 시리도록 푸른 시디 부 사이드의 튀니지안 블루를 마주하니 울컥, 눈물이 날 지경. 떠날 때가 되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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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출판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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