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로 물드는 아름다운 우리나라, 2박 3일 정선여행 스케치

빠듯한 추석연휴를 보낸 후, 이틀 휴가를 내 정선여행을 다녀왔다. 

가을은 한국만큼 아름다운 곳이 드문 것 같다. 

특히 이번 정선여행에서는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벅차게 느낄 수 있었다. 


아직 한낮의 햇살은 뜨겁지만 한들대는 코스모스에서, 물결치는 황금들판에서, 

군데군데 붉게 물들어가는 단풍잎에서 성큼 다가온 가을을 느낄 수 있었다.

일상따위 제쳐두고 마냥 떠돌고 싶었던 아름다운 날들~!


2박 3일간 돌아본 아름다운 우리나라, 정선여행을 스케치 해본다. 



DAY 1. 안흥 찐빵 마을을 거쳐 정선으로 


▲ 황금들녘을 벗삼아 1차 목적지인 안흥으로 향하는길


이런 날씨에 집에 있으면 죄악이라고 했던가. 

창문에 비친 푸른 하늘만으로도 왠지 심통이 나고 엉덩이를 들썩거리게 되는 날. 
추석 연휴 마지막 날 떠나는 강원도 여행이라 길 막힐 일 없고, 아이의 가을 방학이 시작되어(요즘 애들은 참 학교 다닐맛 날 듯?) 

2박 3일로 다녀올 수 있으니 마음까지 넉넉했다. 


한 가지 문제는 내가 전날까지 밀린 업무를 챙기느라 새벽 쪽잠을 자고 아침에 부랴부랴 가방을 챙겨 떠났다는 것. 


"누가 보면 해외여행 가는 줄 알겠다."

"냉장고를 통째로 가져가지 그래?"

갖은 구박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어이 남편이 싸놓은 짐을 풀어 다시 쌌다. 

반팔 옷에서 패딩 점퍼까지 챙긴 캐리어 하나, 아이스박스 큰 것, 차 안에서 먹을 음료수를 담은 냉장 가방, 

네 가족의 샌들과 수영복, 돗자리, 코펠 등을 두서없이 챙기다 보니 차 트렁크에 간신히 우겨 넣을 수 있는 정도.  


"그래도 없는 것보다 넘치는 게 좋지 않겠어?"



이렇게 우리가 향한 곳은 강원도 정선.


왜 하필 정선이냐고 묻는다면 지난 달에 열심히 기웃거린 '산림청 국립 자연휴양림' 예약 사이트에서 '이틀치 숙소'라는 이삭을 주웠기 때문이다.

마침 TV에서는 '1박2일 정선편'이 방송되고 있었고, 우연의 일치로 내가 예약한 곳이 바로 그 1박 2일에 등장한 가리왕산 자연휴양림이었다.


일단 숙소 예약을 하고, 주변 관광지를 물색해보니 한반도 모양의 풍경이 있는 병방치, 정선 레일바이크, 

아리랑 발생지인 아우라지, 정선 오일장 등 볼거리가 엄청났다. 


게다가 정선은 삼시세끼 정선편의 그 정선이기도 하고, 이나영과 원빈이 결혼식을 올린 그 경치좋은 장소가 있는 곳이 아니던가? 

얻어걸린 숙소치고는 주변에 유명한 곳이 많아 점점 기대가 커졌다.


▲ 한들대는 코스모스와 푸른 하늘의 완벽한 조화. 보정이 필요없는 날씨였다.


지도를 조회해 보니 서울에서 영동고속도를 타고 정선으로 가는 길에는 찐빵의 원조, 안흥이 자리잡고 있었다.

마침 안흥에서는 주말부터 열릴 '안흥 찐빵 축제' 준비가 한창이었다.
러 심어놓은 듯 했지만 활짝 핀 코스모스는 제대로 사진 포인트였다.


▲ 안흥찐빵 한 박스는 먹어줘야 정선 여행의 시작

안흥은 생각보다 작은 마을이었다. 찐빵이 유명해 아예 이름을 '안흥 찐빵 마을'이라고 칭한 귀여운 동네.

영동고속도로 개통 이전에는 서울-강릉을 오가는 이들이 반드시 거쳐야 했던 중간지점이었다고 한다. 

마땅한 먹거리가 부족하던 시절에 안흥에서 찐빵을 포장해 가곤 했는데 그게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찐빵은 낱개로는 안 팔고 20개, 25들이 박스로만 팔았는데, 

사람들은 바로 먹을 따끈한 찐빵과 냉동할 식힌 찐빵을 섞어 몇 박스씩 사가곤 했다.


기다린 것이 아까워 나도 몇 박스 포장할까 하다가 여행중 보관이 어려울 것 같아 눈물을 머금고 한 박스만 주문했다.

아기 엉덩이처럼 뽀얗고 보드라운 찐빵은 팥소가 달지 않고 빵은 고소해 자꾸만 손이 갔다. 

  

▲ 병방치 전망대에서 신이 난 모자


고즈넉한 안흥에서 생각보다 오랜 시간을 보낸 탓에 목적지인 정선에는 오후 늦게나 도착하게 되었다. 


처음 들른 곳은 한반도 지형으로 유명한 병방치. 

작년에 영월의 선암마을에 들렀을 때도 그랬지만, 사실 한반도 지형을 한 언덕이 왜 관광지인지 궁금해 들렀다.


집이 분포한 모양이 멀리서 보면 한반도 모양 같다고 해서 한국인 패키지 여행상품의 필수 코스가 된 

'하와이 한국 지도 마을'을 처음 봤을 때 느꼈던 충격에서 아직 헤어나지 못했달까. 

(별것 아닌 것도 의미 부여하기에 따라 관광상품으로 만들어 지는구나 싶은?)  


그런데 영월이나 정선의 한반도 지형은 낮은 언덕 주위로 물길이 흐르는 모양새가 신기하게도 한반도의 모습과 정말 많이 닮았다. 

광물질이 섞인 강물은 햇빛을 받아 영롱한 에메랄드 색을 띄었고, 

양털처럼 포근해 보이는 산등성이는 노랗고 붉은 색으로 자연스럽게 물들고 있었다. 

스러지는 태양의 온기를 받은 병방치는 진정 감탄사를 내뱉을 수 밖에 없는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DAY 2. 정선의 가을을 제대로 즐기는 법, 가리왕산 자연휴양림과 정선 레일바이크
 

▲ 가리왕산 자연휴양림 산림휴양관


어둑어둑할 때 도착해서 숙소로 직행한 우리는 어제의 게으름을 만회하고자 

아침 일찍, 세수도 하지 않고 가리왕산 자연휴양림 산책에 나섰다. 



가리왕산은 정선 시내에서 20분쯤 굽이굽이 들어와야 만날 수 있는 외곽이고, 가리왕산 자연휴양림 숙소는 그 중에서도 깊은 산 속에 있다. 

마을이 있는 곳이 해발 300미터이니 우리가 묵었던 숙소는 400미터 쯤 될 것 같다. 

래서인지 해가 잘 드는 곳에서는 이미 빨갛게 물든 절정의 단풍을 볼 수 있었다.   


▲ KBS 해피선데이 1박 2일 정선 가리왕산 편 입수 포인트

이곳이 바로 1박2일의 추성훈이 세수를 하다가 멋지게 입수를 하게된 곳.

산림휴양관 바로 옆에 있는 계곡이라 눈썰미 좋은 남편은 보자마자 

"여기야~! 여기~!" 흥분하며 소리쳤더랬다.


살짝 손을 담궈보니 물이 소름 끼칠만큼 찼다. 

물이 차서 한여름에도 수영이 금지된 곳이라는데 역시 상남자 추성훈의 패기란~!  



아침 산행의 묘미는 이슬 머금은 초록을 만날 수 있다는 것. 

마음은 가리왕산 정선으로 향했지만, 등산로를 살짝 걸어보니 아이들과 함께 갈 코스는 아닌 것 같아 산책로로 방향을 잡았다. 



자작나무, 소나무, 동백나무 등 각종 나무들과 이끼를 벗하며 걸었던 1시간 남짓한 산책길. 

벗겨진 나무 껍질로 가면 놀이도 하고, 



출렁다리를 출렁출렁 뛰어보기도 하며 초가을 산을 만끽했다.


▲ 산과 계곡, 황금들판을 벗삼아 달리는 레일바이크


아침까지만 해도 레일바이크는 탈 수 있을거라 기대하지 않았다. 

미리 알아보지 않은 탓에 인터넷 예약 시기를 놓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를 해보니 현장 구매가 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주말이면 그마저도 새벽부터 줄을 선 사람들 때문에 일찍 동이 나지만, 연휴 끝의 평일이라 자리가 있었듯. 


우여곡절 끝에 1시에 출발하는, 끝에서 두 번째 레일바이크에 올라탈 수 있었다. 


 서너 개의 길고 긴 터널을 지나는 시원하고 재미난 경험을 할 수 있다.


레일바이크는 구절역에서 아우라지역까지 약 7Km의 철길을 달리는 코스다. 

계곡과 논밭, 터널을 지나는 약 1시간 여의 레일바이크 라이딩은 그야말로 정선의 매력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여정이었다. 


대부분의 코스가 내리막 길이어서 페달을 밟지 않아도 적당한 속도로 앞으로 나아가 아이들과 함께 타기에도 무리 없었다. 

천천히 가다가 갑자기  백미터나 되는 긴 터널을 빠른 속도로 지날 때는 완전 스릴 만점~! 


 1급수에서만 산다는 어름치를 형상화 해 놓은 아우라지 역


돌아올 때는 아우라지 역에서 바이크를 반납하고 풍경열차라는 이름의 기차를 타고 왔는데, 이 또한 아이들이 무척 좋아했다.



아우라지역 건너편에는 정선 아리랑의 발원지가 있다. 누각과 처녀상, 정선아리랑의 유래를 적은 안내판이 이곳의 역사를 말해준다.

아우라지는 구절리에서 흐르는 송천과 삼척 중봉산에서 흐르는 골지천이 합류해 어우러진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하는데, 

강원도에서 벌목한 목재를 이곳에 띄워 물길을 따라 한양까지 운반했다고. 



아우라지 역 주변은 공원으로 잘 조성이 되어서 아이들과 함께 뛰어놀기 좋았다. 

전기를 사용할 수 있는 캠핑장과 높은 그네, 넓은 잔디구장이 있어 요즘같은 계절에 캠핑여행을 떠나봐도 좋을 듯.



DAY 3. 비오는 숲 속에서는 자연에서 난 재료로 먹고 놀기 


저녁부터 날이 꾸물꾸물하더니 여행 마지막 날에는 결국 빗소리에 잠이 깼다. 

여행 중에, 그것도 산 속에서 비를 만나면 참 난감하다. 그래도 떠나는 날이니 얼마나 다행인가. 


비가 오면 오는 대로, 숲 속의 반나절을 즐겨보기로 했다. 

어항에는 밤 사이 눈 먼 송사리 몇 마리가 잡혔다. 

작은 물고기는 놓아주라고 했더니 두 아이가 서로 자기가 하겠다며 두 손으로 미끈미끈 송사리를 잘도 잡는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숲 해설을 들으려던 계획은 포기하고, 

가리왕산자연휴양림에서 난 재료로 목공예품을 만드는 수업을 듣기로 했다.



큰 아이는 장승을, 작은 아이는 목걸이를 만들었는데, 

도토리 껍질로 장식을 하고 크고 작은 나뭇가지를 이리저리 이어붙이는 과정을 참 재미있어 했다.


공예에 쓰이는 나무는 어떤 특징이 있는지, 

예를 들면 쪽동백 나무의 표면은 맨질맨질 사포질을 한듯 갈색으로 윤이 난다거나 

다람쥐가 솔방울 속의 씨앗을 먹고 남은 부분을 공예에 활용한다거나 하는 사실은 내가 들어도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사흘간 정들었던 가리왕산휴양림 숙소를 떠나 집으로 향하는 길. 

산에서 내려오는 길은 마을 중턱에 걸린 운무 덕에 마치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여행을 하는 내내 '**와 함께 왔으면 더 좋았을 걸 그랬어.' 라고 대상을 바꿔가며 몇 번이나 말 했는지 모르겠다. 

돌이켜 보니 정선은 누구에게나 추천하고픈 장소가 아니었나 싶다.


이제 열흘 정도만 있으면 갖가지 햇곡식과 색색이 눈부신 단풍이 절정을 이르는 가을의 중턱이다. 

바야흐로, 누구라도 떠날 때다.


여행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로 귀찮고 피곤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힘내서 떠난 만큼의 가치가 있다. 


- 무라카미 하루키,<채소의 기분, 바다표범의 키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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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Tip]

* 안흥 찐빵마을

 면사무소앞 안흥찐빵이 유명하다. 박스로만 판매한다. 20개 1만 원, 25개 1만2천 원


* 병방치 

 병방치 스카이워크(입장료 5천 원)가 유명하지만 조금만 더 인내심을 발휘해 전망대까지 오르면 무료로 훨씬 시원한 전망을 볼 수 있다.

통유리로 병방치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롯데리아가 있는 곳


* 가리왕산 자연휴양림
홈페이지: 산림청 자연휴양림 
http://www.huyang.go.kr
이용문의: (033) 562-5833

 아이와 함께 가리왕산 자연휴양림을 찾는다면 매일 10시 숲해설, 11시 목공예 체험을 놓치지 말자.


* 정선 레일바이크
- 인터넷 예약: http://www.railbike.co.kr
- 이용문의: (033) 563-8787

가격: 2인승 25000원, 4인승 35000원

※ 인터넷 예매와 현장 구매가 50:50으로 이루어 진다. 

단, 인터넷 예매는 매 3일 전에 마감되며, 현장 구매는 당일 오전 8시부터 선착순 판매된다. 평일에는 여유가 있는 편. 4인승부터 마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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