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인디언의 성스러운 땅, 와누스케윈 헤리티지 파크

같은 북미대륙에 있어 얼핏 비슷해 보이는 캐나다와 미국. 

그러나 여행을 하다보면 다른 점들이 많이 보인다. 

가장 크게 느끼는 차이점 중 하나는 원주민, 인디언에 대한 인식의 차이다. 


굳이 캐나다의 어원이 인디언 언어로 '마을, 정착지'를 뜻하는 '카나타(Kanata)'이고, 대도시 토론토도 '만남의 장소'를 뜻하는 단어임을 들먹이지 않아도 공항에서부터 만날 수 있는 토템 폴, 어디서든 쉽게 만날 수 있는 원주민의 예술작품, 잘 보존되고 있는 유적지와 박물관 등이 인디언에 대한 캐네디언의 태도를 말한다. 


물론 그들에게도 개척과 정복의 과거가 있지만, 원주민의 역사를 자신의 역사 일부로 받아들이고, 더불어 살아가려는 노력이 보인달까?



캐나다의 뿌리를 찾아서, 와누스케윈 헤리티지 파크



▲ 와누스케윈 헤리티지 파크 이정표. Living in Harmoney라는 문구가 인상적이다.


이번 캐나다 사스카츄완주 여행에서 방문한 '와누스케윈 역사공원(
Wanuskewin Heritage Park)은 캐나다의 뿌리인 이들 원주민의 삶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볼 수 있는 곳'이 아니라 '느낄 수 있는 곳'이라고 표현한 건, 다른 역사공원들처럼 유적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거나, 인위적인 모형을 늘어놓은 놓은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옛날 그랬던 것 처럼, 풀이 무성한 초원의 모습 그대로. 어쩌면 '아무 것도 없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르는 드넓은 벌판 위에 건물 한 채, 티피 텐트 몇 개가 전부이다. 


▲ 지붕에 네 개의 뾰족한 뿔이 있는 와누스케윈 헤리티지 파크 방문자 센터. 숫자 4가 더욱 강한 생명력을 준다고 생각했던 원주민들의 생각을 반영했다. 버팔로가 있는 원형의 공간도 성스러운 '원'을 의미한다.


그런데 어떻게 이곳에서 옛 원주민의 삶을 느낄 수 있을까? 

그건 바로 6천년 이상을 이어온 역사의 힘이다. 


먼 옛날, 미국과 캐나다를 비롯한 북미대륙의 대평원에는 소수의 사람들이 버팔로(들소) 사냥을 하며 살았다. 그러나 초원과 황무지 뿐인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은 이내 모두 떠나고, 이곳에는 들소만이 남아 세를 불렸다. 광활한 초원에는 수백만 마리로 번식한 들소들이 무리를 지어 다녔다.


사람들이 다시 찾아온 것은 13세기 말 즈음. 동부에 살던 대여섯 개 인디언 부족들이 지금의 캐나다 사스카츄완과 매니토바 주로 이동해 왔다. 그들의 초기 식량은 산딸기와 풀뿌리 같은 것이었고, 때로는 버팔로 사냥도 했다. 사냥은 매년 두 번씩 봄철과 가을철에 했고, 특히 가을 사냥에서는 겨울용 옷감으로 쓸 수 있는 두꺼운 모피를 구할 수 있었다. 1870년대에 인디언보호구역으로 이주당하기 전까지 이곳은 그들이 사냥을 하고 겨울을 나던 땅이었다.

- 참고: 캐나다역사 다이제스트 100 (저자: 최희일, 가람기획)



와누스케윈 헤리티지 파크에 들어서면 먼저 입구의 방문자 센터가 눈에 띈다. 


내가 방문자 센터에 들렀을 때는 세 개의 무료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었다. 

<티피 텐트 짓는 법>, <댄스 공연>, <가이드 투어>가 오후 1시부터 3시까지 진행이 되었다. 



티피 텐트를 짓



마침 이 곳에서는 Tipi Rising, 티피 텐트 세우는 법에 대한 강의가 진행되고 있어 얼른 자리를 잡고 앉았다. 

티피텐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라고는 인디언의 간단한 이동식 집이라는 것, 캐나다 인디언만의 독특한 양식이라 매우 캐나다적인 것이라는 정도였다. 그러나 요즘 캠핑 붐이 한창인 한국에서 티피텐트가 인기이기에 관심이 갔다.



알고보니 이 수업은 단순히 티피텐트를 짓는 법에 대한 강의가 아니었다. 

기둥을 하나씩 세울 때마다, 기둥에 천을 씌우고, 작은 조각으로 이음새를 여밀 때마다 인디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티피텐트는 어느 인디언이나 지었던 집이 아니라, 사스카추완 주를 비롯한 버팔로를 사냥할 수 있는 북미 초원, 평원지역에서만 발견된 텐트다. 원으로 둘러 앉을 수 있는 소통의 공간이기 때문에 참여한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가장 감사했던 순간을 공유하기도 했다. 그저 인디언의 텐트로만 알고 있던 티피에 숨은 이야기들이 무척 흥미로웠고, 수업에 참여하는 자체가 마음의 평화를 주는 경험이었다. 와누스케윈이라는 의미가 크리(부족 중 하나)어로 '마음의 평화를 찾는다'라는 뜻이라더니 정말 이곳에서 체험한 과정이 모두 그랬다.



캐나다 평원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인디언의 텐트인 티피에 담긴 의미는 이렇다. 


티피는 신성한 원형이다. 원형을 성스럽게 여기던 인디언의 생각이 담겨있다. 치료의 원이라고도 불리는 이 원형 티피의 중심에는 불이 있는데, 이것은 태양의 중심이자, 나 자신을 의미한다. 태양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며 점점 사그라든다. 계절도 봄 여름 가을 겨울로 같은 원형 패턴을 유지한다. 원형은 티피 뿐 아니라 버팔로 우리, 원형극장,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도는 춤 등에서도 볼 수 있다. 


티피 기둥 하나하나에 의미가 있다. 티피를 이루는 15개의 기둥에는 어린이, 청년, 어른, 노인이 알아야 할 가르침이 담겨있다. 어린시절에는 순종, 존경,겸손(Obedience, Respect, Humility)을 알아야 하고, 청년시절에는 행복, 사랑, 믿음 (Happiness, Love, Faith)이 있어야 한다. 어른이 되어서는 가족을 위하고, 깨끗해야 하며, 항상 감사해야 하고(Kinship, Cleanliness, Thankfulness), 노인이 되어서는 나누어야 하고, 강해져야 하고, 아이들을 잘 돌봐야 한다. (Sharing, Strength, Good Child Rearing), 그 밖에 모두가 가져야 할 덕목으로 희망, 스스로 보호할 수 있는 힘, 바람으로부터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 등의 의미를 담고 있다.  


기둥 하나를 덧 댈 때마가 가죽으로 만든 끈으로 동여 맨다기둥을 묶는 끈은 힘을 상징하고, 더불어 모두가 하나로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디언의 파워댄스



티피 라이징 수업이 끝난 후, 잠시 안내센터 내부를 둘러보고 있는데 댄스 공연이 열린다는 안내가 들려왔다. 

잠시 후, 야외공연장에서 시작된 인디언의 파워댄스~!


사실 여러 명의 인원이 함께 원을 그리며 추는 춤을 상상했는데, 댄서가 혼자여서 조금 외로워 보였다. 선글라스를 낀 원주민의 모습이 낯설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춤은 볼 수록 빠져드는 매력이 있었단.



춤사위 하나에도 많은 의미가 담겨있다고 했다. 이 댄서는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이주당한 원주민들이 현재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도 설명해 주었는데, 자신의 어릴적 이야기로부터 시작해 가족사, 다른 댄서들의 이야기가 참 흥미진진했다. (다만 문제가 있었다면 너무 땡볕이었고, 계속되는 영어 설명과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 때문에 신경을 바짝 쓰고 있어야 했다는 것? ㅎ)


이곳에 살던 원주민은 이런 옷을 입었다고 한다. 과거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옷에서 최근까지의 복장을 볼 수 있었다. 내가 관심이 갔던 부분은 아기 보자기. 우리가 배냇저고리로 아기를 엄마 뱃속에 있듯 꽁꽁 싸놓는 것 처럼 저들도 그렇게 했던 것 같다.





와누스케윈 헤리티지 파크 안내센터 내부에는 그림도 몇 점 걸려 있었는데, 백인 앞에 공손한 원주민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조화로워보이지만, 영원히 그럴 수 없는 그들의 관계. 인디언(Indian), 원주민(Native), 선주민(First Nation), 단어 하나에도 신중을 기할 수 밖에 없는 이들의 관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가이드와 함께하는 와누스케윈 역사 투어



마지막으로는 선주민들의 터전, 버팔로 몰이를 했던 지역을 가이드와 함께 둘러봤다. 선주민은 2~3년에 한번씩, 티피텐트를 보수할 가죽이 필요할 때마다 30~50마리의 버팔로 무리를 통채로 사냥하곤 했는데, 그 방법은 절벽으로 몰아 떨어트리는 것이었다고 한다. 


와누스케윈 역사공원 입구에는 송아지로 가장하고 버팔로를 유인하며 달리는 소년과 그를 향해 전속력으로 몰려가는 버펄로들의 조각상을 만날 수 있다. 





보이는 것은 그저 너른 초원이었지만, 흥미로운 이야기와 함께하니 이곳이 무척 달라보였다. 요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준비중이라고 하는데, 그렇게 되면 좀 더 많은 후원을 받아 실제 버팔로가 사는 와누스케윈이 되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있다고 했다.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고, 곧 그렇게 될 것이라 생각된다.


▲ 실제 버팔로 사냥을 했던 버팔로 점프대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는 곳, 와누스케윈 헤리티지 파크



많은 체험을 했지만, 사실 이곳을 가장 잘 보는 방법은 초원을 누비며 대지를, 바람을, 자연을 그저 '느껴'보는 것이다. 





짧은 트레일에서는 운이 좋다면 이곳의 주인인 야생동물을 만날 수도, 아니면 그들의 발자국이라도 볼 수 있다. 



야생 식물과 꽃을 보는 재미도 있다. 기분좋은 향이 나를 따라다니는 것 같아서 물어보니 '세이지'라는 허브라고. (사진 속 솔잎같이 생긴 식문)



숨은 산딸기도 따 먹고, 독성이 있지만 아름다운 열매도 관찰하고,



그러다 멀리 바라보면 이렇게 숨이 탁 트이는 벌판이 눈에 들어온다.



끝없이 펼쳐진 대평원에서 버팔로와 함께 살아온 원주민의 삶도 들어온다.


이제껏 내가 접해보지 못했던 '평원의 야생', 그리고 인디언의 삶과 정신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하루.

사스카츄완에서 가장 좋았던 곳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와누스케윈이 아닐까? 


▲ 가져간 원주민 인형을 놓고 한 컷. 인증샷을 대신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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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Tip] 와누스케윈 헤리티지 파크, 와누스케윈 역사공원 (Wanuskewin Heritage Park)

+ 홈페이지: http://www.wanuskewin.com/
+ 주소: RR #4 Penner Road Saskatoon, SK, S7K 3J7
+ 전화: (306) 931-6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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