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멈춘 섬에서 보낸 6일, 사이판 티니안 여행

매서운 바람에 본격적인 겨울이 시작됐음을 실감하던 11월 말, 사이판과 티니안 섬에 다녀왔다. 예정에 없던 급작스러운 여행이라 아이들 맡길 곳을 찾는 등 도움이 필요했지만, 이야기를 듣는 순간 마음은 이미 그곳에 있었으니 어떻게든 구실을 찾아 떠나야만 했다.

 

사이판이라면 괌, 오키나와와 더불어 아이와 함께 떠나기 좋다는 해외여행지 중 하나 아니던가? 괌보다 덜 개달되었지만, 그렇기에 때묻지 않은 자연을 즐길 수 있는 천혜의 가족여행지라 들었다. 사이판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이웃섬 티니안은 원시 자연은 기본이고 원주민의 유적과 태평양 전쟁의 흔적까지 그대로 볼 수 있는 시간이 멈춘 섬이라던데. 그렇다면 소위 여행글을 쓴다는 나도 한번 가봐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무엇보다 나를 설레게 한 것은, 여행으로 인연이 된 7년 지기 친구들과 함께 떠난다는 사실이었다. 정말? 우리가 함께 간다고? 


▲ 이번 여행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티니안 섬 타가 비치. 고대 타가 왕족의 전용 물놀이장으로 이용되던 곳이라고.


여행의 즐거움은 떠나기 전의 설렘부터 시작된다고 했던가?

일정이 확정되는 순간부터 우리는 거의 매일 여행 수다를 떨었다.

처음에는 티니안이란 어떤 곳일까, 가서 뭘 봐야 할까를 검색하며 논의하다가 곧 공통의 관심사인 여행 콘텐츠로 이어졌다.

그러다가 점점 수영복을 새로 사야겠네, 카메라 렌즈를 하나 들일까 이야기하며 '지름'으로 종착.


▲ 사이판으로 향하는 기내에서 야심차게 고프로 히어로 6 블랙 언박싱 사진을 찍었다. 


결국 나와 한 친구는 출시한지 며칠 안된 고프로 히어로 6 블랙(+각종 악세서리)을 면세점 신공을 발휘하며 새로 사들였고, 다른 친구는 수영복과 각종 화장품을 득했다.

역시 세상에 제일 가는 재미는 탕진잼이라며. 평소 물욕이 없던 우리는 이번 여행에서 면세품 지름의 신세계에 눈을 떴다. 봉투 뜯는 재미 덕분에 사이판으로 향하는 비행기가 심심하지 않았다는.




 Day 1-2 . 경비행기 타고 티니안으로

 운 좋게도 한국인 파일럿을 만났다. 하늘도 알아보는 멋진 출발, 티니안으로.


인천에서 사이판(Siapan)까지는 4시간, 저녁 비행기로 새벽에 도탁한 탓에 마리아나 라운지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이른 아침 다시 티니안 공항으로 향했다. 사이판에서 티니안(Tinian)까지는 작은 경비행기를 타고 10분 정도 비행하면 도착할 수 있다. 4Km 남짓한 거리로 무척 가깝지만, 조류가 세서 배는 잘 다니지 않는다고 했다. 


▲ 아무도 탐험하지 않은 미지의 땅으로 향하는 느낌, 사이판 섬의 점점 짙어지는 푸른 바다가 인상적이다.

이제껏 내가 타본 가장 작은 비행기는 50인승 프로펠러기였다. 그래서인지 날개를 밟고 탑승하는 6인승 경비행기는 마치 장난감 같았다. 

계기판이 한눈에 보이는 파일럿 뒷자리에 앉아 팔랑팔랑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과연 이 비행기가 날 수 있을지 의심이 갔다. 그러나 일단 시동이 걸리자 가벼운 몸체만큼이나 가뿐하게 날아올랐고, 순식간에 사이판 섬을 벗어났다.    


▲ 타촉냐 비치를 바라보며 아침식사를 즐길 수 있는 티니안 오션뷰 호텔.

티니안 섬에 도착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이틀간 머물 티니안 오션뷰 호텔. 타촉냐 비치를 바라보며 조식으로 먹었던 컵라면은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 터틀 포인트. 절벽과 바다, 야생화가 어우러진 풍경이 일품이다.

대충 짐을 풀고 티니안 섬 일일 투어를 떠났다. 티니안 섬을 여행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여행사를 통한 데이투어 상품을 이용하는 것이다. 우리는 반나절 동안 캐롤라이나스 네이쳐 트레일에서 시작해 터틀 포인트, 만세절벽, 타가 비치, 타가 하우스, 브로드웨이 등 티니안 섬 남부의 주요 관광 포인트를 가이드와 함께 돌아봤다.


▲ 비현실적인 물빛, 이런 곳이 실제로 존재하는구나 싶었던 타가 비치.
주말이라 차모로족 원주민 아이들이 절벽 다이빙을 하며 노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 고대 왕가의 터, 타가 하우스에 떨어진 아름다운 플루메리아 꽃. 

▲ 밤이면 해변에서 바비큐하는 원주민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우리도 함께 여행하는 사람들과 고기를 구우며 이야기 꽃을 피웠다.
꽃 향기가 살짝 감도는 BUSCHI 맥주의 맛도 잊지 못한다.


투어가 끝난 밤에는 해변 바비큐 파티를 열었다. 끈적한 바닷 바람과 설산이 그려진 시원한 맥주, 알맞게 구워진 등갈비에 밤샘여행의 피로가 가시는 듯 했다. 다음날 다이빙  스케줄이 있어 맛있는 맥주를 조금밖에 마시지 못한 것이 한이지만, 설레는 내일을 위해 그쯤이야 감수할 수 있지 (ㅠㅠ)~!




 Day 3 . 신비로운 해저 세계를 탐험하다, 티니안 그로토 다이빙


▲ 이토록 신비로운 바닷속 세상, 티니안 그로토

3일차 아침, 새벽부터 부지런을 떨어 배를 타고 미리 신청해 둔 스쿠버 다이빙 투어를 떠났다. 


티니안은 사이판과 더불어 평균 시야 30미터를 자랑하는 탁 트인 수중환경으로 유명하다. 특히 티니안에는 웅장한 수직절벽이 있는 플레밍 포인트, 아기자기한 수중 동굴인 티니안 그로토, 두 개의 아름다운 산호 언덕으로 이루어진 투코랄 포인트가 있다. 우리는 최대 수심 30미터 정도 되는 티니안 그로토와 18미터 투코랄 포인트 두 곳에 다녀왔다. 


▲ 시야 30미터의 깨끗한 바다, 안전정지를 하며 바라본 작은 배의 바닥이 손에 닿을 듯 했다. 

사실 나는 태국에서 어드밴스 자격증을 딴 후, 3년만에 첫 스쿠버 다이빙이었다. 바다를 너무나 사랑하지만, 아이들이 아직 어려 늘 다이빙 포인트 주변만 맴돌았더랬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며 수중 촬영 욕심에 고프로도 구입 했다. 떠나기 전 스쿠버 다이빙 이론 책과 유튜브로 복습을 하고, 함께 다이빙을 할 버디와 잠실 올림픽 수영장에서 스킬리뷰도 했다. 투어 전날 호텔 앞에서 비치다이빙으로 체험다이버들을 따라 들어가 잠시 체크 다이빙을 했던 것도 오랜만의 다이빙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이번 티니안 다이빙으로 나는 로그북 두 페이지를 기록하며 다시 세상의 숨은 70%를 발견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수면에서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아름다운 해저동굴과 산호, 그 속에 집을 짓고 살아가는 각종 수중생물들을 만나며 함께 숨쉬는 지구임을 깨달았다. 이 넓은 바다에 다이빙 가이드와 친구, 그리고 나 뿐이라는 사실도 무척 가슴 벅찼다. 그야말로 무중력 상태로 드넓은 해저세계에 몰래 숨어든 느낌이었달까? (그런데 생각해보니 로그북에 도장을 안받았네... ㅠㅠ)



▲ 자연과 사람이 만든 한폭의 그림, 모델은 haio (http://haiojang.com)님  


오후에는 차를 빌려 티니안 섬의 북부를 탐험했다.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북부지역은 수풀을 헤치며(렌터카 긁힐까봐 안절부절 못하며)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재미가 있었다. 워낙 비옥한 땅이라 길을 정비해 놔도 곧 들풀이 자라난다고 했다. 파도가 치면 해안 바위에 난 구멍으로 힘차게 솟구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블로우 홀, 별모양 모래를 볼 수 있는 출루비치(Chulu Beach), 2차 세계대전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곳과 섬칫하기도, 신비롭기로 한 수미요시(Sumiyoshi) 신사, 전쟁의 슬픔이 잠든 우시 십자가 곶(Ushi Cross Point) 등을 구경했다. 



▲ 오랜 세월을 거치며 자연스레 자라난 나무와 이끼가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수미요시 신사, 역시 모델은 haio 님  

▲ 시간이 멈춘 듯 수풀 사이에서 만난 전쟁의 흔적


▲ 고요함 그 자체였던 타촉냐 비치의 밤  

저녁에는 호텔 앞 타촉냐 비치에서 스노클링을 하다가 별사진을 찍기로 했는데, 변화무쌍한 섬 날씨가 별 대신 달과 구름을 허락했다. 준비해 간 블루투스 스피커에 재즈 캐롤을 올리고, 모래를 살살 털어 맥주 캔을 따고, 하늘과 바다에 뜬 달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며 휴대폰 조명을 켜야만 걸을 수 있던 우리는 이내 달빛만으로도 익숙하게 서로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날 밤. 그 분위기.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Day 4 . 문명의 세계로, 사이판 맛보기

▲ 티니안의 강렬한 햇살이 여과없이 내리쬐는 경비행기 안. 아름다운 뒤태 모델은 김소연 님


차마 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계획된 일정이 있으니 티니안 섬을 떠나 사이판으로 향했다. 첫날을 보내고는 너무 힘들어서 우스갯 소리로 일주일은 지난 것 같다고 했는데, 여행 나흘 째가 되니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 아쉬웠다.   


 켄싱턴 호텔 사이판 로비에 있는 썬배드에 누워 있으면 시간이 구름의 속도로 흐른다.  

이틀간 티니안의 원시 자연에 푹 젖어있다가 사이판으로 나오니 갑자기 문명의 세계로 툭 떨어진 느낌.


 프리미어디럭스 이상 룸을 이용해야 즐길 수 있는 켄싱턴 호텔 사이판의 인피니티 풀

가족 여행자들에게 가장 인기가 좋다는 켄싱턴 호텔 사이판, 새로 개장한 인피니티 풀에 누워 부족함 없는 여유를 느껴본다.




 Day 5 . 형형색색 열대 물고기 천국, 마나가하섬 스노클링 투어


 스피드보트 너머 멀리 마나가하 섬이 보인다.

마지막 날에는 사이판에 처음 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다녀온다는 마나가하(Managaha) 섬으로 향했다. 우스갯소리로 마나가하 섬에 안가면 사이판에 가나마나라고. ㅎ 마나가하섬은 사이판 서쪽에 있는 무인도로 크기가 1.5km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작은 섬이다.근처가 온통 산호 밭으로 스노클링을 즐기러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 


 산호가 부서져 생긴 곱고 흰 모래가 이 섬을 뒤덮고 있다. 

파라솔 밀집 지역을 조금만 벗어나도 이렇게 그늘 많고 한적하고 아름다운 해변을 만날 수 있다. 


 스노클링 제한 구역 경계를 사이에 두고 극심한 대비를 보이는 마나가하 섬 수중환경.
스노클링만으로도 이렇게 아름다운 산호와 물고기를 볼 수 있는데... 환경보호를 위한 관광객들의 노력이 절실하다. 
 


마나가하 섬 해변을 따라 바다로 나가면 알록달록 열대 물고기를 많이 만날 수 있다. 

종류도 다양하고 꽤 큰 물고기도 볼 수 있어 구명조끼와 스노클, 오리발만 있다면 누구나 아름다운 열대 바다를 관광할 수 있다. 


그러나 해변 가까운 쪽 산호는 오리발에 밟히고 채여 거의 죽어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스노클링 제한 구역 가까이 가봤더니 다행히 부표 바깥으로는 형형색색 산호들이 아름답게 자라나고 있더란. 

산호가 제 모습을 잃지 않도록, 그래서 아이들과 함께 이 섬을 다시 찾을 때에도 다양한 열대 물고기와 산호를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  


▲ 티니안에 비해 잘 다듬어진 도로와 도로를 달리는 수많은(?) 차량을 볼 수 있다.


투어가 끝난 뒤에는 켄싱턴 사이판 호텔 내 허츠(Herts)에서 차를 빌려 시내로 나갔다. 

종일 달려도 마주오는 차를 몇 대 만날까 말까 한 티니안과는 달리 잘 닦인 왕복 6차선 대로에 신호까지 많아 정신이 혼미해졌지만, 다행히 이곳 지리를 잘 아는 친구 덕에 무사히 주행을 할 수 있었다.  


 제주도 성 이시돌 목장과는 아무 관련없는 성 이시돌 성당

뻔한 여행지 말고, 좀 덜 알려진 곳을 가볼까? 이야기하며 도착한 이곳, 성 이시돌 성당. 

제주도에 있는 성 이시돌 목장과 이곳의 관계는 무엇이냐며, 이시돌은 과연 한국인이 맞냐며 낄낄거리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알고보니 이시돌은 독일계 유대인으로 스페인 세비야의 대주교를 보낸 성인. 


 성 이시돌 성당 앞 뷰포인트, 모델은 TV출연으로 이제 연예인이 되신 토종감자(http://www.lucki.kr)


굽이굽이 언덕을 올라 성당까지 온 까닭은 바로 이곳이 뷰포인트이기 때문이다. 

흰색과 녹색이 어우러진 성당 자체의 외관도 독특하지만 성장 앞 난간에서 바라보는 사이판 앞바다의 풍경이 정말 환상이다. 일몰 시간에 이 곳을 찾으면 더욱 좋을 듯. 


▲ 성당 앞 드넓은 풀밭이 동심을 자극한다.



 Day 6 여운을 안고 집으로



사이판에 가보고 싶다면 가끔 듣는 이야기가 있다. 

하와이의 시골은 괌, 괌의 시골은 사이판. 하와이와 괌을 가봤으면 사이판은 스킵해도 괜찮다는 내용이었다. 


과연 그럴까? 

미국의 해외영토, 세계 2차대전의 격전지, 사철 따뜻한 섬, 닮은 점이 많고, 얼핏 비슷하게 꾸며놓은 것도 같다. 

그러나 각 지역은 분명 나름의 다른 문화와 자연이 있다.
특히 쇼핑보다 자연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여행중 일상을 탈출해 진정한 자유를 누리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사이판, 티니안 섬을 더 마음에 들어할 것 같다. 바로 내가 그랬으니까. 


다음 사이판 여행은 바다와 자연을 사랑하는 우리 가족과 함께 한번 떠나보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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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정보]


· 사이판에 새벽 도착하면, 마리아나 라운지 http://www.marianagrandservice.com

· 티니의 유일한 호텔, 티니안 오션뷰 호텔 https://tinianhotel.modoo.at 
· 사이판 렌터카, 허츠 https://www.hertz.com
· 사이판 리조트, 켄싱턴 호텔 사이판 http://kensingtonsaipan.co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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