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버스 타고 샤프란 볼루로

이스탄불을 떠난 것은 어둠이 짙게 깔린 밤늦은 시각이었다. 우리의 다음 목적지는 샤프란볼루, 오스만 시대의 전통가옥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아름다운 마을로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가 지정한 문화재다.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6시간.
 
오토가르(고속버스 터미널)로 가는 길에 메시지를 확인했더니 이런 오싹한 문자가 와 있다. 터키에 테러라도 난 걸까? 나중에 확인해보니 터키 동부에 쿠르드족이 있는 '반' 같은 곳이 제한지역이란다. 외통부 홈페이지에 보니 테러위험 정도에 따라 여행경보를 4단계로 나누는데, 터키 대부분 지역은 1단계.  

이스탄불 오토가르는 언뜻 보기에 우리의 고속버스 터미널과 닮아 있었다. 터키에서는 고속버스가 지역 간 이동의 주요 교통수단이다. 기차나 비행기도 있지만 기차는 출/도착시각이 부정확하고 느리며 비행기는 비싸고 공항까지 이동하기가 번거롭다. 반면 고속버스는 터미널에만 가면 전국 구석구석으로 가는 티켓을 구할 수 있어 대부분은 버스를 이용한다. 

고속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버스회사들 간의 경쟁이 치열한데, 그래서인지 버스들은 벤츠 등의 고급 버스여서 안락하기가 비행기보다 낫다. 또 샤방한 남자 승무원이 스튜어디스처럼 음료나 간식을 서비스한다. 터미널에 내리면 버스회사에서 운영하는 서비스 밴이 무료로 호텔까지 태워주기도 한다.

이스탄불 구시가지에서 오토가르까지는 거리가 꽤 있어 우리는 구시가지 내 여행사에서 티켓을 끊었다. 여행사에서는 3TL(1TL = 한화 800원)정도의 커미션을 받고 오토가르까지 가는 서비스 밴을 제공한다. (총 34TL) 오토가르까지 가는 시내버스비가 2TL임을 고려하면 밤길 헤맬 걱정도 없고 괜찮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버스회사는 지역명으로 된 이름들이 많은데, 샤프란 볼루로 갈때는 '샤프란', 파묵칼레 갈때는 '파묵칼레', 카파도키아에 갈 때는 '네브쉐히르' 등 목적지 이름을 딴 버스회사를 이용하면 최상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바우쳐를 티켓오피스에서 정식 티켓으로 바꾸면 항공권같이 그럴싸한 티켓을 준다. 버스는 23시 30분에 출발.

좀 일찍 도착해 티케팅을 하고 버스회사의 2층 간이 대기실로 올라갔다. 푹신한 의자와 테이블, 벽걸이 TV, 신문, 심지어는 안마의자까지 있다. 빗길에 긴 하루를 보낸 나는 의자 깊숙이 몸을 묻었다. (photo by 신민경)

이윽고 시작한 탑승. (photo by 신민경)

앞좌석에 탄 할머니 할아버지는 창밖의 젊은이들을 보며 걱정 말라는 듯 손을 흔드신다. 떠나고 남겨지는 사람들. 그들을 지켜보고 있자니 괜스레 감정이입이 되어 그 사연이 궁금해진다. 2월 말에서 3월 초는 입대 시즌이라 터미널 한편에서는 젊은 청년 한무리와 가족들이 눈물의 이별을 하고 있었다.

안락한 심야버스는 나름 탈만 했다. 다시 비가 오기 시작했고 바깥기온은 쌀쌀했지만 버스 내부는 적당히 따뜻했다. 반복해서 들려오는 꼬부랑 음악을 듣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샤프란볼루 오토가르에 도착한 시각은 새벽 5시쯤. 이스탄불에 비해 작은 터미널을 보며 작은 도시임을 실감했다. 샤프란볼루의 작은 마을인 '치르시'로 가기 위해 버스회사에서 제공하는 미니 밴으로 갈아타고 마을 근처인 '크뢴퀘이'로 향했다.  

야간버스를 타고 온 승객을 맞기 위해 새벽부터 불을 밝힌 오피스. 도시와는 달리 왠지 푸근한 인상의 아저씨가 여유로운 웃음으로 우리를 반긴다.

미리 예약한 펜션에서 마중나올 차를 기다리며 사무실 내부를 훑어본다. 휑한 사무실 한쪽 벽에는 터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아타튀르크 초상화가 걸려 있다.

시선을 끈 것은 달력. 뭔가 복잡해 보여 한참을 봤는데, 우리와는 다르게 한주를 월요일부터 시작하고, 맨 앞에는 몇 주차인지가 표기되어 있다. 아래 작은 글씨들은 이슬람력인 듯. 

다시 차를 타고 펜션에 도착했을 때는 아직도 어두운 새벽. 막 동이 트려고 하고 있었다. 야트막한 전통가옥들 사이로 골목길을 밝히는 가로등만이 마을을 지키고 있었다.

비에 젖은 옷과 신발을 꺼내 널고는 머리끝까지 이불을 뒤집어쓴 채 아침 늦게까지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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