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의 명동, 비오는 이스티크랄 거리

지중해성 기후. 비가 잠깐 스쳐간다더니... 저녁이 되면서 빗줄기는 점점 굵어졌고, 기온은 상상 이상으로 뚝 떨어졌다. 신발은 젖어 걸을 때마다 물이 배어 나오고 생활방수가 되는 외투는 이미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 더는 우산 없이 다니는 것이 무리라고 판단이 되어 호텔로 향했다. 따뜻한 방에서 샤워라도 하면 좋으련만... 이미 체크아웃을 한 상태라 프런트에 맡겨놓은 짐을 찾아 대충 씻고 가져온 옷들을 모조리 껴입었다.

야심해지는 밤에 우리가 찾은 곳은 이스탄불 신시가지의 중심인 탁심광장과 이스티크랄 거리였다. 이스티크랄 거리는 명동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패션과 쇼핑의 중심지다. 계획대로라면 이스티크랄 거리를 천천히 걸으며 쇼핑도 좀 하고 제대로 된 찻집에 앉아 카페인을 보충하려고 했는데, 아침부터 지나치게 길어진 페리 여행에 비까지 겹쳐 마음이 바빠졌다.  

서둘러 길을 따라 걸었다. 비는 더욱 세차게 내리고... 우산으로도 비를 피할 수 없는 지경. 모자를 꾹 눌러쓰고 스카프까지 칭칭 동여맨 채 꿋꿋이 걸었다.

좌우로 길게 늘어선 상점들. 그런데 명동이라고 하기엔 너무 초라했다. 30분을 걸었지만 길은 점점 좁아지고, 인적도 드물어 슬슬 공포감이 밀려왔다. 결국 지나는 사람을 기다려 몇 차례 길 묻기를 시도했으나 날이 궂어서 인지 제대로 알려주는 이가 없다. 가까스로 슈퍼에서 물건을 사고 나오는 여자에게 길을 물었다. 그녀는 짧은 영어로 뭔가 설명하려고 하다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따라오란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한참을 걷다 보니 익숙한 풍경이 펼쳐진다. 우리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고 있었다. OTL. ㅠㅠ
다시 만난 이스티크랄 거리의 초입. 내 평생 삼성 광고가 이렇게 반가웠던 적이 없었다. 

친절한데다 미모까지 겸비한 이 여성의 이름은 '델마'였다.(사진 가운데) 알고 보니 다행히도 그녀는 이스티크랄 거리에서 친구와의 약속이 있었다고 한다. 터키어를 몰라 이들이 뭐라고 얘기하는지는 몰랐지만, 살짝 업된 분위기와 우리를 가리키는 손짓으로 봐서는 조금 전 일어난 일들을 설명하는 것 같았다. 꽤 먼 거리를 함께 걸으며 미안한 마음이 앞섰는데 친구와 즐겁게 이야기 나누는 그녀를 보니 좀 안심이 됐다. 

이스티크랄 거리는 정말 차 없는 명동 한복판 같았다.
 
다른 점이라면 한 냥짜리 앙증맞은 미니트램이 한복판을 다닌다는 것 정도?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브랜드다 했더니 BBQ Cafe였다. 카페에 앉아 차를 마시듯 닭고기를 뜯는 터키 연인들을 보니 좀 생뚱맞은 기분이 들었지만 이스티크랄 시내 중심가에 스타벅스와 어깨를 나란히 한 매장을 보니 내심 뿌듯하기도 했다. 그런데 올리브가 흔한 터키에서도 '올리브유로 튀긴 치킨'이라는게 먹힐까?

골목엔 대로변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해산물 전문 레스토랑과 서민들을 위한 생선 가게가 보인다. 꽃처럼 진열해 놓은 생선들이 눈에 띈다. (photo by 신민경)
 
시간이 허락한다면 노천 레스토랑에 앉아 유명하다는 생선요리와 홍합튀김을 맛보고 싶었으나 야간버스 시간이 다가오고 있어 다음을 기약했다. (photo by 신민경)

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생과일 주스가게. 주문하면 즉석에서 즙을 짜준다.

돌아오는 길에 본 갈라타 타워. 날씨가 맑은 날 전망대에 올라 보스포러스 야경을 바라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이스티크랄 거리를 훑고 카라교이까지 걸어 내려와 트램을 탔다.

트램에 앉아 파란만장했던 이스탄불에서의 지난 이틀을 떠올리니 갑자기 피곤이 밀려온다. 한두 군데만 보더라도 여유 있게 즐기고 싶었는데, 막상 현지에 오니 체크리스트에 있는 곳을 다 보지 못해 마음이 불편해진다. 나는 여전히 타이트하게 계획을 짜고 목표를 달성하는데 집착하고 있었다. 앞으로 몇 시간 후면 샤프란볼루로 향하는 야간버스를 타게 된다. 도시를 떠나면 일상을 내려놓기가 조금 쉬워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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