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제 맛집] 순도 100% 메밀 막국수란 이런 것~! 남북면옥

지난 5월이었던가요. 한 TV프로에서 '오군'이라 불리는 록커가 통기타를 둘러메고 맛집 기행을 떠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요. 지방의 숨은 맛집에 섭외 없이 들이닥치는 방송의 전개가 담백해 재미있게 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날 오군이 방문했던 맛집은 바로 강원도 인제의 '남북면옥'이었는데요. 무뚝뚝한 주인아주머니가 촬영을 거부하셔서 오랜 시간을 기다리고, 삼고초려한 끝에 겨우 허락을 받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죠.

마지못해 촬영을 허락한 아주머니는 그닥 협조적이지 않으셨어요. 묵묵히 자기 할 일만 하는 주인, 주인을 닮아 먹기만 하는 손님, 꾸밈 없는 주방 내부 풍경은 감탄사를 연발하는 TV 프로그램에 익숙한 저에게 참 낯선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영화 트루맛쇼를 본 이후 맛집을 소개하는 프로들이 죄다 탐탁지 않았던 전 이런 솔직한 모습에 내심 믿음이 갔다지요.
 

며칠 전, 가을 단풍구경이나 하자며 설악산으로 향하는 길, 남편이 남북면옥의 막국수 얘기를 꺼냈습니다. 마침 인제는 속초로 가는 길에 있어 점심이나 해결하자며 한번 들러봤습니다.

방송을 봤기에 예상은 했지만 남북면옥의 첫 인상은 식당이 아닌 일반 가정집이었습니다. 남의 집에 온 듯 조심스럽게 신발을 벗고 있는데, 주방 너머로 익숙한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더군요... '저~ 끝방으로 들어가세요~'     

자리를 잡고 앉아 주변을 훑어보니 황토벽에 비뚤비뚤 손 글씨로 쓴 메뉴판이 눈에 들어옵니다. 메뉴는 단출하게 물국수와 비빔국수, 수육이 전부. 원래는 물국수와 수육만을 팔았는데, 요즘 사람들 입맛에 맞게 최근에 비빔국수를 추가했다고 합니다. 100% 메밀가루를 사용한 메밀국수라는 점, 모든 김치는 국내산만 사용한다는 점 (앞마당에 수북이 쌓인 배추를 보니 직접 담그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국수를 맛있게 먹는 법 등이 깨알같이 적힌 메뉴판이 정겹습니다. 단골로 보이는 동네 분 두세 팀이 모두 비빔국수를 주문하는 것으로 봐서는 요즘 이 집의 주력이 비빔국수인 것 같았지만, 처음인 저희는 물국수와 비빔국수를 하나씩 시켜봤습니다. 
 

막국수를 시켰는데, 특이하게 육수가 나옵니다. 아니, 처음엔 육수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한 컵 따라 마셔보니 숭늉이었습니다. 구수한 맛에 자꾸 따라 마시다 보니 은은하게 메밀향이 나는 것도 같고... 알고보니 이 물의 정체는 육수도, 숭늉도 아닌 메밀면을 삶은 물이었습니다. 막국수 좀 먹어봤다는 사람들은 비빔국수를 먹고 난 후 빈 그릇에 부어 마시며 은은한 메밀의 뒷맛을 즐긴다고 하더군요.

집 전체를 따라 길쭉하게 트인 방은 저렇게 칸막이로 자리를 구분이 되어 있었는데요. 내 집같이 편했는지, 장난기 발동한 딸내미가 양말까지 벗어 던지고 숨바꼭질을 시작합니다. :)

웃고 즐기는 사이 어느새 정갈하게 차려진 식탁.

찬은 잘 익은 배추김치와 갓김치 두 가지고요. 보기만 해도 코끝이 찡한 겨자와 양념장도 함께 나왔습니다.

아이가 있는 것을 본 주인 아주머니께서 서비스로 깨가 듬뿍 뿌려진 면 사리를 주셨습니다. 여기에 간장 조금, 설탕 조금, 참기름 조금을 넣어 조물조물 무치면 애들이 잘 먹는다는 설명도 빼놓지 않으셨어요. 사실 아이를 데리고 식당에 가면 포크와 앞접시 등 따로 부탁드릴 것이 많아 눈치가 보이기도 하는데요. 아이를 키워본 사람만이 아는 이런 세심한 서비스에 살짝 감동했습니다.

물국수는 간단히 메밀면에 오이와 무, 깨가 들어간 것이 전부입니다. 여기에 심심한 동치미 국물을 부어 먹으면 고소하고 담백한 메밀면의 진수를 맛볼 수 있죠. 막국수는 가장 맛없는 집이 맛있는 집이라는 얘기가 있는데요. 그만큼 거칠면서도 담백한 메밀의 맛을 그대로 살리는 것이 막국수 맛의 비결이라고 합니다. 오랜 단골들은 여기에 청양 고춧가루를 풀어 개운한 맛을 즐기기도 한다더군요.
 
소문난 막국숫집 대부분은 주문과 동시에 메밀 면을 뽑고 삶는데요. 남북면옥은 여기에 한술 더 떠 주문과 동시에 손 반죽을 시작합니다. 이 집 막국수는 순도 100% 메밀가루만 사용한다고 하는데요. 메밀가루는 반죽을 미리 해 놓으면 금방 쉬는 성질이 있어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그때그때 반죽을 한다고 합니다. 순 메밀가루, 즉석 손반죽... 이런 얘길 떠올리니 심심한 물국수의 맛이 깊게만 느껴집니다. 
 

입맛 확 당기는 비빔국수입니다. 매콤달콤해 보이는 양념장과 깨소금이 듬뿍~

비빔국수는 겨자를 넣지 않아도 충분히 매우니 식초만 조금 넣어 비비는 것이 좋습니다. 전 반쯤 먹다가 동치미 국물을 조금 넣어봤는데요. 톡 쏘는 매콤 시원한 국물 맛도 좋더군요. 물국수도 좋지만 제 얕은 입맛에는 아무래도 비빔국수가 더 맛납니다. 


여느 시골집과 다름없는 앞마당 풍경. 담벼락에 올라앉은 장독대며 10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자전거, 가지런히 널어놓은 빨래, 마당 한켠에 수북이 쌓인 배추가 정겹습니다. 이런 집에서 메밀 함량을 속인다거나 조미료 듬뿍 들어간 양념장을 쓴다는 건 상상이 안 되죠. 따뜻한 요즘 날씨만큼이나 푸근한 분위기에서 온 가족이 한 끼 맛있게 막국수를 즐겼습니다. 아침을 늦게 먹은 터라 유명하다는 수육을 맛보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쉽긴 했지만, 막국수 만으로도 충분히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다음엔 백촌막국수의 수육과 견줄만 하다는 강원도의 진짜 수육을 맛보러 한번 다시 찾아야겠습니다. 오랜만에 맛본 제대로 된 막국수 덕에 한층 업된 기분으로 속초로 향할 수 있었네요~.

[맛집 Tip] 남북 막국수
· 전화번호: 033 - 461 - 2219
· 주소 : 강원도 인제군 인제읍 상동리 343-21
· 위치 : 인제군청 근처, 기아자동차 골목.
           남북면옥은 읍내 외진 골목에 있어 말로 설명하기 쉽지 않습니다. 요즘은 자가용에 대부분 네비게이션이 있고,
           스마트폰에 주소만 입력하면 바로 찾을 수 있지만 이곳은 '방송에 소개된 맛집'이라는 흔한 간판 하나 없어 처음 찾는
           사람들은 모르고 지나칠수도 있습니다. 인제군청 근처에 가셔서 동네분들께 여쭙는 것이 좋을것도 같습니다. :)



[사족] 제가 본 프로는 KBS 2TV 생생정보통 '너무나 솔직해서 오히려 낯선 우리 나라의 숨겨진 진짜 맛 이야기' 5월 10일자 막국수 편이었습니다. 이 코너를 진행하는 '오군'이라는 훈남 록커, 찾아보니 이스턴 사이드 킥이라는 괜찮은 인디밴드의 보컬이더군요. '다소 낮음'이라는 곡이 좋아 함께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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