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에 온 것 같아~! 여행 돋는 미용실, 까밀라

슈퍼, 서점, 심지어는 빵집까지 대형화되어가는 요즘, 미용실도 예외가 아니지만 적어도 홍대 앞에서 만큼은 1인 미용실이 대세다. 좁은 공간에 의자 한두 개, 미용사 한 명, 손님을 한꺼번에 많이 받을 수 없으니 예약제로만 운영되지만 주인장의 독특한 감성이 묻어나는 인테리어와 그에 걸맞은 개성 있는 서비스, 그리고 때로는 마음마저 치유해주는 인간적인 대화가 있기에 사람들은 이곳을 찾는다.

까밀라. 영화 속 여주인공의 소녀적인 이미지가 떠오르는 이국적인 이름.

이곳은 멕시코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던 주인 '까밀라'씨가 한국에 들어와 멕시코풍으로 꾸민 미용실이다.
중남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인테리어가 특이하고, 머리를 하는 내내 남미 음악이 흘러 정말 멕시코에 온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벌써 작년 여름 이야기다. 둘째를 임신하고 안정기가 되기만을 기다리다가 5개월이 되던 그날, 퍼머를 하기로 결심했다.
인터넷으로 집 근처 미용실을 검색하는데, '까밀라'라는 독특한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남미풍 미용실이라...
기억을 더듬어보니 지나다가 얼핏 간판을 본 것도 같다.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는 것 보니 겉에서만 보기엔 별 특색이 없었던 것 같다.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어쨌든 가까운 미래에 남미 여행을 떠나고픈 마음이 있었던지라 여행 이야기도 나눌 겸, 임신중이라 멀리 떠나기 어려우니 여행 분위기라도 느껴볼 겸 까밀라로 향했다.

그런데 가까이 보니 멀리서 보던 간판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그림이 보인다. 원색의 집들, 피어싱, 태투라는 글씨가 적힌 계단... 혹시 내가 까밀라로 가는 것이 맞나? 다시 한번 확인하고 계단을 올랐다. 

계단부터 예사롭지 않더니 독특한 인테리어.
노란색을 주조로 해 초록과 주홍, 그리고 각종 원색으로 포인트를 주어 정말 이국적인 느낌이다. 
의자는 나란히 세 개가 있지만, 가장자리 의자는 잘 사용하지 않는 것 같았다.
가운이 걸려있는 자리가 바로 내가 퍼머를 할 자리.

소품들은 모두 멕시코에서 직접 들고 온 것이라고 했다. 장식장과 거울은 철판을 망치로 두드려 모양을 낸 것이라는데, 하나쯤 가지고 싶었다는. 미용실에 전시하지 않은 소품들은 가끔 벼룩시장을 열어 팔기도 한단다.

까밀라씨는 요즘 금속공예를 배우고 있다며 직접 만든 장신구도 보여줬다. 팔기도 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단다.
확실히 손재주가 있어서 그런지 보통 실력은 아니어 보였다.

꼬부랑 꼬부랑 남미 음악을 들으며 머리를 말고 앉아있으니 나른해지는 기분.

그런 내 기분을 눈치챘는지 그녀가 여행중에 사온 차라며 루이보스 바닐라 티를 권한다. 루이보스 티는 아는데, 루이보스 바닐라라니, 향긋하고 부드러운 맛에 몇 번이고 우려 마시게 되더라.

문이 열려있길래 기웃거렸더니 들어가서 봐도 된단다.

컬러 태투 물감. 이렇게 보니 알록달록 귀엽네.
컬러 태투는 비싸기도 하고, 왠지 색을 넣으면 더 강한 이미지가 날 것 같아 나는 아직 시도해보지 못했다.
내게는 단색의 작은 도마뱀 한 마리만이 새겨져 있을 뿐. 
 

요즘에는 패션 문신이 대중화되었지만 내가 태투를 했던 10여 년 전만 해도 문신을 하면 취직도 못하고, 결혼도 못할 것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시간이 흘러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느냐며, 지울 수도 없다며...

물론 건달의 상징이 되어버린 용문신이나 온몸을 휘감는 큰 문신은 상황에 따라 보는 이에게 혐오감을 줄 수도 있겠다. 하지만 허리춤에 새긴 작은 도마뱀 문신은 로라이즈 청바지나 해변에서 비키니를 입을 때만 보일듯 말듯 드러나 묘한 재미가 있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나만 의식하는 자기만족이긴 하지만. ㅎ

여행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사진에도 관심이 많다는 것이다. 직접 찍은 사진을 잡지에 기고도 했다고 해서 보여 달랬다.

사진은 '레포르마 로드'. '막시밀리아노 왕권시절, 차뿔떼빽 성과 대통령궁 사이의 왕복 거리를 줄이기 위해 만든 레포르마 로드는 멕시코 중심도로란다. 기본요금 6백 원 정도의 저렴한 초록색 폭스바겐 택시는 멕시코의 상징 중 하나라고.

이곳에 걸려있는 사진들도 모두 그녀의 작품이란다. 그림 같은 사진들. 느낌이 참 좋다. 

퍼머는 생각만큼 잘 나왔다. 임신 중이라 머리카락에 영양분이 많아 퍼머 약이 잘 먹지 않는다며 걱정을 했었는데, 솜씨 좋게 잘 만져 줬다. 남미 여행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치안이 좋지 않을 것이란 부정적인 인식이 있지만, 아이와 함께 여행하기에는 남미만큼 좋은 곳이 없다고 했다. 멕시코도 꼭 한번 가보라고 했다. 가기 전에 스페인어 공부를 하면 사람을 만나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멕시코에 있을 때 알던 분이 자원봉사로 스페인어를 가르친다며 소개도 해줬다. 그녀와 남미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그저 막연하게만 생각하고 있던 것들을 구체적으로 한번 실행에 옮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현실로 돌아가야 할 시간.
앞으로 머리보다는 여행 이야기가 하고 싶을 때 종종 찾아야 겠다고 생각했다.

뒷모습의 까밀라씨.

 

올해 3월, 아이를 낳고 다시 찾은 미용실, 그런데... 어느새 다른 간판이 붙어있다.
그녀를 처음 찾았던 인터넷을 다시 검색해보니 여전히 www.camilla.co.kr 가 보이긴 하는데...

이사 했나?

클릭해보니 '까밀라와 범의 여행일기'라는 타이틀의 블로그로 연결되더라는. 
포스팅을 보니 그녀는 올해 1월, 다시 여행을 떠났다. 인도네시아, 캄보디아를 거쳐 3월에는 태국.

가진 것에 집착하지 않고 버리고 나누고 떠나는 것이 몸에 밴 그녀가 부러웠다.
카우치 서핑을 통해 묵은 집 마당에서 집 주인의 머리를 잘라주고 함께 사진 찍은 모습을 보니 그녀의 재주가 탐나기도 했다.

한국에 돌아오니 세상이 너무 빨리 빨리 돌아가는것 같다던 그녀. 늦게 문을 열기에 1시까지 모닝퍼머 할인이 되던 미용실.
남미여행의 로망을 심어준 작은 공간에서 까밀라는 내게 여행의 환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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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랏...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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