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감성으로 담은 '당인리발전소 벚꽃길'

일 년을 기다려온 홍대 앞 당인리 발전소 길이 벚꽃 시즌을 맞이해 활짝 열렸다. 평소에는 일반인의 출입이 어렵지만 매년 이맘때, 벚꽃 필 무렵이면 일주일 정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발전소 정문에서 150m가량 이어지는 꽃길은 우리나라 최초 화력발전소의 역사와 함께하는 만큼 크고 화려하지만 덜 알려져 적당히 호젓해 걷기 좋다. 올해는 도시락 들고 소풍 온 사람들, 산책 나온 주민, 참여전시를 준비하는 작가들까지 어우러져 예년보다 훨씬 풍성하고 볼거리 많은 벚꽃 잔치가 열리고 있었다. 
 

당인리 발전소 벚꽃길 초입 (Path App. Diana filter)

차로 근처를 지나다가 발전소 문이 열린 것을 보고 갑자기 들러 미처 카메라를 준비하지 못했다. 아쉬운 대로 스마트폰 카메라 앱으로 당인리 발전소 벚꽃길을 담아봤다. 어제 [추천앱] 봄 여행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카메라 앱 Best 7' 에서 소개한, 요즘 내가 애용하는 Path의 아날로그 감성 물씬 풍기는 Lomo, Diana, Instant 필터를 주로 적용했다.

(Path App. Lomo filter)

'밤 깊은 마포종점, 갈 곳 없는 밤 전차~', 가사만 들어도 노래가 흥얼거려지는 은방울 자매의 '마포종점' 2절은 '저 멀리 당인리에 발전소도 잠든 밤~'으로 시작되는 것을 아시는지?

홍대 앞을 자주 오갔다는 사람도 잘 모른다는 당인리 발전소는 1930년부터 80여 년간 서울을 밝히고 데워왔던 우리나라 최초의 화력발전소로 지역의 랜드마크다. 지금은 열병합발전 시설로 전환해 압구정, 여의도, 이촌동에 온수를 공급하고 전기 수요 급증에 대비한 비상시설로 운영되고 있지만, 아직도 서울시 전체 전기공급량의 1/10에 해당하는 38만 kw의 전력을 생산하고 있다.

 

(Path App. Lomo filter)


사실 지역 주민에게 당인리 발전소는 환경오염, 집값 정체의 주범으로 눈엣가시 같은 존재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발전소를 고양시로 이전하고 공원화 및 대규모 개발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되었지만, 계획은 정치적 이해관계로 무산되었다. 그래서 요즘은 선거철만 되면 발전소를 둘러싼 논쟁이 끊이지 않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이슈를 아는지 모르는지, 오랜만에 열린 발전소길 풀밭에서 아이들은 미술놀이에 여념이 없었다.

 

 

아이들이 열중하고 있는 미술놀이는 한 작가의 작품이었다.

주변을 돌아보니 벚꽃길 여기저기에서 시민이 직접 참여하여 만드는 참여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홍대 앞이라는 지역 특성상, 지역사회와 연계한 이런 퍼포먼스를 종종 볼 수 있다.

 

(Path App, Diana filter)

 

풀밭에 놓인 색색의 실타래를 바라보다가 '하고 싶어'를 외치는 진아에게 이끌려 작가에게 다가갔다.

 

참여방법은 간단했다. 

1. 먼저 내가 좋아하는 색깔의 실을 고른다.

2. 무작위로 꽂혀있는 못 사이를 실로 연결한다.

3. 연결이 끝나면 내가 연결한 선을 보며 나의 성향을 파악해 본다.

 

작품의도는 선으로 연결된 불규칙한 틀 속에서 우리 내면에 있는 무의식을 함께 찾아보는 것이라고 했다. 아이가 이해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한걸음 떨어져서 연결된 색실들과 그 속에서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뭔가 닮은 듯 다른 색색의 이미지들이 보인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 걸린 투명한 도화지에 화폭 너머 나를 바라보는 가족, 친구의 모습을 그려보기도 하고

 

 

벚꽃이 만드는 그늘에서 저마다의 솜씨를 뽐내기도 했다.

 

 

벚꽃이 조금 뜸해진다 싶은 심심한 길에는 흰 테이프를 이어붙인 작품들이 있었다.

 

 

미로 속 괴물을 보고 흠칫!
어른 아이 할것 없이 신 나게 작품을 즐겼다.

 

참여전시를 주도한 작가들의 단체 샷을 몰래 훔쳐 담아봤다.

벚꽃과 어울리는 분홍색 앞치마가 참 예쁘다.

어쩌면 벚꽃 같이 환한 미소가, 젊음이 예쁜 것일 수도 있겠다.


 

 

벚꽃길에서 만난 진아 친구 '영우'. 

시키지도 않았는데 손을 꼭 잡더니 멋쩍어 한다. 

벚꽃만큼이나 예쁜 아이들의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발전소를 나와 벚꽃을 따라 조금 더 걷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벚꽃사이' 카페가 비로소 진정 벚꽃 사이에 있었다. 주택이 대부분인 이 동네에는 얼마 전부터 조금씩 멋스러운 카페들이 들어서고 있다. 당인리 발전소를 구경하고 나와 합정동까지 이어지는 길에는 홍대 앞에서는 볼 수 없는 아지트 같은 카페들이 자리 잡고 있는데, 공장을 고쳐 만든 독특한 분위기의 Anthracite, 아날로그 감성 물씬 풍기는 커피 발전소도쿄 골목길에 있을법한 카페즈키, 그리고 카페라떼가 맛있는 편한 분위기의 벚꽃사이 등이 있다. 이곳의 카페들은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북카페이거나, 홍대 앞 유명 카페 출신 바리스타가 차린 곳이 많아 벚꽃길 산책후 여유롭게 책을 읽고 싶거나 제대로 된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싶을때 찾으면 좋다. (출출하다면 카페즈키의 데리야끼소스 스팸밥이나 오늘의 카레, 벚꽃사이의 다시마국수를 추천! 먹어보진 않았지만 괜찮다는 소문이 있다.)  

 

살랑살랑 벚꽃에 취하고, 벚꽃과 놀았던 봄날 오후. 당인리 발전소 벚꽃길은 이제 한창이다. 꽃보다 사람이 많다는 여의도 벚꽃 축제가 부담스럽다면, 홍대 가까운 곳에 있는 상수동 당인리 발전소 벚꽃길을 한번 걸어보면 어떨까? 방문객을 위한 주차장도 무료로 개방되니 도심속에 이만한 꽃놀이 장소가 또 있겠나 싶다.

 

[Tip] 당인리 발전소 벚꽃길

· 꽃길 개방 기간: 2012년 4월 14일 ~ 20일

· 위치: 서울시 마포구 당인동 당인리 발전소, 지하철 6호선 상수역 4번 출구 600m 도보 10분
※ 개방기간 동안 무료주차, 무료 커피, 녹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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