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빛깔 치유의 색, 필리핀 보홀의 매력에 빠지다.

출산 후 6개월... 지쳤다.
큰아이는 혼자 노는 시간이 늘었고, 남편에게 집은 또 다른 업무의 연장이 되었다. 축복, 행복, 기쁨. 아기는 그 어떤 단어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사랑스러운 존재이지만, 돌처럼 무거워진 우리의 몸과 마음은 휴식이 필요했다.

30도를 웃도는 초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5월 말, 가족은 '힐링(healing) 여행'을 떠났다. 필리핀 세부, 세부에서 다시 바다를 건너 '보홀' 섬으로. 이번 여행은 떠났다기보다 숨어들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보홀에서 보낸 6일의 시간. 해변 그늘에서 빈둥거리기만 해도 행복했던 그곳에서 우리는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다독이며 마음 밑바닥에 엉겨 붙었던 찌꺼기를 하나씩 떼어냈다.

여행에서 돌아온 지 사흘째, 이제 나는 보홀에서 만났던 다섯 빛깔 치유의 색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Blue

 


보홀을 대표하는 색으로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역시 바다를 닮은 코발트블루다. 맑은 날 아침, 보홀비치클럽의 프라이빗 비치에서는 햇살에 반짝이는 코발트 빛 하늘과 바다를 볼 수 있다. 하얀 모래와 대비를 이루며 잉크를 풀어놓은 듯 점점 진해지는 푸른 색은 보는것 만으로도 황홀한 기분이 들었다.  



물이 빠지는 오후가 되면 바다는 투명하게 빛난다. 하늘이 그대로 비치는 바다를 맨발로 걸어 들어가면 마치 하늘을 걷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보홀의 팡라오 섬에서 배를 타고 10Km(배로 30분 정도) 달리면 발리카삭 섬에 도착한다. 에메랄드 빛 발리카삭 섬 주변의 바다에서는 세계 10대 다이빙 포인트라는 명성에 걸맞게 스노클링만 해도 다양한 종류의 물고기, 산호 등을 관찰할 수 있다.  

 

White




산호가 부서져 모래가 된 화이트 샌드. 오후의 보홀비치클럽 해변에서는 맨발과 맨손으로 곱디고운 모래를 즐겼다. 찰흙처럼 달라붙는 쫀득한 모래의 감촉이 새로웠다.




돌핀 워칭, 발리카삭 섬 스노클링, 버진 아일랜드 관광을 할 수 있는 보홀의 호핑 투어. 필리핀 전통 나무배인 방카를 타고 에메랄드 빛 바다 위에 둥실~ 그저 방카에 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기분이다.  




썰물이 되면 반달모양의 모래사장이 드러나는 버진 아일랜드에서는 조가비를 주워 파는 장사꾼을 만날 수 있다. 소라 껍데기를 가만히 귀에 대고 파도 소리를 들으니 옛 추억이 떠오른다. 반가운 마음에 가격을 물어봤으나 환경을 위해 반출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어 사올 수는 없었다.


Green


열대의 나무가 내뿜는 신선한 기운, 잘 가꿔진 리조트의 푸름, 초록의 자연이 주는 생기를 온몸으로 느꼈다.


작지만 깨끗하고, 있을 것은 다 있었던 리조트. 우리가 묵었던 방에서 한발짝만 나서면 바로 이런 남국의 풍경이 펼쳐진다. 아침엔 딸아이의 머리를 빗기고, 오후엔 수영 후 노곤함을 풀고, 해가 어스름해지면 비스듬히 누워 산미구엘을 마시던 비치체어가 벌써 그립다. 


Red

 


보홀 관광객들의 주요 교통수단인 트라이시클은 대부분 빨간색이다. 운전석 머리에 'FOR HIRE', 'SPECIAL TRIP', 'FAMILY USE'라고 써붙여 용도를 구분하는데 우리가 택시처럼 탈 수 있는 것은 'FOR HIRE'라고 쓰인 것이다. 미터기가 없으므로 미리 가격을 흥정하고 타야 한다.


승용차보다 트라이시클을 더 좋아했던 딸아이 덕분
에 우리는 에어컨도 없는 오토바이 옆자리 옹기종기 붙어 앉아 다녀야만 했다. 트라이시클을 타고난 후에는 늘 땀으로 흠뻑 젖었지만, 달리는 내내 아이가 웃으니 견딜만했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아이는 엄마 무릎에 앉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다.


빨간 원피스의
그녀. 보홀 여행 중 힘들거나 난감했던 순간에 늘 순수한 질문과 답변으로 나를 웃게 했다. 분명 집에서도 같은 질문과 이야기를 했을 텐데, 그때 난 여유가 없어 짜증으로 답했던 것 같다.  
 

Brown


모유 수유의 걱정이 없으니 마음 놓고 마셨던 맥주. 주스보다 맥주가 싸다는 핑계로 목마를 때면 시도때도없이 들이켰다 .산미구엘은 강하고 쌉쌀한 맛이 나는 필슨(Pilsen)계열 맥주라 음식과 함께 즐기기보다는 자체의 맛을 음미하는 것이 더 좋았다. 햇살이 부서지는 한낮에 마시기에는 산미구엘 라이트가 부담 없었다. 


산미구엘과 함께 보홀에서 가장 즐겨 먹었던 망고와 바나나. 마트나 노천에서 파는 망고는 킬로그램 단위로 살 수 있는데, 껍질의 노란 색이 진하고 냄새를 맡아보아 달달한 향이 나는 것을 고르면 된다. 바나나는 날것으로 먹기도 하지만 불에 구워 먹으면 군고구마 맛이 난다.


필리핀 전통 방식으로 구운 고기. 닭이나 돼지고기에 양념을 발라 숯불에 굽는다. 돼지고기 꼬치, 삼겹살 구이 등이 특히 맛있다.  

화려한 밤문화나 왁자지껄한 시장풍경, 쇼핑 등을 원한다면 보홀은 절대 갈만한 곳이 못 된다. 하지만 사람이 드문 한적한 곳에서 진정한 휴식의 시간을 보내고 싶다면 푸른 바다와 고운 백사장, 총천연색 바닷속 풍경이 있는 보홀이 답이 될 수 있겠다. 딱히 정해놓은 스케줄이 없었기에 더 많이 대화하고 웃을 수 있었던 이번 여행. 보홀에서 나눠 가진 서로에 대한 믿음은 여행 후 남은 가장 값진 선물이 되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