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먹이 데리고 록키까지, 9박 11일 캐나다 렌터카 가족여행 스케치

초저녁에 잠이 든 아이들이 새벽부터 일어나 부시럭 대는 통에 저도 함께 일찍 잠이 깼습니다. 

돌아온지 이틀이 지났지만 아직 녀석들의 시계는 여행중인가 봅니다. 

 

다섯 살 진아와 젖먹이 정균, 그리고 제 여행의 영원한 지지자이자 동반자인 남편과 함께 떠났던 9박 11일간의 캐나다 록키로의 여행.

고장난 시계가 다시 제 패턴을 찾기 전에 제 기억 속의 행복했던 시간들을 사진으로 스케치해 봅니다.

 

 

  Day 1    인천에서 밴프까지

 

 

두 번의 트랜짓, 14시간 의 비행, 한 편은 결항, 결항으로 인해 1시간 추가된 다섯 시간 반의 기다림, 다시 두 시간의 운전. 기나긴 이동 끝에 드디어 꿈에 그리던 캐나다 밴프에 도착했다. 밥로스가 그려놓은 듯한 똑같은 침엽수림 사이로 해지는 록키 마운틴을 마주하니 좀 울컥한 기분. 학창시절엔 밥로스의 방송을 보며 사상없는 싸구려 그림이라며 그렇게 싫어했었는데, 실제 마주한 그림 같은 대자연 앞에서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밴쿠버에서 캘거리로 가는 비행기에서 본 리얼 록키산맥

 

 

우려와 달리 아주 젠틀했던 아이들. 자는 아이를 그리는 나를 본 승무원이 호빵맨으로 화답했다.

 

 

  Day 2 ~ 3   캐네디언 록키와의 감동적인 첫 만남, 밴프

 

 

자료를 보고 또 봐도 떠나기 전까지 막막했던 록키로의 여행. 록키는 산이 아니던가. 두 아이, 그것도 젖먹이를 데리고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와 산을 탄다니 주변의 만류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굳이 두 발로 산을 오르지 않아도 록키를 여행하고 느끼는 다양한 방법이 있었다. 곤돌라를 타면 8분만에 해발 2285미터의 설퍼산 정상으로 올라갈 수 있고, 산 중턱의 노천 온천에서는 남성미 넘치는 록키 산맥을 바라보며 망중한을 즐길 수 있다. 밴프의 산맥과 호수에 얽힌 역사와 재미난 에피소드를 들으며 크루즈를 즐길 수도, 아이들과 아이스크림 하나씩 입에 물고 산악마을인 밴프 애비뉴를 거닐 수도 있다.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마주한 록키, 케스케이드 마운틴.

 

 

내비게이션보다 종이 지도를 함께 보는 알콩달콩 여행 파트너 (하지만 인간 내비게이터 스티브는 한번 가본 길은 바로 외워 버렸다는~!)

 

 

밴프 곤돌라를 타고 설퍼산 정상에 올라간 후, 전망대까지 오르는 길

 

 

선선한 가을 날씨에도 뜨끈한 어퍼 핫 스프링.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다음날 아침, 크루즈 투어를 마친 후 미네완카 호수에서. 아이와 여행하는 가족들이 정말 많았다.

 

 

밴프와 정말 잘 어울리는 산악마을, 밴프 애비뉴

 

 

  Day 4   보우밸리 파크웨이를 거쳐 레이크 루이스로

 

 

첫 3일을 보냈던 밴프를 떠나 레이크 루이스로 향하는 날. 하지만 아이들과의 여행은 언제나 '효율'과는 거리가 멀다.
아침 일찍 체크아웃을 하고 카누를 즐긴 후 밴프에 사는 동물을 소개하는 박물관에 가보려던 우리의 계획은 아침 일찍 시작된 진아의 구토로 백지화가 됐다.

전날 두 끼를 연달아 고기를 먹였더니 급체를 했는지 물만 마셔도 토하는 진아.  비상약에 소화제가 없었는데, 설상가상으로 일요일이라 문을 열지 않은 약국.
그런데 신이 도왔는지, 밴프에 가족 여행을 온 옛 회사 동료가 때마침 우리 앞을 지나갔고, 가지고 있던 아이의 약을 나눠주었다. 정말 신이 도왔다고 할 수 밖에 없는 상황~! 다시 생각해도 이런 인연이 없다. (허대리님! 정말 고마웠어요!!!) 

 

 

약을 먹고 기운을 찾은 진아와 다시 찾은 오후의 보우 강

 

 

깜찍한 아기용 구명조끼를 입고 함께 카누를 타는 정균

 

 

진한 에머랄드빛 강을 배경으로 단란한 가족 셀카 한 장.

 

 

길을 잘못 들어서 우연히 들러보게 된 가을 정취 물씬 풍기는 버밀리온 호수

 

 

조금 늦었지만 꼭 들러보고 싶었던 록키 산맥 트래킹의 하일라이트, 존스톤 협곡. 북반구라 해가 늦게 (8시쯤) 지는 장점을 이용했다.

보기와 달리 유모차로도 등반이 가능할 만큼 길이 잘 닦여 있다.

 

 

  Day 5   신기루 같았던 레이크 루이스

 

 

 

 

록키산맥의 수많은 호수 중 최고라 불리는 레이크 루이스와 모레인 호수. 캐네디언 록키가 있는 알버타주 관광을 소개하는 수 많은 책자의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두 호수는 새벽녘 동틀 무렵의 모습이 가장 멋지다고 해 잠시 고민을 했던 곳이다. 결국 전날 밤, 진아에게 함께 갈 것인지를 묻고, 만약 아침에 일어나 엄마아빠가 없으면 해야 할 행동, 가지고 놀 스티커북 등을 일러준 후 둘째만 데리고 새벽 산행을 감행했다. 

 

 

광선검이 비칠 무렵의 새벽 풍경이 가장 멋지다는 모레인 호수. 적막 속에 선명해지는 호수의 반영을 그저 숨죽이고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스티브는 이 때를 가장 인상적이었던 순간으로 꼽는다.

 

 

우리가 모레인 호수에 다녀온 두 시간 남짓 동안 다행히 진아는 깨지 않고 잘 자고 있었다. 직접 구운 와플로 아침을 먹으며.

 

 

곤돌라를 타고 높이 올라 바라본 레이크 루이스. 진아는 반대편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에게 신나게 손을 흔들었다.

 

 

  Day 6   스위스를 50개쯤 합쳐놓은 것 같다던 아이스필드 파크웨이를 타고 재스퍼로

 

 

영국의 어느 산악인이 '스위스를 50개쯤 합쳐놓은 것 같다'고 말했다던 아이스필드 파크웨이. 이 길을 달리는 것 자체가 여행의 목적이 된다는 그 길을 가족과 함께 달렸다. 길 중간중간에는 뷰포인트가 있어 가다 서다를 반복하다보니 세 시간이면 갈 길을 하루 종일 달린 것 같다. 빙하가 가까워서인지 더욱 영롱한 에메랄드 빛을 띄는 호수들, 그리고 빙원 위를 달리는 특별한 경험, 길 위에서 야생 사슴을 만나는 황홀했던 순간. 이 모든 것이 재스퍼로 향하는 아이스필드 파크웨이에서 보고 겪은 실제 상황이었다.

 

 

카메라를 내려놓을 수 없는 풍경, 아이스필드 파크웨이를 달리며

 

 

멀리서 보면 표면에 떠있는 광물질 때문에 짙은 에메랄드 빛이지만 한 걸음 다가가 가까이 보면 이렇게 맑고 투명하다. 보우 호수.

 

 

가장 아름다운 색을 띄고 있다는 페이토 호수.

 

 

빙하를 달리는 특별한 경험, 설상차를 타고.

 

 

진아가 좋아했던 길에서 만난 야생 사슴. 너무나 당연한듯 당당히 도로를 건너는 모습이 내가 보기에도 신기했다.

 

 

  Day 7   재스퍼에서 피크닉을

 

 

스티브가 캐나다에서 꼭 해보고 싶은 것이 한 가지 있다고 했다. 바로 캐네디언처럼 도시락을 싸 호숫가에서 가족과 함께 피크닉을 하는 것이었다.

미리 짜놓은 일정에 쫓기는 여행이 아니라 그냥 즉흥적으로 그날 아침에 정해 소풍가듯 다녀오는 그런 피크닉을 원했다. 결국 아침엔 내가 가고싶어하던 협곡을 오르고, 오후엔 스티브가 원하는 피크닉을 즐겼던 하루. 장을 봐 아침부터 샌드위치를 싸느라 조금 분주했지만 호수로의 피크닉과 산책은 생각보다 훨씬 여유롭고 멋졌다.

 

 

세번째 다리까지 가는데 20여분, 계단으로 연결된 쉬운 코스로 조금만 걸으면 이렇게 멋진 폭포를 만날 수 있다. 멀린 협곡

 

 

참치캔과 양상추, 토마토, 양파, 샐러드 소스를 곁들인 내맘대로 참치 샌드위치. + 호텔 조식때 챙긴 과일 몇 개 + 직접 만든 이유식 등으로 차린 피크닉 상

우리가 찾은 곳은 메디슨 호수라는 곳이었는데, 알고보니 내가 짜 놓은 일정에 있던 곳이었다. ㅋ

아이들이 놀기 좋은 비치도 있고, 호수를 따라 경치 좋은 산책로가 있어 자전거를 타기에도, 걷기에도 참 좋았다. 

 

 

숙소 중 가장 만족도가 높았던 베스트웨스턴 재스퍼, 로프트 스위트룸. 주변과 잘 어울리는 아담하고 깨끗한 호텔, 식당 가는 길엔 꽃들이 만발한 작은 정원이 있고,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식당은 매일 아침을 행복하게 시작하기에 충분했다. 천장으로 쪽창이 있는 다락방과 진짜 나무로 불을 지필 수 있는 벽난로가 인상적이었던 곳.

 

 

  Day 8   6시간의 이동, 다시 레이크 루이스를 지나 캘거리로

 

 

작은 사건사고들로 인해 꼭 해보고 싶은 것을 지나친 것이 있어 캘거리로 돌아가는 날 레이크 루이스에 다시 들렀다.

샤토 레이크 루이스에서의 에프터눈 티타임. 레이크 루이스에 두 번 들를만큼 원하던 것이었다. 하지만 인파로 북적이는 샤토 레이크 루이스 카페는 번호표를 받고 20여분을 대기해야 할 만큼 인기가 좋았다. 평일이라도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에프터눈 티 세트를 맛볼 수 없다고 했다. 결국 추천하는 케이크 몇가지와 얼그레이를 주문했지만 후회하지 않을 맛과 풍광이었다. 정균이가 카페트 위를 기어다녔지만, 풍경만큼은 정말 로맨틱 했던 순간. ^^

 

 

샤토 레이크루이스 카페에서 바라본 레이크 루이스

 

 

 

가을이 무르 익어가는 아이스필드 파크웨이

 

 

  Day 9   캘거리

 

아이들도, 챙기는 어른도 좀 지친것 같아 예정했던 헬기투어는 과감히 생략하기로 했다. 대신 아침에 조식을 챙겨주던 호텔 직원이 추천한 프린세스 아일랜드 공원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놀리고, 다운타운을 걸어보기로 했다. 어느 나라에서건 3분 안에 친구를 만드는 신기한 능력을 가진 진아는 캘거리의 아이들에게도 스스럼 없이 다가섰다.

 

 

캐네디언 기즈를 바라보며, 단풍잎 흩날리는 공원에서 진아

 

 

가을 색 완연한 캘거리 다운타운 풍경.

 

 

  Day 10~11   다시 현실로

 

 

다시 긴긴 비행이 시작되는 날. 천천히 마지막 호텔 조식을 즐기고, 캘거리 공항으로 향했다. 열흘간 정들었던 지프 콤파스를 반납하고 나니 정말 여행이 끝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서글픈 기분도 잠시. 아이들이 조금 더 자라면 샤토 레이크루이스에서 다시 샴페인 한잔 기울이며 지금을 이야기 하자는 스티브의 제안에 슬쩍 웃음이 났다. 비록 아득한 미래일지언정 이렇게 말해 주는 그가 고마울 따름. 다시 현실로 돌아와 일상이 시작되었지만 캐나다에서의 행복했던 시간을 추억할 수 있어 당분간은 무엇을 하든 힘이 날것 같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 아침 일찍 응가한 효자 정균

 

 

배씨넷에 잠든 아이를 누이고,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커피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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