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쯤, 아이와 스페인] Day11 - 피카소 생가와 말라가 구시가지에서 보낸 하루

스페인 여행 11일차, 말라가에서의 세 번째 밤입니다.

오늘은 피카소 생가와 구시가지, 말라가 대성당, 그리고 번화가인 마르케스 데 라리오스 거리를 다녀왔습니다.



어제 제가 말라가 전역에 보라색 꽃이 피어 있다고 한 것, 혹시 기억하시나요?

피카소 생가가 있는 메르세드 광장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피카소의 탄생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다는 오벨리스크를 중심으로 고목들이 줄지어 서 있고, 그 가지 끝에는 마치 벚꽃처럼 흐드러지게 아름다운 꽃이 피어있었습니다. 광장 주변의 오래된 건물들도 운치를 더하더군요.



말라가는 대표적인 스페인의 휴양지이지만, 피카소 생가가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지요.

피카소는 바로 이 곳, 말라가 메르세드 광장 36번지의 5층 건물에서 1881년 10월 25일 태어났습니다. 건물 모서리에 있는 그의 집은 현재 피카소 생가 박물관으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입장권은 1인당 3유로. 대부분의 스페인 관광지가 그렇듯 아이들은 무료였습니다. 피카소 생가 입장권을 끊으면 생가 건물과 20m정도 떨어진 박물관을 함께 둘러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대가 너무 컸던 걸까요? 프랑크푸르트의 괴테하우스나 바르셀로나의 가우디 하우스를 떠올리며 피카소 생가에 들어선 저는 실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내부를 전부 현대식으로 바꿔 박물관으로 꾸며 놓았더군요. 피카소가 태어난 방이나 침대, 생활했던 공간, 유년시절 사용했던 화구 등을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요. 이곳에는 그의 물건 몇 개와 사진, 스케치 몇 점(그것도 상당수가 모조품이거나 프린트)이 전부라 무척 아쉬웠습니다.



그러나 생가를 벗어난 광장 곳곳에서 피카소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메르세드 광장 오벨리스크 뒷편에는 소박한 차림으로 벤치에 앉아있는 노년의 피카소 동상이 있고요.



피카소의 그림을 본 딴 간판,



피카소의 그림을 나름대로 재해석해 그리는 거리의 화가도 있었습니다.



심지어 피카소는 타파스 집의 호객꾼으로도 등장하더군요. ㅎ


92세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무려 5만 여 점이나 되는 작품을 남긴 피카소는 말라가에서 유년시절을 보냈고, 프랑스로 망명한 후에도 투우, 플라멩고 등을 즐기러 여름마다 이곳을 찾았다고 합니다. 비록 피카소 생가는 기대와 달랐지만, 어제 히브랄파로에서 내려다 본 투우장과 여행 내내 볼 수 있었던 플라맹고 포스터 그리고 옛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구시가지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그의 흔적들을 떠올리니 저는 피카소와 조금 더 가까워 진 것 같습니다.



점심은 광장 건너편의 오래된 식당에서 먹었습니다. 사실 처음부터 이 집을 가려던 건 아니었는데요. 안쪽의 화려한 노천 레스토랑에 앉았다가 옆 테이블의 음식과 사람들의 표정을 보고는 바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열흘 남짓한 여행에서 저희가 얻은 한 가지 교훈이 있습니다. 겉모습에 속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딱히 맛집을 고집하는 건 아니지만, 지나는 길에 들른 식당에 몇 번 크게 실망하고 난 후에는 사람이 많거나 현재 위치 주변의 트립어드바이저 순위가 높은 집만 찾아다니게 되었습니다. 뜨내기 손님을 상대하는 관광지 식당이 많다 보니 조심하게 된 거죠. 그리고 저희는 천방지축 두 아이와 함께이니 캐주얼한 식당이라도 실내보다는 야외 자리를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과 떠들어도 되고, 광장이나 놀이터 근처라면 먼저 밥을 먹은 아이들이 뛰어놀 수도 있으니까요.



이 곳은 트립어드바이저 순위 120위 정도 되는 Meson이라는 이름의 타파스 레스토랑입니다. 순위가 그닥 높진 않지만 3~400여개의 식당 중 1/3에 해당된다면 뭐 아주 나쁜 곳은 아니겠구나 싶어 들어섰는데, 내부에 진열된 타파스 메뉴도 신선해 보였고, 그릴에 직접 꼬치나 문어를 구어주는 것이 식욕을 당겼습니다. 역시나 직접 보고 고른 메뉴는 모두 맛있었습니다. 이 식당에서는 음식을 한 두 입 크기로 조금씩 내는 타파 메뉴 외에도 여러 개의 메뉴를 맛보고 싶을 때 정식 메뉴의 반씩 주문할 수 있는 1/2 플레이트 메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네요. 사진의 새우 토마토 샐러드가 1/2 플레이트입니다. 



말라가 구시가지는 바르셀로나나 그라나다보다는 조금 더 시골스러운 모습이었습니다.



구시가지에서 가장 유명한 대성당. 대성당은 어느 도시에나 있지만, 이곳 성당은 두 개의 종탑 중 하나만 완성이 되어 '하나의 팔을 가진 여인'이라는 별명을 가진 곳입니다. 비교적 수수한(?) 외관입니다만 안으로 들어가면...



입이 떡 벌어지는 화려한 광경이 펼쳐지지요.



내부에는 18세기에 만들어진 조형물과 바로크 양식의 파이프 오르간, 스페인 시민 전쟁에서 학살된 희생자들의 유해, 17개의 예배당 등을 볼 수 있습니다.



구시가지를 돌아 세련된 옷가게, 신발가게가 즐비한 마르케스 데 라리오스로 나왔습니다.



재래시장 (Mercado de Atarzanas)에 들러 싱싱한 해산물을 사기 위해셔였는데요. 아... 그런데, 저희는 재래시장 운이 없는지, 며칠 전 바르셀로나에서는 보케리아 시장 문 닫은 날에 람블라스 거리를 구경했는데, 오늘은 너무 늦게 가서 또 문 닫은 모습만 구경했습니다. 스테인드 글라스로 장식된 오래된 시장이라 꼭 보고 싶었는데 무척 아쉬웠습니다.



결국 숙소 근처의 대형마트에서 오늘의 일용할 양식을 장만했습니다. 해산물은 빠에야 재료를 사니 모듬 해물탕 재료가 되었고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양갈비도 저렴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쌀 1kg, 과일 조금과 쌈채로 로메인, 그리고 말라가에서의 마지막 밤을 화려하게(?) 장식할 크루스캄포 맥주 1.1리터짜리 두 병을 샀네요. ㅎ 두 번의 주말을 지내고 보니 스페인의 마트는 일요일이면 전부 문을 닫아서, 월요일이 되어야 신선한 식재료를 살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10시가 넘어도 해가 지지 않지만, 마트는 9시면 문을 닫는다는 사실도요. 



마지막으로 제가 너무나 사랑하는 말라가 아파트 숙소의 옥상 풍경을 보여드립니다.


영어로는 루프탑 테라스. ㅎ 지대가 높아 내려다보는 풍경이 아주 근사합니다. 빨래 너는 남편 뒤로는 저희가 나흘간 묵었던 옥탑방이 있고요. 테라스에는 네 개의 테이블과 여섯 개의 비치 체어가 있습니다. 영화에 보면 가끔 옥상에 비치체어 놓고 비키니 입고 선탠하는 사람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정말 집집마다 옥상에 비치체어가 있더군요.


El Cenachero라는 작은 아파트이지만, 한국의 콘도나 태국의 서비스 아파트처럼 관리인이 전문적으로 여행자에게 렌트를 해주는 곳으로 주방과 테라스가 있어 아이들과 함께 하기에 좋습니다. 방에서 바로 연결되는 테라스에서 저희는 매일 저녁 고기를 굽거나 요리를 해서 야외 식사를 했습니다. 오늘도 양갈비를... ^^ (숙소 이야기는 한국 돌아가서 한꺼번에 정리해 볼게요.)


말라가에서의 아쉬운 마지막 밤이 깊어갑니다. 내일은 론다로 떠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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