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갈비 먹으면 춘천관광이 공짜'라는 식당에 가보니

바람 쏘이러 춘천이나 다녀오자는 아버지 말씀에 정말 오랜만에 온 가족이 뭉쳤다. 

사람이 덜 붐비는 평일 오전에, 자동차 대신 기차를 타고, 가볍게 닭갈비나 먹고 오는 당일치기 여행을 해보자는 취지였다. 

식당은 어머니께서 지난번 아파트 부녀회 회원들과 다녀온 곳으로 예약을 하셨단다. 

평소보다 조금 일찍 아이들을 원에 보내고, 서둘러 용산역으로 향했다. 


10:00 ITX  청춘열차 타고 춘천으로~!  



무궁화호 대신 경춘선을 달리는 열차가 새로 도입됐다는 소문은 들었어도, 이걸 내가 이용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이름이 'ITX 청춘열차'였기 때문이다. 비인기 구간에 노인들을 위한 열차를 운행하나 싶었는데, 알고보니 ITX 는 Intercity Train eXpress 의 약자로 도시간의 준고속철도라는 의미를 갖고 있단다. '청춘'도 청량리와 춘천을 오가는 철도라는 뜻이라고. (초기에는 청량리-춘천 구간만 운행할 예정이었으나, 현재는 용산-춘천까지 다닌다. '용춘열차' 될 뻔 했다며 한참 웃었다.)  



새 열차인만큼 실내도 넓고 아주 쾌적했다. 게다가 열차중 2량은 2층으로 설계되어 있어 미리 예약만 하면 좀 더 시원한 풍경을 볼 수 있다. 



요즘 한창 자전거에 열심이신 아버지께서 관심있게 보셨던 부분, 자전거 거치대가 있다. 맨 앞, 뒤 칸에 4개씩 총 8대를 실을 수 있다. 

그밖에 화장실, 음료 자판기가 있고, 맨 앞자리에는 전기를 쓸 수 있게 되어 있어 여러모로 편리했다.



가평 어디쯤을 지나는 듯. 기차여행에는 계란과 사이다라며 야심차게 준비했는데 다들 닭갈비 드신다며 관심 없으셨다는.. --; 



11:15 춘천역에 마중나온 닭갈비집 차량, 의암호로



바깥풍경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깜빡 잠이 들었을 때, 춘천역에 도착했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1시간 15분만에 춘천에 도착할 수 있다니, 이정도라면 출퇴근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에서부터 어디론가 전화하시는 어머니를 따라가보니 주차장 저만치 봉고차가 있었다. 닭갈비집 픽업차량이었다. 알고보니 이집은 엄마가 가끔 나가시는 아파트 부녀회에서 한번 가봤던 곳으로 '닭갈비를 먹으면 공짜로 춘천관광을 시켜주는 곳'이라고 했다.



닭갈비를 먹기에는 너무 이른 시각 아닌가? 나는 계란도 먹어서 배가 부른데...; 

고민하고 있을 즈음, 차를 운전하던 아저씨께서 구수한 억양으로 말씀을 시작하셨다. 


"안녕하세요. 여기는 호반의 도시 춘천입니다. 

점심 먹기는 아직 이르니 관광을 한 코스 먼저 하고요~ 그 다음에 식사를 하러 가겠습니다."


이어 춘천의 역사가 술술 이어졌다. 

주요 관광지를 지날 때마다 놓치지 않고 어떤 곳인지 설명을 하고, 마지막으로 우리를 의암호 당재뿔 산책로에 내려주셨다.



당재뿔 산책로는 의암호와 춘천시내가 한눈에 바라보이는 장소로 잔잔한 호수에 비친 산 그림자가 특히 아름다운 곳이다.  




산책로 주변으로는 자전거 도로가 있는데, 이 길은 의암호 주변 뿐 아니라 춘천 전역으로 연결되어 자전거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는 곳이다. 



길은 공지천의 '황금비늘 테마거리'로 이어진다. 이곳은 수많은 문화인들의 예술적 감수성을 키운 곳으로 특히 춘천이 고향인 이외수 작가가 사랑하던 곳이라고. 벚나무가 빽빽하게 우거진 숲길을 사이로 전시된 이외수의 시를 읽으며 걷는 재미가 쏠쏠했다. 아직 이르지만 서서히 단풍에 물들어가는 나무도 보였다. 10월 말이면 이 길이 모두 황홀한 단풍 색으로 물든다고.



캐나다의 레이크 루이스 부럽지 않은 춘천 의암호. 아름답다.


12:15 춘천 닭갈비를 맛보다



산책로를 한 시간 남짓 걸었더니 출출해졌다. 식당으로 전화를 하니 5분만에 다시 픽업차량이 도착했다. 

남춘천역 근처의 식당에서 식구 수대로 닭갈비를 주문하고 (양이 많을 것 같았지만, 관광을 했으니 아무래도 그래야 할 것 같아서...), 막걸리도 한 병 시켰다. 재밌는 건, 닭갈비 가격이 그닥 비싸지 않다. 1인분에 11,000원. 가격표가 수정된 흔적이 있는 걸 보니 얼마 전까진 만원에 닭갈비 + 투어가 가능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닭갈비 맛이 없는 것도 아닌데, 아니, 썩 괜찮았는데 어떻게 이 가격이 가능한 건지? 


가만보니 이곳은 춘천의 명동 닭갈비 골목에서 좀 벗어난 남춘천역 근처에 있다. 독채 건물에 꽤나 넓직한 규모이지만, 부러 찾아오지 않는 한 관광객이 지나가다가 들르기는 힘든 곳 같았다. 그래도 걸려있는 사진들을 보니 96년, 1회 닭갈비 축제를 할 때부터 참가할 만큼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집인 듯했다. (나중에 명함을 보니 나름 30년 전통이라고!)    



'춘천'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추억과 낭만이다. 대학 시절 즐거웠던 강촌으로의 MT, '춘천 가는 기차'를들으며 연인과 함께 몸을 실었던 경춘선 열차, 그리고 메타세쿼이아가 늘어선 남이섬의 풍경은 세월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가슴 설레는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굳이 춘천에 가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춘천의 향기, 주머니 가벼웠던 학생시절 대학가 근처에서 배불리 먹을 수 있었던 춘천 닭갈비는 아련한 춘천의 추억과 함께 떠오르는 즐거운 기억 중 하나다. 옛추억을 되새기다가 지글지글 익어가는 닭갈비 냄새에 침이 꼴깍~!



평소에는 술을 거의 입에 대지 않으시는 우리 부모님이지만, 차도 없으니 한잔 하시라며 막걸리 한잔 권해드렸다.



이런 시간, 대체 얼마만인가~


13:30 여행의 신세계가 열리다, 닭갈비 미니버스 투어!



식사를 마치고 다시 미니버스에 오르니 할머니 세 분이 계셨다. 닭갈비 집에서도 마주쳤던 기억으로, 앞으로의 일정을 함께 하실 분들인 듯.

'패키지 투어 연합상품' 같은 일정에 슬쩍 웃음이 났다. ^^ 



여덟명의 손님들이 온 몸으로 닭갈비 냄새를 풍기며 (^^) 향한 곳은 올 6월에 개장했다는 '춘천 스카이워크'. 



아기손 단풍이 살짝 홍조를 띄고 있다.


마치 캐나디언 로키의 글래시어 스카이워크(Glacier Sky Walk)를 연상시키는 춘천 스카이워크 포스. 



의암호 위로 놓인 다리 중간 즈음, 이렇게 유리 바닥으로 된 존이 있다. 들어가려면 양말을 벗고 조심조심 걸어야 한다.



겁이 좀 났지만, 일단 들어서면 사방이 사진찍기 좋은 포토 포인트! 

할머니들은 다리가 아프시다며 중간에 돌아가시고, 우리 가족만 사진을 몇 장 남겼다.



아이들이 원에서 돌아오는 시간을 계산해 올라가는 표를 오후 3시 10분으로 끊었더니 일정이 빠듯했다. 

그래도 시간에 맞춰 투어를 시켜주시겠다는 아저씨의 강력한 의지로 '춘천 박사마을'부터 한창 개발중인 '춘천 레고랜드 코리아', 소양강 처녀상이 있는 소양호 근처까지 차로 모두 둘러봤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라 원시적인 자연미가 있는 북한강 자락, 굳이 먼 바다로 나가지 않아도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다.

시간 여유가 있었다면 내려볼 것을... 무척 아쉬웠다. 


15:00 춘천 당일치기 여행을 마무리하며



여행사의 전문 가이드처럼 안내 하며 춘천 곳곳으로 이끌던 아저씨는 기차 출발 10분 전에 우리를 춘천역에 내려줬다.

어쩌면 시간을 이렇게 잘 맞추냐며, 헐레벌떡 내리고나서는 가족과 함께 한참을 웃었다. 정말 대단했다. 춘천 관광지를 너덧 군데 들르고, 닭갈비 식사까지, 이 모든게 네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이루어졌다. @.@ 전문 여행사가 아니라, 닭갈비 집을 통해서~ 


저렴하다고 대충이 아니었다. 편리함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짧은 시간동안 평소 가보지 못했던 관광지 여러 곳을 들르고, 전문 식당에서 맛있는 춘천 닭갈비까지 맛볼 수 있었다. 나는 춘천하면 소양호에서 유람선이나 탈 줄 알았지, 이렇게 많은 비경이 숨어있는 줄 몰랐다. 이게 다 춘천 토박이라는 식당 아저씨의 미니버스 관광이 아니었다면 해볼 수 없었던 경험~! 우습게 볼 게 아니었다. 


이건. 정말. 여행의 신세계였다!

  


다음에 또 갈 의향이 있냐고? 당연히 Yes~! 서울 근교에 이렇게 알찬 당일치기 여행지가 또 있을까?

주말에도 예약이 가능하다니 다음엔 아이들도 모두 데리고 좀 더 여유롭게 가을 단풍놀이를 다녀와야겠다. 



참, 다음주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2014. 9/23 ~28) 춘천 닭갈비 막국수 축제가 열린단다.

요즘 하늘도 맑고, 날씨도 좋으니 가을 나들이 삼아 한번 다녀오면 어떨까?

(우리가 들렀던 집은 여기 참가하느라 기간동안 예약을 받지 못한다고 하지만.... 참고하시길.)


* Special Thanks to '기차 표부터 닭갈비까지 시원하게 쏘신 아빠!' 감사합니다!



[여행 Tip] 은행나무 닭갈비 막국수

주소: 춘천시 퇴계동 593-15번지

전화: (033) 254-4790 / 010-5435-5606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