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쯤 스페인] 20분 달리고, 톨비 1만원?! 렌터카 여행의 시작, 발렌시아로

닷새간 정든 바르셀로나를 떠나 발렌시아로 향하는 날.

28일 스페인 여행 중 엿새째, 바르셀로나에서 안달루시아 지방으로 두근두근 렌터카 여행을 시작하는 첫 날이다. 


고난의 시작, 바르셀로나 산츠역으로

▲ 택시 트렁크에 짐이 다 실리지 않아 무릎에 유모차를 얹고 출발했다. 


예약한 렌터카를 인수하러 산츠 기차역(Sants Estacio)으로 향했다. 


산츠역은 대중교통으로도 갈 수 있지만. 아이 둘을 데리고 29인치 캐리어 2개와 유모차까지 끌고 가는 건 아무래도 무리였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호스텔 앞에서 제법 큰 밴 택시를 잡았다. 그런데 트렁크에 짐을 실어보니 유모차 들어갈 공간이 없었다. 택시기사와 스티브가 합심해 트렁크 테트리스를 했는데도 결국 모두 GG를 선언, 뒷자리에 앉은 나와 아이들의 무릎 위에 유모차를 올렸다.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우리가 예약한 차는 컴팩트급 오토매틱 소형차. 밴에도 실리지 않는 이 짐들을 과연 렌터카에 다 실을 수 있을까? 혹시 짐때문에 차를 업그레이드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업그레이드를 하면 추가 경비도 문제지만, 오토매틱 자동차가 흔치 않은 유럽에서 익숙치 않은 스틱 차량을 받게 될까봐 더 걱정이 되었다. 


▲ 한산한 바르셀로나 산츠역 풍경


▲ 하트모양의 초코 팔미에르는 반으로 잘라 주니 훌륭한 간식이 되었다. 스페인에서 페이스트리의 매력을 알아버린 아이들. 


출근시간이 지난 화요일 아침의 산츠역은 상쾌했다. 진아와 정균이도 다행히 제 컨디션을 찾은 듯 보였다. 스티브가 렌터카 오피스로 서류 작성을 하러 간 사이, 우리는 역내 카페에서 페이스트리와 커피를 나눠 먹으며 여행의 설렘을 즐겼다. 진한 커피 때문인지,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 바르셀로나 산츠역 옥상의 황량한 렌터카 주차장, 복잡한 아래층 오피스와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렌터카 오피스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예약을 했기에 차를 고르고 서류에 간단히 사인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창구 앞의 사람들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30분 쯤 지났을까? 다급하게 나를 찾는 스티브의 목소리에 뛰어가 보니 문제가 생겼단다.


앞으로의 19일 여행을 책임질, 렌터카를 소개합니다

▲ 이번 스페인 여행의 발이 되어준 7세대 골프 디젤. 연비, 토크, 안정감 등 동급 대비 만족도 최고의 차량이었다.


우리가 인터넷으로 예약한 렌터카는 컴팩트 클래스인 '골프 오토 디젤'이었다. 19일간 이 차를 빌릴 경우 '기본 보험'을 포함해 렌트비는 총 103만 원이었다. 그런데, 현지에 가보니 이 '기본 보험(자차, 도난)'이라는 것은 큰 사고시나 차량 도난시에만 보장이 된다고 했다. 일반적인 스크래치나 파손은 수퍼커버(사고시 완전면책) 보험을 들어야 커버가 가능하다고 했다. 문제는 비용! 수퍼커버에 해당하는 추가 금액이 무려 120만원에 달했다. 해외에서 렌터카를 몇 번 빌려보긴 했지만, 이렇게 장기 렌트를 한 적은 처음이라 차량비보다 비싼 보험료에 무척 당황했다. 


렌터카 여행을 하려면 렌트비 뿐 아니라 주유비, 주차비, 톨비 등 비용이 추가로 필요하다. 스페인 렌터카가 싸다고 해도 부대비용과 운전에 소모되는 노력 등을 따져보면 결코 저렴한 이동수단이 아니다. 특히 호텔 주차장까지도 유료로 이용해야 하는 스페인에서 렌터카 여행은 예상치 못한 더 많은 비용이 들 것이 분명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100만원이 넘는 추가 지출은 큰 부담이었다. 


"수퍼커버 보험을 꼭 들어야 하나요?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그렇게 하는지...?"

업체 직원에게 의견을 구했다.    


"드는 사람도 있고, 안드는 사람도 있어요."

무심하게 대답하는 직원. 뒤로는 많은 사람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심하면 되지. 혹시 가벼운 접촉사고가 난다고 해도 보험료보다 수리비가 적게 나올 것 같아. 

그 이상 큰 사고가 나면 기본 보험에서 커버해 주지 않을까?."


아이들이 있어 걱정됐지만, 스티브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보험은 보장이지 예방책은 아니라고 자위하며 기본 보험만 든 채로 차량을 인수했다. 



차량은 예약한 그대로, 폭스바겐 골프 디젤을 받았다. 해외 렌터카는 차량 크기(컴팩트)만 맞춰주고 브랜드, 차종은 동급 다른 차로 주는 경우가 많은데, 오토 차량이 드문 곳이라 그런지 인터넷에서 예약한 차종 그대로를 받을 수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출고한지 얼마 안되는 골프 7세대였다. 계기판을 확인하니 주행거리가 고작 3만 키로였다. 오~ 왠지 출발이 좋은데?


   

이제 복병인 짐을 실어야 할 차례. 아직 비닐도 제대로 뜯지 않은 새차에 무거운 캐리어를 이리저리 부딪혀 가며 짐을 실었다. 나란히 캐리어 두 개를 세워 넣으니 성공! 그러나 역시 유모차까지 실을 자리는 없었다. 고민 끝에 뒷자리에 앉은 아이들 사이에 유모차를 기대 놓기로 했다. 


좌충우돌, 발렌시아로 출발~!

▲ 첫 시동~! 내비게이션으로는 스마트폰에 구글 내비 베타서비스와 무료 내비게이션 앱을 깔아 이용했다. 한국에서 휴대폰 거치대와 충전 잭을 사갔더니 훌륭하게 장착할 수 있었다.


드디어 출발~! 출발 후 한동안은 당황했다. 에코 스탑 기능(정차하면 자동으로 시동이 꺼지고 엑셀레이터를 밟으면 다시 켜지는)을 처음 접한 스티브는 당황해 키를 다시 돌리기도 했다. 스페인 운전자들은 또 운전이 어찌나 터프한지. 그래도 그는 초긍정 마인드로 침착하게 운전을 해나갔다. 


▲ 바르셀로나 산츠역 근처의 까르푸, 다양한 하몽의 향연에 눈을 뗄 줄 모르는 스티브.


▲ 카시트와 샌드위치 재료, 과자, 세제 등 생필품을 한가득 실은 카트.


▲ 드디어 둘째군의 자리도 안전하게 꾸려졌다. 거북이 모양의 상표가 마음에 든다는 정균. ㅎㅎ


차를 인수한 우리가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은 마트였다. 아이의 카시트가 없었기 때문이다. 첫째의 부스터 시트는 의자부분만 떼어 가져왔지만, 둘째군이 앉을 곳이 없었다. 이대로 계속 달리는 것은 위험하기도 하고, 언제 교통위반 딱지를 끊을지 모르는 상황이어서 서둘렀다.



모든 세팅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길을 나서니 비가 흩뿌리기 시작했다. 다행이었다. 운전하는 사람은 좀 고생스럽겠지만, 이동하는 날에 비가 오는 건 여행의 행운이 아닐까? 내비게이션의 목적지를 '발렌시아'로 설정하고 이제 '가장 빠른 길'로 320Km(!)를 달리면 된다.


▲ 처음만난 톨게이트. 오토 vs. 매뉴얼. 선택은?!


▲ 친절하게 출구 안내가 되어있는 고속도로 티켓


고속도로로 접어드니 규정속도가 시속 120km였다. 차들이 좀 빨리 달리는 것 같아 130km 정도 밟아 봤으나 여전히 다른 차량이 우리를 추월했다. 이들은 대체 얼마나 빨리 달리고 있는 걸까?


▲ 20분 달리고 6.48유로는 너무 합니다..;


고속도로 사정은 아주 좋았다. 도로에는 차도 몇 대 없을 뿐더러 노면 상태나 표지판, 터널 연결도 잘 되어 있었다. 톨게이트 시스템도 우리와 아주 비슷했다. 가령 하이패스 전용 도로와 수동 수납 도로가 따로 구분되어 있는 것이나, 수납 카운터에서 통행료를 내는 방식이라던가.


그런데 전혀 다른 게 하나 있었다. 톨게이트가 너무 자주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고속도로를 탄 지 20분이 지나서 6.48유로의 요금이 나왔다. 우리 돈으로 1만원 정도이니 무척 비싼 편이었다. 다음에도 30분 간격으로 톨게이트가 하나씩 나타났다. 처음에는 당연한 듯 요금을 내던 스티브는 점점 얼굴이 굳어갔다. 결국 우리는 바르셀로나에서 출발해 240km를 달리는 2시간 동안, 30분 간격으로 톨비를 총 42유로(약 6만원)나 냈다. 렌터카를 처음 빌린 날, 정신 없는 틈에 벌어진 일이었다. 이렇게 매일 여행을 하다가는 톨비로 여행 경비를 다 써버릴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어마무시했다. 



다음 목적지까지 도착시간을 조회해 보니 국도와 고속도로가 1시간 정도 차이였다. 너무 돌아가지 않으면 다음부터는 그냥 국도로 달려야 겠다고 다짐했다. 다행히 스티브가 내비게이션에서 '무료 도로' 설정을 찾아냈다.  



톨비 때문에 속은 좀 쓰렸지만, 구불구불한 고속도로 왼쪽으로는 해변이, 오른 쪽으로는 끝없이 오렌지 밭이 펼쳐졌다. 오렌지 밭 너머로 보이는 마을 풍경도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100년은 족히 되어보이는 고성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다. 


▲ 엄마는 정균이 입만 봐도 무슨 과자를 먹었는지 알 수 있어! --; (정답: 오레오) 


유모차를 사이에 두고 불편할 법도 한데, 아이들은 예상보다 잘 적응했다. 뒷자리의 정균이는 과자를 벌써 두 봉지 째 해치웠다. 진아는 대견하게도 이제껏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노트에 끄적이며 시간을 보냈다. 남편은 렌트한 차량이 만족스러운지 연신 연비나 새로운 기능 등을 설명하며 신이 났다. 정신없이 출발하다보니 내 로망이었던 플라멩고 CD를 들으며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경험은 할 수 없었지만, 휴대폰에 담아 둔 악동 뮤지션의 음악을 가족 모두가 흥얼거리며 자동차 여행을 즐겼다.   


▲ AUTO GRILL이라는 휴게소 체인에는 놀이방 시설이 있어 좋았다. 스티브가 주문해준 바닐라 라떼에는 시럽이 한가득...;


운전 거리 320km, 발렌시아 외곽 도시에 도착하다


▲ 발렌시아 외곽 마을 풍경


그렇게 3시간 남짓을 달려 도착한 발렌시아의 외곽도시. 예상과 다르게 뭔가 범상치 않은 분위기가 풍겼다. 웬만큼 오래된 성당이나 성벽은 명함도 못 내밀 오래된 도시의 포스랄까? 가이드북에서 보던 현대적인 과학관이나 박물관을 예상했던 우리로서는 큰 충격이었다. 발렌시아는 그라나다로 가는 길에 하루 묵어가는 곳으로만 가볍게 생각했는데, 생각지도 않은 매력에 눈길을 뗄 수 없었다. 하지만 이미 숙소를 다 예약해 둔 터라 일정을 변경하기는 쉽지 않았다. 아쉽지만 내일은 더욱 긴 장거리 여행이 예정되어 있으니 일단 쉬는 걸로... 


빠예야의 본고장에서 저녁밥을 하고, 장조림 통조림을 뜯어야 하는 것은 좀 서글펐지만,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또 뜰 테니까. 아이들이 스페인 음식에 적응하는 즉시! 빠예야를 제대로 한번 먹어주겠다는 다짐을 하며, 또 하루를 마무리했다.


오늘 운전 거리는 320km,내일은 580km를 달려 그라나다로 향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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