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쇼핑백, 쇼핑의 로망

대학 시절 토론토 미술관에서 우연히 본 신디 셔먼 특별전. 미술사 책에서나 만나던 그녀의 사진을 직접 보고는 홀딱 반해 없는 유학생 살림에 가진 돈을 탈탈 털어 사진집을 샀던 기억이 난다. 주홍색 커버의 욕망에 찬 그녀는 결국 한국까지 쫓아와 내 졸업작품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프랑크푸르트 북페어 로고가 대문짝만 하게 찍힌 2유로짜리 보조 가방은 독일 출장길에 브로셔를 담는 용도로 샀다. 나일론 재질이라 가볍고 튼튼해 여행 갈때마다 애용하다가 요즘은 딸내미 기저귀 가방(^^)으로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다.

방콕의 짜뚜짝 시장에서는 보료를 사오는 사고를 쳤다. 그냥 보료가 아니라 커다란 삼각쿠션이 달린 삼단 보료를, 그것도 두 개나...ㅠㅠ 내 몸만큼 크고 무거운 보료를 이고 버스로, 지하철로 다닐 때는 대체 이 고생을 왜 하나 싶다가도, 여름밤 거실 바닥에 길게 깔아놓은 그것에 기대앉아 사랑하는 사람과 맥주 한잔을 걸칠 때면 어느덧 노을지는 해변 카페인 듯 아련한 추억이 되살아나기도 한다.

태국 꼬 따오의 해변 카페에서 바라본 일몰 (Photo by 스티뷰)

"쇼핑은 여행과 충돌하는 귀찮은 욕망이지만 여행의 주된 목적의 하나이기도 하다. 물건뿐 아니라 쇼핑의 과정 또한 여행을 풍요롭게 해준다. 여행지를 통째로 가져올 수 없는 마음은 그곳에서 산 물건으로 달래진다. 제각각 태어난 나라에서 내 가방을 타고 공수된 물건들은 내 삶에 알맞은 자리를 파고 들어와 안착한다. 그 매혹 때문에, 우리는 기꺼이 돈을 지불한다."
- <여행자의 로망백서> 발췌

여행지를 통째로 들고 오고 싶은 마음은, 그 곳에서 산 물건으로 달래지기 마련이다. 직접 가보지 못한 곳이라도 누군가의 선물로 받은 물건들을 보며 상상 속 여행을 하기도 한다. 그곳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물건들, 욕심부려 사온 나를 위한 선물, 여행하며 사들인 소소한 생필품, 여행 다녀온 친구로부터 받은 사연 있는 선물까지... 여행자의 쇼핑백에는 담긴 물건 이상의 추억과 마음이 있어 더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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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쇼핑백> 이라는 제목으로 기획 포스팅을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소재는 저와 제 주변인들이 여행길에 사들인 재밌는 물건과 그 속에 숨은 이야기들이 될 것 같고요. 글이 좀 모이면 '그곳에 가면 꼭 사야 할 물건?!'으로 정리해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만큼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ㅎㅎ 암튼 기대해 주세요~ 까짓거 소재 떨어지면 핑계 삼아 또 떠나죠 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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