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0년 전통의 초밥 도시락, 보우스시

2010.06.01 09:52 / 수상한 쇼핑백

야근 후 빈집에 들어와 홀로 끼니를 때우려던 어느 날 저녁, 가나자와로 온천여행을 다녀오신 부모님께서 깜짝 방문을 해 쇼핑백 하나를 놓고 가셨다. - 평소 일본 출장이 잦으신 부모님 덕에 난 어려서부터 일본 장난감을 접할 기회가 많았다. 더 이상 장난감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나이가 되자 부모님께서는 입이 즐거워지는 선물을 하나씩 사오기 시작하셨는데 요즘은 결혼한 딸내미를 위해 우메보시 같은 반찬거리를 사오곤 하신다.-
기대에 찬 눈빛으로 쇼핑백을 들여다보니 잘 포장된 도시락이 하나 보인다.

냄새를 맡아보니 시큼한 것이 김초밥 같기도 하고... 일단 포장을 풀어본다.

벗기고 벗겨도 끝없이 나오는 정성스러운 포장. 그 정성스러움 앞에 숙연한 기분마저 들었다.
나무껍질을 묶은 매듭을 풀고 속지를 벗겨내자 롤케익 같이 길쭉한 초밥의 자태가 드러났다. 초밥을 싸고 있는 죽순(?)을 걷어내니 하얀 광어살이 보이고, 그 속엔 배합 초로 양념 된 밥알들이 차지게 뭉쳐 있었다.

근데 이걸 일본에서부터 가져왔단 말인가? 비행기 타고 몇 시간을, 상온에서?


생선 초밥은 시간이 지나면 금세 상하게 되어 도시락으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 시큼한 냄새를 의심하며 안내서를 보니 신선함이 생명인 보통 초밥과는 달리 보우스시는 만들 때부터 오랜 시간을 숙성시켜 장시간 보관이 가능한 초밥이라고 한다. 가나자와에는 일본의 3대 시장 중 하나라는 '오미쵸 시장'이 있는데, 시장이 처음 생기던 280여 년 전부터 상인들의 도시락으로 사랑받던 초밥이 바로 이 보우스시이다. 

보우스시에 쓰이는 생선은 오미쵸 시장에서 공수한 싱싱한 생선으로 2시간 정도 소금절이를 했다가 30분 동안 깨끗한 물에 씻어 하룻밤을 재우고, 다음날 20분간 식초에 담갔다가 꺼내고서 다시 하룻밤을 숙성시켜 만든다. 밥은 배함초로 반죽해 나무틀에 채우고 누름쇠로 눌러 반나절 정도 지난 것을 쓴다. 재료의 특색을 살리기 위해 생선에 따라 다시마나 죽순, 나무껍질 등을 초밥위에 올리기도 하는데, 이런 것들이 숙성되는 과정에서 감칠맛을 더한다고 한다.

만드는 과정이 까다롭고 오래 걸려 숙성 초밥은 '만든다'는 표현보다는 오히려 '담근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초밥을 '담근다'라고 하기도 한다는데, 숙성초밥에서 유래한 표현이라고 한다. 이 지방 요리사들은 즉석 초밥을 마치 인스턴트 식품처럼 생각하기도 한다고.  

이제 오해를 풀고 보우스시를 시식해볼 시간. 동봉된 작은 칼을 이용해 한 입 크기로 잘라본다.

오랜 시간을 숙성시켜 만든 스시는 향만큼이나 그 맛과 풍미가 상당히 다르다. 갓 잡은 싱싱한 생선의 쫀득하고 깨끗한 맛도 좋지만 처음 맛보는 부드러운 숙성 초밥은 정성이 느껴지는 장아찌 같은 맛이랄까... 생선 고유의 맛은 상대적으로 덜하지만 잘 배합된 재료에서 우러나오는 깊은맛이 있었다. 

시기별로 제철 생선을 맛보면 좋을 것 같다.  아무리 숙성초밥이라도 여름엔 불에 구운 장어가 좋구나. ㅎㅎ 

이 정도의 포스라니 가나자와를 한번 가봐도 좋을 것 같다. 여행을 부르는 여행자의 선물. 맥주를 부르는고나~

[Tip]
* 보우스시 홈페이지: www.bouzushi.com
* 가나자와 관광청(한국어): http://www.kanazawa-tourism.com/korean/
  우리에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가나자와는 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역으로 풍부한 해산물로 유명하다. 
  이지역의 초밥과 가이세키 요리는 신선한 해산물이 듬뿍 들어가 있으면서도 가격이 착해 일본에서도
  손꼽힌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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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s 0 / Comments 16

  • Favicon of http://costrama.com costrama 2010.06.01 13:11 신고

    와~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께 일본 장난감을 선물.. <<- 너무 부럽사옵니다.
    그리고 보우스시보니 초밥먹고 싶어 지네요.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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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greendayslog.com 그린 데이 2010.06.02 02:34 신고

      일본문물과 친해질 수 있는 좋은 환경이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아쉽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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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shine.tistory.com 샘쟁이 2010.06.01 13:31 신고

    VJ특공대에서 보우스시에 대해 본 것 같아요. 어떤 맛일지 굉장히 궁금해지는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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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석현이엄마 2010.06.01 13:45 신고

    오~ 맛나겠다. 나도 먹어보고 싶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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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greendayslog.com 그린 데이 2010.06.02 02:36 신고

      ㅋㅋ 초밥 좋아하는 언니가 어련하겠소~ 조만간 회전 초밥집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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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steveyoo.tistory.com/ 스티뷰 2010.06.01 15:39 신고

    아 맛나던 광어 초밥이여~ 다시한번 먹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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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greendayslog.com 그린 데이 2010.06.02 02:37 신고

      거의 먹고 몇점 안남겨서 미안...;
      스티브는 회식중이었잖아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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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poem23.com 학주니 2010.06.01 16:58 신고

    맛있어 보이는데요..
    배고픈데.. 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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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greendayslog.com 그린 데이 2010.06.02 02:37 신고

      ㅎㅎ 그럴때였네요.
      근데 비위가 약하신 분들은 좀 안맞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시큼하거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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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Raycat.net Raycat 2010.06.01 20:19 신고

    초밥의 맛이 궁금해지는..;;;; 저녁 먹으러 가야 겠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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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hotsuda.com 일레드 2010.06.01 23:29 신고

    앗! 그린데이 님은 일본어도 잘 하시는 거예요? 일본어가 잔뜩 써있는 안내문을 다 해독(??)하시고^^ 어제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겠지'를 아침부터 밤까지 꼬박 읽었는데, 참 재미있더라고요. 때문에 다솔이를 돌볼 겨를이 없어서 자꾸자꾸 재우고 또 재우고^^ 책을 읽고나니까 일단 국내부터 좀 다녀야겠다는 결심이 섰고요, 터키를 세 돌 때갔으니 국내는 두 돌이면 되지 않을까? 하는 맘도 들었어요. 꼬맹이가 버스를 9시간 이상 타고, 보통일이 아니었겠다 싶다가도 막상 해 보면 별 것 아닐 것 같다는 충동질도 생기고...... . 아무튼 저에게 도전정신을 가득 심어준 아주 특별한 책이었답니다.

    그런데 책의 마지막 부분은 좀 우습지 않으셨어요? 연하남과의 로맨스^^ 왠지 좀 자랑하는 것 같기도 하면서 남편이 알면 다시는 여행 안 보내줄텐데 그 내용을 책으로 쓸 용기가 대단한 것 같기도 하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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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greendayslog.com 그린 데이 2010.06.02 03:21 신고

      설마... 해독은 어머님이 하셨죠. 일어 잘하시는 어머님덕에 전 늘 날로먹고 있습니다...;
      책이 잘 도착했나보네요. 바로 드리지 못해 죄송했어요. 그런데 본의아니게 제가 다솔군을 힘들게 하고 일레드님 가슴에 바람을 넣은것 같습니다. (앞으로 종범님을 피해다녀야 하나...;) 재밌게 읽으셨다니 다행.^^ 터키관련 에세이엔 러브스토리가 자주 등장하는 것 같아요. 여행이란 독특한 환경탓이라고 치부하기엔 왜 하필 터키에서만...? 이라는 의문이 남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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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sinnanjyou.tistory.com 신난제이유 2010.06.04 13:01 신고

    =_=저거 저거!!!!
    제가 일본와서 먹고 처음으로 이건 두번 다시 먹고 싶지 않구나! 라고 외쳤던,
    처음에 한 입에 넣고 나서 내가 왜 이런 미친짓을 한거지! 라고 외쳤던,
    결국엔 남은 녀석 죄다 버리고 말았던, 그 스시랑 같은 종류네요. =_=
    제가 먹은건 고등어였어요. 죽는 줄 알았어요. ㅎㅎ
    정말 누구나 다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아니지요. 꽤 고가임에도 ㅠㅠ

    저런 종류를 押しずし오시즈시라고 하고,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걸 握りずし니기리즈시라고 하지요.
    후자의 경우는 에도사람(도쿄쪽)들이 일하러 갈 때,
    지금의 햄버거처럼 패스트푸드로 간편하게 먹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인스턴트라는 소리를 한다고 생각해요. ㅎ

    어쨌든...전 저거 못 먹어요. ㅎㅎㅎ
    다음에 고등어도 드셔보세요. 고등어 대박이예요. =_=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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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avicon of http://daum.net 하-나만의 판타지 2011.08.25 18:27 신고

    맛있겠다~~!! 초밥왕에서 본 그 도시락 초밥이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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