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파도키아에서 울음을 터뜨리다.

2010.11.22 07:30 / 센티멘탈 여행기/터키 서부일주

터키여행 8일 차, 카파도키아에서만 4일째. 꼭두새벽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컴컴한 동굴 숙소를 나와 손으로 바람을 느껴보니 오늘도 열기구 타기는 틀린 것 같다. 

묵었던 동굴 숙소 내부. (도미토리)

계획대로 하자면 오늘 나는 페티예로 떠나고, 친구는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터키 일정 중 가장 기대됐던 벌룬투어를 하지 못했으니 갈등이 생긴다. 오전 비행기로 떠나야 하는 친구를 붙잡고 며칠 더 묵어갈 것을 권하며 한동안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 카이세리 공항으로 향하는 택시에 태워 보냈다.

숙소 앞에서 택시가 멀어지고 점이 될 때까지 한참을 바라봤다. 문득 세상에 홀로 내던져진 것 같은 기분. 참을 수 없는 상실감과 공허함이 느껴진다. 그제야 나 자신을 마주 본다. 회사를 그만두고, 떨어져 지내던 아이를 데려오고, 인생의 또 다른 부분을 채우려는 모든 계획은 오래전부터 고민하고 결정한 일이지만, 막상 현실로 다가오니 자신이 없다.

돌가루 섞인 찬 바람을 맞으며 한참을 걷다가 오랜 친구이자 아이 아빠인 스티브에게 전화를 한다. 로밍 폰이라 통화료 아낀다는 핑계로 통 연락을 하지 않았는데, 오랜만의 전화라서인지 더욱 반갑게 받아주는 그. 마침 주말이라 아이와 함께 있는 스티브는 이제 막 20개월이 된 아이에게 전화를 바꿔준다. 그리고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어린 딸의 목소리 '엄마-'
... 까닭모를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카이세리 공항 가는 길 (Photo by 신민경)

여행지에서 마주하는 현실은 참 싫다. 나를 돌아보고 자아를 찾아오겠다며 혼자 떠난 여행이지만, 타성에 빠진 삶에서 벗어나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내 모습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사실은 그냥 현실을 피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앞으로의 여행은 좀 더 솔직하게 나를 마주 보고 뜨겁게 안아주는 시간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10년만의 혼자 여행은 이렇게 뜬금없는 눈물로 시작되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Tags : , , , , , ,

Trackbacks 0 / Comments 19

  • Favicon of http://pennyway.net 페니웨이™ 2010.11.22 09:43 신고

    스타워즈의 그곳이로군요. 그린데이님 이렇게 여행다니시는 모습을 보니 보기 좋습니다.

    REPLY / EDIT

    • Favicon of http://greendayslog.com 그린 데이 2010.11.23 12:44 신고

      페니웨이님 오랜만이에요~! 종종 들러 글만 영화평만 훔쳐읽고 가곤 했는데, 나쁜짓 하다가 살짝 들킨 기분입니다. ^^;

      카파도키아는 페니웨이님 코드에도 잘 맞으실듯.

      EDIT

  • Favicon of http://redtop.tistory.com 더공 2010.11.22 11:43 신고

    처음 방문해서 상당히 많은 포스팅을 읽고 갑니다.
    다음 포스팅이 너무너무 기대되네요. ^^

    REPLY / EDIT

    • Favicon of http://greendayslog.com 그린 데이 2010.11.23 12:49 신고

      더공님. 감사합니다.
      아마 제가 기억하는 댓글중 최고의 찬사가 아닐까 싶습니다. 여행기가 점점 늘어지고 있는데, 힘내서 얼른 정리해봐야겠습니다.^^;

      EDIT

  • Favicon of http://blog.hscity.net 화사함 2010.11.22 13:26 신고

    자신의 진짜 모습과 마주하게 되는 것.. 그것이 여행의 묘미 아닐런지요.^^;;
    그래서 모두들 답답할 때면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어하나 봅니다.
    보람찬 여행 되시길..^^

    REPLY / EDIT

    • Favicon of http://greendayslog.com 그린 데이 2010.11.23 12:55 신고

      여행은 올봄에 다녀왔습니다. 정리를 하다 보니 현재시점이 되고 있네요...; 헛갈리게 해 드렸담 죄송요~
      모두 훌쩍 떠나고 싶다고 얘기는 하지만 진짜 떠날 수 있는 사람은 드물죠. 떠날 수 있는 환경이었던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

      EDIT

  • Favicon of http://costrama.com costrama 2010.11.22 14:48 신고

    그린데이님 안녕하세요~
    여행에서 한번도 혼자였던 적이 없어 그 기분을 느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짐작해봅니다..
    여행의 의미는 찾고 오셨나요?

    REPLY / EDIT

    • Favicon of http://greendayslog.com 그린 데이 2010.11.24 16:18 신고

      바람쟁이 코스트라마님. 오랜만에 블로그에 갔더니 또 여행을 떠나셨군요.~ 부러워요!

      혼자 여행에서 해답을 찾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충분히 돌아보고 고민하는 시간을 가질수 있었던것 같습니다. 치열한 삶 속에서는 하기 힘든 일이잖아요. 가끔 그런 공백이 필요한것 같습니다.

      EDIT

  • Favicon of http://Raycat.net Raycat 2010.11.22 21:58 신고

    전 맨날 혼자 다니다보니 이제 만성인듯 합니다.;;;;

    REPLY / EDIT

    • Favicon of http://greendayslog.com 그린 데이 2010.11.24 16:21 신고

      레이캣님에겐 웅이가 있잖아요. 이젠 웅이 말고 우렁각시를 하나 만들어 보세요~ ^^

      EDIT

  • 라이 2010.11.22 23:11 신고

    아..... 야밤에 이거 보며 정말 울컥하네요. 장하다 그린데이. 잘하고 있다 그린데이.

    REPLY / EDIT

    • Favicon of http://greendayslog.com 그린 데이 2010.11.24 16:22 신고

      라이님이 울컥하다고 하시니 저도 다시 울컥.
      언제나 마음가짐이 중요한것 같습니다. 엄마로서 강해져야죠.^^

      EDIT

  • Favicon of http://sinnanjyou.tistory.com 신난제이유 2010.11.23 10:15 신고

    저도 혼자서 여행하는걸 잘 못하는 편이예요.
    그래서 내년에 한국에 돌아가고 그 이후에 호주로 잠시 가 볼려고 하는게 대단한 도전이 될 듯 싶습니다.

    REPLY / EDIT

    • Favicon of http://greendayslog.com 그린 데이 2010.11.24 16:25 신고

      와우. 욕심많은 제이유님. 호주에 잠시라니! 공부하러 가시는거에요?
      일본에 사는거나, 한국에 다시 들어오겠다고 결정한것 모두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텐데. 참 대범하세요!

      EDIT

    • Favicon of http://sinnanjyou.tistory.com 신난제이유 2010.11.24 17:40 신고

      영어 늘고 오겠다는 생각은 안하고요..걍...포도따러. (응?)
      전 뭐..한 가지 목표가 세워지면 해보고 나서 후회하자라는 생각을 해서.. ㅎㅎ
      일단 마음은 그런데, 실제로 얼마나 가능하게 될지는 두고봐야 할꺼 같아요. 히힛.

      EDIT

    • Favicon of http://greendayslog.com 그린 데이 2010.11.29 00:27 신고

      아~ 워킹으로 가시는구나. 멋져요.
      젊어서만 할 수 있는 도전!! 따라가고 싶은 마음 굴뚝입니다. ㅎㅎ 10년만 젊었어도~~

      EDIT

  • Favicon of http://www.midorisweb.com 미돌 2010.11.27 11:14 신고

    그대의 결정을 이해하지만 진심으로 응원하지는 못했는데
    이런 갈등이 있었다는걸 미리 생각했더라면..
    그때 좀 더 따뜻하게 안아주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는군요.
    자신과 당당히 마주했다는것만으로도 당신은 정말 용기있는 여성이에요~

    REPLY / EDIT

    • Favicon of http://greendayslog.com 그린 데이 2010.11.29 00:41 신고

      터키 여행기는 여행중 기록해 놓은 노트를 보며 하나씩 정리하고 있는데요... 이런 포스팅은 밤에 써서 그런지 더 센치하게 느껴집니다. 낮에 보면 좀 민망하기도...;

      미도리님의 따뜻한 격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DIT

  • Favicon of http://sweetke.tistory.com/ 메이그린 2010.12.28 11:01 신고

    한번도 혼자 여행한 적이 없었는데 -
    이 글보니까 어딘지 모르게 찡해요 ^^
    한번 떠나보고 싶어지기도 하구요

    REPLY / EDIT

Copyright © 그린데이 All Rights Reserved
Designed by CMSFactory.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