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여권사진 찍다

665일, 말이 나날이 늘고 있다. 오래전 가르쳐준 단어를 하나씩 기억해내 엄마를 놀래키곤 하는데, 요즘엔 '나무'에 심취해 있다. 볕 좋은 날 손 잡고 밖에 나가면 고개를 젖히고 손가락질하며 '나무'를 말한다. 카시트에 앉아서도 차창 밖으로 스쳐가는 나무를 말한다. 베란다 한켠에서 자라는 나무를 말한다. 

살붙이고 산지 두 달째. 이제 눈높이가 좀 맞춰지는 것 같다.

며칠 전에는 집에서 여권 사진을 찍어줬다. 사진관까지 가기 번거롭기도 하고 어둡고 낯선 곳에서 고생만 할 것 같아 흰 벽을 배경으로 의자를 끌어 앉히고 양손에는 좋아하는 생일 인형을 쥐여줬다.

잠깐 신나하며 앉아있나 했더니 사진기를 들이대자 당황하며 뛰어내린다. 얼마 전만 해도 의자에 앉혀놓으면 쳐다만 볼 뿐 혼자 내려오지 못했는데 어느새 커버렸다. 도망가는 딸내미를 잡아와 앉히기를 여러 번. 이제는 아예 도구를 동원해 엄마를 놀려먹는다. 
 
한참 업된 아이를 다시 잡아 앉히고 몇 장의 사진을 찍고 나니 주변엔 먹다 남은 치즈에서부터 온갖 장난감에 고무장갑까지 그야말로 난장판.

그속에서 건진 규정에 맞는 한장의 사진. 까다로운 여권사진 아무나 찍는게 아닌 것 같다. 장난감으로 시선을 고정시키면 자연스럽게 입을 벌리고 웃고, 몇번 움직면 머리카락이 귀를 가리고, 아무리 똑바로 앉혀도 어깨를 나란히 맞추기 어렵다. 이것저것 신경 쓰다 보면 아이는 금세 지치고 사진사의 심기는 점점 불편해진다. ㅎㅎ
 
이제 포토샵으로 그림자를 지우고 규격에 맞게 인화해서 여권 만드는 일만 남았다.
첫 여행지는 어디가 되려나~
 
[Tip] 유아 여권 사진 규정
  • 가로3.5cm, 세로4.5cm인 6개월 이내에 촬영한 천연색 상반신 정면 사진
  • 머리 정수리에서 턱까지 얼굴 길이는 2.0~3.5cm
  • 유아 단독촬영되어야 하며 의자, 장난감, 보호자 등이 노출되면 안됨
  • 눈을 뜬 상태로 정면을 주시
  • 바탕색은 흰색
  • 양 어깨가 나란히 위치
  • 입은 자연스럽게 다문 상태
  • 귀부분이 노출되어 얼굴 윤곽이 뚜렷이 드러나야 함
  • ※ 참고: 외교통상부 http://www.0404.go.kr/passport/Passport10.jsp

    B컷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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