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맛집] 가을을 맛보다, 이자카야 시로구마
- 센티멘탈 여행기/한국 구석구석
- 2011. 10. 24. 16:10
이른 저녁이라 그런지 손님은 별로 없었고요, 주방에서는 싱싱한 횟감을 닷지에 올려놓고 재료 손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평범한 동네 이자카야의 분위기, 하지만 칼을 잡은 사장님의 포스는 왠지 범상치 않아 보였습니다. 알고 보니 이 분, 일본에서 8년간 일식을 배우고, 경주의 콩코드 호텔과 유명 일식집인 청와대 앞 소나무에서 주방장을 지낸 분이더군요.
미리 코스 요리를 예약해 둔 남편 덕에 자리에 앉자마자 음식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간단한 샐러드와 무조림으로 입을 개운하게 하고, 계절 메뉴인 단호박 밤 조림을 즐겼습니다. 이자카야가 좋은 이유 중 하나는 계절에 따라 바뀌는 다양한 요리를 맛볼 수 있기 때문이죠. 별다른 양념 없이 단호박에 밤, 건포도, 대추, 호두 등을 듬뿍 올려 쪄냈는데 입안 가득 향긋하게 가을 향이 퍼집니다.
이어서 생선회와 초밥이 올라왔는데요. 도미와 광어, 제철 방어 등을 두툼하게 썰어냈더군요. 선도와 양 모두 괜찮습니다. 당근으로 모양을 낸 나비며 물들인 일식 장아찌, 찬바람에 붉게 물들어가는 남천 잎까지... 아! 가을이군요.
접시 뒤편엔 윤기 흐르는 초밥이 몇 점 놓여 있네요.
강판에 갈아낸 굵은 입자가 그대로 씹히는 생 와사비, 조금 떼서 올린 후 간장 없이 회 본연의 맛을 느껴봅니다.
기름기 많은 방어는 무순과 함께~! 회 한 점 한 점이 입에 착착 감기네요.
회 접시가 바닥을 드러낼 즈음 등푸른생선 시리즈가 등장했습니다. 위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고등어, 아지(전갱이), 청어회입니다. 등푸른생선은 특히 선도가 중요한데요,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비린내가 심해 조심해서 먹어야 하는 음식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일단 맛을 들이면 특유의 고소한 맛에 자꾸만 찾게 되죠. 제철을 맞아 더욱 기름기가 잘잘~ 흐르는 생선. 아지와 청어는 쉽게 구할 수 없는 횟감이기에 더 맛이 좋습니다.
등푸른생선회는 이렇게 다진 생강과 쪽파를 곁들여 먹으면 잡내가 없다죠~
해삼 내장으로 만든 일본식 젓갈인 고노와다에 우니(성게 알)를 넣은 요리. 달달한 우니와 짭쪼름한 고노와다의 조화가 술안주로 그만이네요.
뒤이어 나온 전복, 멍게, 우니, 굴.
바다의 맛과 향, 그리고 가을이 느껴지시나요?
마무리는 도미 머리와 시사모, 메로 구이로 합니다. 튀김을 먼저 먹었기에 코스요리는 여기서 끝인데요. 아이의 먹거리를 걱정하신 주방장께서 특별히 오뎅탕을 서비스로 주셨습니다. 메뉴에 없는 서비스 오뎅탕이지만 여러 종류의 오뎅에 삶은 달걀까지 푸짐하게 넣어 맛도, 양도 제대로였어요. 덕분에 회를 좋아하지 않는 아이도 튀김과 구이, 오뎅까지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답니다.
시로구마는 아담한 규모의 소박한 이자카야입니다. 올 6월에 오픈했는데, 이미 맛집으로 소문났는지 저녁때가 되니 빈 테이블이 없을 정도로 북적이더군요. 방은 없고요, 테이블 예닐곱 개와 닷지 일곱 석이 전부입니다. 가까운 지인들과의 회식이라면 계절을 느낄 수 있는 메뉴와 음식의 맛, 합리적인 가격 등을 고려해 한번 들를만한 곳입니다. 저희가 먹은 메뉴는 인당 35,000원 코스였고요, 코스 요리는 인당 25,000원 부터 시작한다고 합니다. 생선회나 복 요리 같은 1~2만원 대의 다양한 단품 요리도 있으니 깊어가는 가을 밤, 퇴근길에 간단하게 사케 한잔 하러 들러보셔도 좋을 것 같네요.
전화번호: 02-322-5551
위치: 2호선 홍대입구역 2번 출구, 연남동 기사식당 먹자거리
(찾기가 좀 어렵습니다. 만두로 유명한 중식당 '향미' 옆에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