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의 첫 하루
- 센티멘탈 여행기/한 달쯤, 스페인
- 2014. 7. 7. 14:54
바르셀로나에서의 첫 아침이 밝았다. 아니, 우리가 아침을 밝혔다고 하는 게 맞는 표현일 듯.
스페인 시차에 적응하지 못한 아이들과 함께 침대를 뒹굴다가 새벽 5시쯤 그냥 일어나기로 했다.
▲ 바르셀로나에서의 첫 아침, 숙소를 나서며
아이들을 씻기고, 대충 짐 정리를 한 후 숙소를 나선 것이 7시쯤.
▲ 처음 맛본 스페인식 아침. 크로아상에 대한 진아의 평가는 '엄마가 구워준 것이 더 맛있어.'였다. 흐흣.
둘째군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 유모차에 태우고, 오늘은 한달 여행의 워밍업으로 숙소 근처만 간단하게 돌아보기로 했다.
도시 전체가 거대한 예술품, 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는 도시 전체가 100년은 족히 넘어보이는 건축물로 뒤덮인 이른바 명품도시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건축가 가우디가 디자인한 건물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고, 보도블럭에서부터 가로등, 벤치까지 그의 손때가 묻지 않은 곳이 없다.
▲ 가우디가 디자인한 공공벤치
그의 디자인은 무척 이색적이어서 눈에 띄었다. 자연을 모티브로 했지만, 도심 한가운데 있어서 오히려 빛을 발했다. 가우디 작품 말고도 19세기말, 20세기 초에 지어진 모더니즘 건물들이 도처에 서 있어 도시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만들었다. 우리는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도 된냥 도시 곳곳을 신기해 하며 걸었다.
▲ 바르셀로나 거리에서는 흔하게 공공미술을 만날 수 있었다.
▲ 역사를 만날 수 있었던 작은 식수대. 진아는 손으로 만져보고, 직접 물을 마셔보고 다시 씩씩하게 길을 걸었다.
거리 곳곳에서 만나는 100년 문화유산
▲ 카사 밀라
아쉽게도 숙소 가까이에 있어 가장 먼저 가보려고 했던 가우디의 카사 밀라(Casa Mila)는 공사중이었다.
까사밀라의 상징인 물결무늬 외벽은 천에 가려져 전혀 볼 수 없었고, 그저 그림만으로 외형을 추측해야만 했다.
내부 관람은 가능했지만, 유모차를 들고 올라 갈 수는 없다고 했다.
안내 데스크에서 맡아준다고는 했으나 마침 둘째군이 자고있어서 다음 기회를 기약해야만 했다.
그래도 바르셀로나 첫날인데, 가우디를 한번 만나봐야하지 않겠냐는 마음에 사그라다 파밀리아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10분쯤 걸었을까? 갑자기 진아의 눈이 반짝였다. 시선 끝에는 놀이터가 있었다.
▲ 카사 마카야
잠시 아이를 놀리고 주변 풍경을 구경하다보니 심상치 않은 건물이 눈에 띄었다. 구글 맵을 찾아보니 이 건물은 1901년에 지어진 '까사 마카야(Casa Macaya). 피카소가 자주 드나들던 카페 '콰트로 가츠(4 Gats)'가 들어있는 카사 마르티(1896)와 함께 바르셀로나의 유명한 건축가인 '호셉 푸이그'가 설계한 건축물이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첫 만남
카사 밀라를 지나, 카사 마카야를 지나 여러 근대 건축가들의 작품을 지나 모퉁이를 도니 두둥~! 저것은?
▲ 사그라다 파밀리아
바로 사그라다 파밀리아 (Sagrada Familia, 성 가족교회)였다. 표준렌즈로는 감히 담을 수 없는 위용, 직접 보니 기괴하기까지 한 신비로움이 느껴지는 성당. 분명 모더니즘 건축물이었지만, 서양미술사 시간에 배운 모더니즘과는 거리가 느껴지는 아주 화려하고 장식적인 아름다움이 있는 건축물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길 건너편 공원에서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도 그 틈에 자리를 잡고 보다가 건물을 천천히 한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옥수수를 닮은 첨탑, 나뭇잎이 피어나는 듯한 장식, 곳곳에 숨은 이야기와 상징들. 1882년에 공사를 시작해 아직도 현재 진행형으로 지어지고 있는 이 건축물은 외관을 돌아보는 데만 해도 몇 시간이 걸렸다.
▲ 사그라다 파밀리아 앞에 있던 FC 바르셀로나 오피셜 매장, 공식 유니폼부터 갓난아기의 턱받이까지 다양한 기념품이 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세계적인 관광지이자 바르셀로나 최고의 명소이니 자연스럽게 기념품샵과 관광객 대상 음식점이 모여있다. 가우디나 각종 가우디 건축물을 소개한 책자, 그리고 FC 바르셀로나의 공식 매장도 이곳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이날 저녁에는 마침 FC 바르셀로나의 프리메라리가 경기가 있어서 유니폼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이 많았다. 우리도 아이들 티셔츠를 하나씩 샀다.
▲ 사그라다 파밀리아 책을 찾아 그림을 보는 진아. 영어, 불어, 일어도 있는데 왜 한국어는 없냐고 뾰루퉁 해졌다.
생각보다 안전해 보이는 스페인 지하철
▲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있는 사그라다파밀리아 역
진아가 힘들어해서 숙소로 돌아갈 때는 지하철을 타기로 했다. 스페인 여행을 떠나기 전, 소매치기가 많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 내심 걱정이 됐다. 그래서 크로스백은 가능한 앞으로 향하게 매고, 지갑은 무조건 가방 깊숙한 곳에 넣었다. 지하철 문 닫히기 직전에 휴대폰을 낚아 채인 사람도 있다는 소문에 지하도로 들어서는 순간부터는 더욱 주의했다. 그러나 직접 길을 걷고, 지하철을 타보니 여기도 다 사람 사는 곳이었다. 긴장을 놓으면 안되겠지만, 너무 오버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 지하철에서 만난 거리의 악사와 진아
서울의 지하철과 다른 점이 있다면, 지하도나 심지어 지하철에서도 거리의 악사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 정도일까?
▲ 진아가 가져온 놀이판, 정균이는 주사위를 자꾸만 입으로 던졌다...;
저녁을 먹기 전까지 잠시 숙소에 들어와 휴식을 취했다. 돌아다니는 내내 잠만자던 정균이가 일어나 함께 꿀밤내기 주사위 놀이도 했다.
▲ 마드리드 팀을 응원하던 것이 분명했던 두 신사, 차마 표현하지 못하고 바르셀로나 팀이 골을 넣을 때마다 끙끙대는 모습에 웃음이 났다.
그날 저녁, 축구는 함께 봐야 제맛이라는 스티브의 주장에 캄프누에는 가지 못하니 스포츠 바를 찾아 나섰다.
▲ 과일이 듬뿍 들어간 샹그리아와 깔라마리, 앤초비, 판콘 데 토마테 타파스
다행히 숙소 근처에서 축구 중계를 해주는 깔끔한 타파스집을 찾아냈고, 스티브는 바르셀로나 사람들과 함께 응원하고 아쉬워하며, 나는 샹그리아와 깔라마리의 조화를 음미하며 바르셀로나에서의 첫 하루를 마감했다. 야심차게 바르샤 티를 입고 나선 아이들은 레스토랑에 도착하기도 전에 골아떨어졌다. 다행히 긴 의자가 있는 곳이어서 내가 앉은 뒤로 진아도 길게 눕힐 수 있었다.
딱히 한 것은 없지만, 막연하게 동경하던 스페인, 사그라다 파밀리아와 한걸음 가까워질 수 있었던 바르셀로나에서의 첫 하루.
스페인의 첫 인상은 상상보다 훨씬 아름다웠고, 생각만큼 위험하지 않았으며, 다른 유럽에 비해 왠지 친숙한, 그런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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