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찔했던 순간, 터키탕을 경험하다.

80년대 퇴폐 문화의 산실로 우리나라에서 이름을 날리던 터키탕. 터키에는 터키탕이 있을까?

터키에는 '하맘(HAMAM)'이라고 부르는 터키탕이 있다. 그러나 괜한 기대(^^)를 한다면 좀 실망할 수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야한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다 보수적인 이슬람 국가인 터키가 그런 음흉한 이미지를 갖게 됐는지 몰라도 원래 터키탕은 오래전 로마에서 유래한 건전한 목욕탕이다.

터키식 목욕탕 하맘(HAMAM)

터키탕은 어떤 곳일까?
터키탕은 내부가 대리석 벽돌로 지어진 공동 목욕탕이다. 내부에는 넓은 탈의실과 휴게공간을 갖추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대중목욕탕과는 좀 다른 느낌이다. 

어떤 점이 다를까?
우선, 목욕탕에 물이 없다. 사방이 온통 뜨끈하게 덥혀진 건조한 대리석이다. 먼저 대리석에서 뿜어내는 열기로 땀을 내고서 때를 밀고 수도꼭지를 틀어 나오는 물을 받아 씻어내는 것이 터키에서 목욕하는 방식. 찜질방과 오히려 닮아있다.

또, 터키탕에서는 옷을 홀딱 벗지 않는다. 서두에도 언급했지만 터키는 보수적인 이슬람 국가인지라 동성 간에도 신체의 중요부위는 노출하지 않는 것이 관례. 터키탕에 갈 때는 샴푸, 비누, 로션 외에 수영복을 챙겨가야 한다. 깜빡잊고 수영복을 챙기지 않았다면 짖은 색 속옷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마지막으로, 남녀가 함께 목욕할 수 있다?! 보통은 남탕, 여탕이 구분되어 있지만 규모가 작은 곳에서는 시간대를 나누어 오전엔 남자가, 오후엔 여자가 사용을 하기도 한다. 또 이스탄불이나 카파도키아 같은 주요 관광지에서는 함께 목욕을 하기도 한다. 어차피 수영복 입고 들어가는 곳이니 이상할 것도 없다. 

'진지하맘'에서의 아찔한 경험
진지하맘(Cinci Hamam, Since 1645)

사프란볼루의 진지하맘은 17세기에 지어진 유서깊은 목욕탕이다. 리노베이션을 위해 잠시 문을 닫았다가 2009년 가을부터 재오픈해 다시 공동 목욕탕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남탕 여탕이 구분된 제법 큰 목욕탕이다. 터키에는 동네마다 몇백 년 묵은 터키탕이 즐비하지만 왠지 역사가 살아숨쉬는 샤프란볼루의 하맘에서는 몇십년간 묵은 삶의 때까지도 가볍게 씻어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맘에 가기 전 론리플래닛을 들춰보니 목욕하는 법에 대한 설명이 한바닥이다. 터키의 목욕탕이 궁금하긴 했지만 한국 목욕탕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처음 공동 탕에 가는 외국인들은 심란할 것도 같다.

나름 자신감 넘치는 발걸음으로 도착한 하맘. 힘차게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관리인이 뛰어나온다. 
"Bath?" 
...; 뭐야. 그럼 목욕하러 왔지... 밥 먹으러 왔겠어. 한번 째려보고는 다시 들어가려는데 황급히 막아서며 손짓을 한다.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 그제야 눈에 들어오는 허리춤에 수건을 두른 아저씨 두 분...; 터키의 목욕탕은 매표소가 없고 바로 탈의실로 연결된다. 우리가 들어선 곳은 남자 탈의실이었던 것 ㅠㅠ

진지하맘의 탈의실 풍경

그나마 다행인 건 탈의실은 개인공간이어서 우린 탈의를 마친(?) 분들을 만났던 것 같다. 여하튼 여자 목욕탕 탈의실은 이런 분위기다. 중앙 큰 홀을 중심으로 주변에 개인 공간이 있는 형태. 2층 구조로 되어 있다. 중앙에 모여앉아 TV를 보며 담소도 나누고 냉장고에서 음료도 사먹을 수 있다.

실전~! 터키탕 들어가기.
우여곡절 끝에 들어선 터키탕. 겉에서 상상하던 것과는 다른 웅장한 대리석 장식에 압도되어 세시간 여를 머물렀던 것 같다.
터키탕을 이용하는 순서는 아래와 같다.

① 입구에서 원하는 서비스를 고른다. 30TL(약 24,000 원)이면 필링과 전신 마사지를 받을 수 있다.
② 키를 받아 개인 탈의실에서 수영복으로 탈의. 준비해온 샴푸 등을 챙겨 샤워실로 이동한다.
③ 물을 끼얹고 사우나 실에서 10분 정도 몸을 불리면 때밀이 아주머니께서 부른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어디서나 때밀이 아주머니의 카리스마는 짱~!)
④ 중앙 홀에 있는 널찍한 대리석 평상에 천을 깔고 누우면 터키식 때밀이 타월로 작업을 시작한다. 대리석
    은 적당히 따끈해 잠이 솔솔 온다.
⑤ 간단한 샤워 후에 터키식 거품 마사지가 이어진다. 기다란 망사주머니로 비누거품을 만들어내더니 그
    거품으로 온몸을 덮고는 전신 마사지를 한다. 오~그 시원함이란! 특히 무거운 배낭에 뭉친 목과 어깨 마
    사지는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다. 
⑥ 일으켜 세우고 나서 양동이로 두세 차례 물을 끼얹는 것으로 마무리. 개인적으로 샴푸하고 나오면 된다.

우리가 하맘에 갔을 때는 마침 터키인들만 있었는데, 그들은 처음 보는 동양애들의 벗은(?) 몸이 신기했는지, 우리가 마사지를 받는 내내 계속 왔다갔다 하며 상태를 살폈다. ㅠㅠ 조금 불편하게 느껴질 즈음 그중 한 명이 사과 몇 개를 나눠준다. 주변을 훑어보니 비키니를 입은 여인과 애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과일을 깎아 먹으며 이야기하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도 찜질방처럼 먹는 문화가 있구나... 모습만 유럽이지, 삶의 방식이나 생각하는 것들이 우리와 많이 닮았다. 때를 미는 민족이 또 어디있단 말인가... 나눠 먹는 인심까지도 닮았다. 처음 맛보는 터키의  사과. 목욕 후라 그런지 참 달고 시원했다. 

[Tip] 진지하맘 (Tarihi Cinci Hamami - Historical Cinci Bath)
http://tarihicincihamam.com/ - 홈페이지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효과음이 예사롭지 않다.ㅋ
Open Hour: 남자 6:00~23:00 / 여자 9:00~22:00
Tel: 0370-712-21-03

※ 진지하맘 외관 외의 모든 목욕탕 사진은 촬영이 불가해(^^;) 진지하맘 홈페이지에서 빌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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