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라기엔 너무 신비한, 카파도키아에 가다

터키로의 여행을 결정했을때, 가장 기대했던 것은 바위기둥과 동굴집으로 유명한 카파도키아였다. 도저히 현실이라고 믿기지 않는 기이한 자연환경, 그 속으로 숨어든 1만여 크리스찬의 은신처. 깊숙이 파들어간 굴에서 한줄기 빛도 보지 못한채 생활했지만 그들은 그 모든것을 견디며 종교를 지켜냈다. 카파도키아에서 내가 보고 싶어한 것은 이 믿기지 않는 사진속 이야기였고, 그 속에서 자유롭게 부유하는 나 자신이었다.

괴레메 숙소에서 바라본 풍경

다음날 아침. 동굴 숙소를 나와 풍경을 보며 카파도키아에 있음을 실감했다. 카파도키아는 페르시아어로 '사랑이 충만한 땅'이라는 뜻이라는데 주변을 둘러보니 사랑의 땅이라기엔 좀 황량한 느낌.

그린투어를 떠나기전, 미니버스와 가이드

바람이 세고 날씨가 좋지 않아 열기구는 다음날로 미루고 일일 투어 하나를 하기로 했다. 카파도키아의 여행사에는 공통적으로 세가지 종류의 트래킹 투어가 있다. 거리가 멀고 교통편이 좋지 않아 개별여행이 어려운 지역들만 묶어놓은 그린투어와 인근 유명 관광지를 도는 레드투어, 로즈밸리를 하이킹하는 로즈밸리 투어. 다른 코스는 다음날 튼튼한 두 다리를 이용해 천천히 돌아보기로 하고, 피죤밸리-데린쿠유-으흐랄라 밸리-셀리매를 들르는 그린투어를 떠나기로 했다.

셀리메 수도원(Selime Katedrali)

첫 방문지는 영화 스타워즈의 배경이 된 셀리메 수도원. 박해를 피해 도망온 기독교인들이 3~4층높이의 바위에 구멍을 내서 생활을 하던 곳으로 좁은 통로를 따라 동굴로 들어가면 넓은 생활공간이 나온다. 실제로 카파도키아 일대에는 교회와 수도원이 360개 정도 발견됐다고 한다. 보통 1층은 가축을 키우는 공간으로, 2층은 공동 취사대와 예배당, 비둘기 집으로, 3층은 무덤으로 만들어져 있다. 사암지형이라 침식작용이 활발해 입구가 저렇게 훤히 드러나버렸지만 오래전에는 아주 작은 입구만이 밖에서 보였다고 한다. 갖힌 공간에 가축과 사람과 무덤이 공존했다니... 그 어둠과 소음, 냄새가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는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셀리메 마을과 테이블 마운틴

스타워즈의 한장면을 연상시키는 바위들. 

 
악사라이 지역 남서쪽으로 이동해 으흐랄라 밸리에 도착했다. 이 계곡은 깎아지른듯한 주변의 풍경이 장관인 곳으로 물길을 끼고 걷는 코스다. 여름엔 계곡이 온통 초록으로 물들어 더욱 멋지다고 한다. 중간에 계곡이 강으로 넓어지는 곳이 있는데, 수영도 가능하다고.

각자 자유여행을 온 일본인 일곱명과 우리 둘, 나란히 골짜기를 걷는다.

물길을 따라 1시간여를 걷다보니 하늘이 갠다. 여행중의 트래킹은 그 지역만의 특이한 자연경관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어 더 즐거운 듯. 고즈넉한 주변의 정취를 마음껏 느낀다.

이곳에서는 나무마저도 예사롭지 않다. 빗자루처럼 제멋대로 뻗은 가지를 가진 멋진 나무들.
침식과 풍화가 빠르게 진행중인 절벽 사이로 군데군데 수도자들이 숨어들었던 흔적들이 보인다.

(photo by 신민경)

험난한 계곡길을 한시간 정도 걸어 정말 허기질때, 이런곳에 식당이? 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황량한 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스프와 빵, 간단한 케밥이 전부였지만, 시장을 반찬삼아 그럭저럭 먹었다. 그런데!!!

한쪽 구석에서 식사를 하던 터키시 스탭 한명이 나를 아는척 한다.
"나 어디서 봤는지 기억나니?"
"......."

사프란볼루에서 카파도키아로 이동하던날, 우리는 숙소가 있는 괴레메까지 가기 위해 네브쉐히르라는 곳에서 버스를 갈아타야 했다. 그때 시각이 아마 저녁 8시쯤. 잠에서 덜깬 몽롱한 상태로 이미 어두워진 네브쉐히르 오토가르에서 서비스 버스를 찾아 헤매는데 한 남자가 서비스 버스가 저쪽에 있다며 다가왔다. 버스회사에서 나왔냐고 물었더니 터미널에 있는 사무실로 가자며 대충 얼버무리는게 뭔가 수상하다. 재차 물었더니 그제서야  여행사에서 나왔음을 밝힌다. 이런... 이남자랑 더 실랑이하다가는 버스를 놓칠 것 같아 신경질적으로 뿌리치고 버스 운전사에게 위치를 묻고 있는데 뒤에서 무섭게 따라붙는다. 왜 자기를 못믿냐며...

바로 이분 되시겠다. 투어 기사로 다시 만난 여행사의 그 분. 나중에 알고보니 락타운 여행사는 인터넷에서도 아주 유명했다. 투어 설명을 듣고 신청을 하지 않을 경우 여행자를 바로 네브쉐히르 길바닥에 버리는 것으로...
(관련 글 - 조심! 또 조심! 네브세히르 여행사!)

찜찜한 마음을 뒤로하고 찾은 곳은 데린쿠유(Derinkuyu). 박해의 참혹한 실상을 확인할 수 있는 곳으로 성지순례코스로도 유명한 지하도시다.

지하 20층 높이의 이 곳은 허리를 숙여야 간신히 통과할 수 있는 좁은 통로로 연결되어 있다. 어둠속에서 미로처럼 구불구불 이어진 길을 가이드 없이 돌아다녔다가는 길을 잃기 쉽상. 감상에 젖어 이곳저곳 살펴보다가는 막다른 길에 다다르기도 한다. 일반인에게는 안전상 지하7~8층까지만 관람이 허용되어 있는데, 이 거대한 지하세계에는 교회와 학교, 우물과 포도주를 만들고 저장하는 공간까지 없는 것이 없다.  

미사를 보고, 학생을 가르치기도 했던 장소. 아치형 지붕과 긴 의자 형태의 바닥이 인상적이다. 

기독교 박해는 서기 1세기 로마제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네로 황제가 64년 로마 대화재 사건 범인으로 기독교인을 지목해 예루살렘 박해가 시작됐고. 예수의 제자와 신자들은 인근 시리아와 터키로 흩어졌다. 카파도키아로 숨어든 크리스찬들은 여기서 100여년을 숨어 살았다.

window라는 안내판이 있어 위를 올려다봤더니 100m는 족히 되보이는 높이에 빛이 들어오는 손바닥만한 구멍이 보인다.

이곳에 유일하게 없는 것이 있는데, 바로 화장실이다. 밀폐된 공간에 화장실이 있을 경우 암모니아로 인해 폭발 가능성이 있기 때문. 하루 한끼만 먹고 화장실도 없는 갇힌 공간에 생활했을 그들을 생각하니 탄성이 절로 나온다. 종교의 힘이란...

컴컴한 지하세계 탐방을 마치고 밖에 나오니 허름한 가판대 위에 아기자기한 기념품들이 보였다. 스쳐 지났는데, 지금보니 하나 사올껄 그랬다는 생각이 든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보석점에 들러 간단히 쇼핑을 시킨 후 버스는 우리를 괴레메에 내려줬다. 돌이켜보니 여행사의 투어는 가격대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매몰차게 뿌리친 사람을 다시 만나는건 그닥 기분좋은 일은 아니다. 물론 그가 터키음식인 '두슈'를 소개해 주는 등 친절을 베풀긴 했지만 다른 투어를 권유(거의 강요)하는 통에 부담스러운 하루를 보냈다. 카파도키아 관련 질문에 대한 답변은 언제나 '레드투어를 하면 다 볼 수 있다'였으니...

비에 젖은 괴레메 마을을 돌며 이래선 내일도 열기구가 뜰 수 없을꺼란 절망감에 휩싸였다. 비가와도 바람만 안불면 뜰 수 있다는데, 비오는데 바람불지 않는 날씨가 어디 흔하던가... ㅠㅠ

(photo by 신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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