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단풍 절정의 내설악을 거닐다
- 센티멘탈 여행기/한국 구석구석
- 2011. 11. 9. 17:00
가을 하면 단풍, 단풍 하면 설악산. 해마다 설악산에서 시작된 단풍은 서서히 남쪽으로 옮아 붙으며 만산홍엽을 이룬다. 대청봉에서 시작된 단풍은 보통 10월 말에 절정을 이루는데, 올해는 조금 이른 20일경이 절정기였다. 아쉽게도 올 단풍은 극심한 가을 가뭄으로 빛깔이 예년만 못하고, 오락가락하는 날씨 탓에 산사는 이미 낙엽 진 초겨울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하지만 혹시 남은 가을 풍경이라도 볼 수 있을까 싶어 10월의 마지막 날, 가족은 설악산으로 향했다.
내설악 단풍길의 시작, 설악산 소공원
설악산은 크게 외설악과 내설악으로 나뉜다. 정상에서 봤을 때 바다를 향한 속초 쪽이 외설악, 내륙을 향한 인제 쪽이 내설악. 언제 어디를 찾아도 멋지지만 늦가을에는 조금이라도 따뜻해 단풍이 더디 드는 내설악이 좋다. 소공원-신흥사-흔들바위-울산바위 코스는 경치가 좋고 특히 초보 등산객들도 쉽게 오를 수 있는 완만한 산길이라 많은 가족단위 관광객들이 찾는다고. 출산을 한 달여 앞둔 나와 4살 아이가 함께인 우린 가족은 등산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기에 소공원과 신흥사만 간단히 둘러보기로 했다.
'와~!'
주차장에 차를 댈 때만 해도 이렇지 않았는데, 소공원에 들어서니 바깥세상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절정의 단풍을 자랑하는 잘 정돈된 공원의 모습, 그리고 말 그대로 '병풍처럼' 둘러진 아름다운 산새를 보니 탄성이 절로 난다. 설악산 소공원에는 여러 품종의 나무들이 있어 오색의 단풍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산에 오르지 않고 자리에서 한바퀴 돌아보기만 해도 가을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이렇게 멋진 곳이 있었다니...
사진사의 시선 끝에 맺힌 풍경들. 서울에서는 보기 드문 맑고 깨끗한 붉은 색에 반해 나도 몇 컷 담아봤다.
10분 만에 산 정상에 오르는 법! 설악케이블카
그래도 설악산에 왔는데, 산에 한번 올라봐야 하지 않겠나? 욕심이 난다. 자주 올 수 없는 곳이라 더욱 그렇다. 설악산에는 다행히 케이블카가 있어 등산이 힘든 아이나 노약자도 손쉽게 권금성 정상까지 오를 수 있다.
요금은 대인 9,000원(중학생 이상), 소인 6,000원(37개월~초등생).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5분 간격으로 운행하며 1대당 50명 정원으로 사람들을 태워 나른다. 설악의 관광명소로도 소문난 설악 케이블카는 단풍시즌에는 워낙 인기가 좋아 평일에도 평균 1~2시간은 기다려야 한단다. 월요일 오전임에도 북적이는 매표소... 대기시간 1시간을 확인하고는 줄을 섰는데, 큼지막하게 써 놓은 알림판이 눈에 들어온다. '강풍시 도보로 내려오는 경우 안전사고에 대하여 당사는 책임을 질 수 없으므로 노약자, 임산부는 탑승을 금합니다.'
아쉬운 마음에 매표소 3층의 전망대에 올랐다. 시원하게 펼쳐진 설악산의 전경과 케이블카~ 비록 직접 타지는 못했지만 가까이서 보니 한층 실감 나는 풍경이다. 하지만 보기만 하는 것이 못마땅한 아이는 잔뜩 심통이 났다. 다행히 모형 케이블카가 있어 잠시 타보며 다음을 기약했다는.
오솔길 따라 가을 정취 물씬, 신흥사
소공원에서 신흥사로 이어지는 길, 산세가 완만하고 걷기에 부담이 덜해 찾는 사람이 많다. 임산부에게도 산길을 걸으며 설악의 가을 정취를 느끼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신흥사는 내설악 등산코스 중 들르는 첫 번째 코스로도 유명하다. 조금만 올라가면 통일대불이 나오고 계곡의 다리를 건너면 바로 신흥사가 보인다. 이후 본격적으로 산에 오를 예정이라면 등산 전 여유롭게 사찰을 돌아보며 마음을 가다듬는 것도 좋겠다.
각국의 언어로 쓰인 봉헌 기와.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 불교권 국가 관광객들의 흔적이 있어 이색적이다.
푸른 바다와 기암괴석이 웅장한 외설악이 남성적이라면 계곡과 숲이 어우러진 내설악은 여성적이다. 가을 가뭄에 말라붙은 계곡이 아쉬웠지만 낙엽 지는 산사를 천천히 걸으니 시간이 더디 가는 것 같다.
길가에서 사마귀를 발견하고는 주변 환경에 따라 몸 색이 변하는 자연의 이치를 배우기도 한다.
어느덧 다다른 사천왕문, 신흥사 입구.
이제 막 낙엽을 떨구기 시작한 오래된 은행나무가 우리를 반긴다. 어렵게 만났기에 더욱 반갑고 귀한 단풍. 기와에 내려앉은 모습이 아름다워 한참을 서서 봤다.
아이는 커가고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함께 할 수 있는 지금이 소중할 뿐.
Photo by 스티브
한 폭의 그림같은 신흥사 전경. 신흥사는 신라시대 진덕여왕에 지어졌으나 여러번 소실되어 조선시대에 다시 중건했다고 한다. 중건 당시 신의 계시로 스님 세 분이 같은 꿈을 꾸어 지은 절이라해서 '신흥사'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하는데, 역사적 사실이나 의미를 떠나 산세 좋은 설악산에 자리한 절의 풍경이 참 좋다. 치장에 쓰인 오방색도 알록달록 단풍과 닮았다.
신흥사의 대웅전. 종교를 떠나 무언가를 간절히 기원하는 사람들로 가득찬 불당의 모습은 언제나 경건하고 평화롭다.
고즈넉한 산사를 뒤로하고 되돌아 가는 길.
해가 드니 단풍색이 더욱 짙어진다.
Photo by 스티브
이렇게 또 한번 단풍의 계절을 보낸다. 찬란했던 단풍도 이제 곧 말라 바스러지고 거름으로 돌아가 다시 새로운 생명을 피워내겠지. 붉게 물든 설악산에서 단풍잎 한 장을 주워 수첩에 끼워 넣으며... 나는 그렇게 아쉬운 가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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