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의 어느 멋진 날, 가을로 물드는 여의도 공원 산책
- 센티멘탈 여행기/한국 구석구석
- 2015. 10. 27. 10:53
가을비에 하늘을 자욱하게 덮고 있던 미세먼지가 걷히면서 맑고 쾌청한 가을 하늘이 모습을 드러냈다. 뿌연 창문 너머로 곱게 물드는 단풍을 바라보며 혹여나 가을을 그냥 보낼까봐 전정긍긍하기를 며칠째. 날이 개었다는 소식이 들리자마자 가까운 여의도 공원으로 뛰쳐 나왔다.
기상청에서는 서울시내 단풍이 북한산은 이달 27일쯤, 도심지역은 11월 초순에 절정을 이룰 것으로 전망했다.
주말 뉴스에 계속 가을 산의 모습이 보여 내심 여의도 단풍도 다 들어버린 것이 아닐까 걱정했는데, 막상 나와보니 공원의 나무들은 이제야 조금씩 물들어 가고 있었다.
잔디 위에 자리를 깔고, 집에서 싸온 김밥 도시락과 컵라면 몇 개로 간단히 가을 소풍을 준비해 본다.
남편과 내가 분주히 먹거리를 준비하는 동안, 아이들은 새로운 놀이를 찾아 떠났다.
'아! 아야! 아야!' 아프다고 찡그리면서도 지압보도를 밟으며 신 난 아이들.
체중이 덜 나가서 발바닥도 덜 아플 것 같은데, 아직 굳은 살이 배기지 않아서 그런가?
점심을 먹고 가볍에 공원 산책에 나섰다.
여의도 공원은 1970년대에 이곳에 국회를 세우면서 '여의도 광장'으로 먼저 만들어졌다. 잠시 공항으로 사용되기도 했고, 대규모의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어린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주말에는 자전거나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로 붐비던 곳이다. 시민들이 휴식할 수 있는 현재의 모습으로 재개장한 것은 1999년. 현재 여의도 공원에는 생태연못을 비롯해 한국에서 자라는 나무들만 모아놓은 전통의 숲, 옛 광장의 모습을 한 야외무대, 널찍한 잔디마당 등 여러 구역으로 나눠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공원으로 꾸며져 있다.
내게 여의도 공원은 아련한 추억이 있는 곳이다. 직장생활을 했던 10년간(회현동에 있었던 몇 년을 제외하면) 봄이면 벚꽃으로, 여름이면 시원한 나무 그늘을 찾아, 가을이면 낙엽을, 겨울엔 소복히 쌓인 눈을 밟으러 거의 매일 나왔던 곳이기 때문. 출퇴근 길에 보이는 나무의 빛깔을 보며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때로는 같은 직장에 다니던 남편과 비밀 연애를 햇던 곳이기도 하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요즘, 이렇게 옛 모습 그대로 만날 수 있는 곳이 있어, 그 곳이 공원이라,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밖은 고층 건물이 즐비한 오피스 타운이지만, 일단 공원 안에 들어서면 주변의 번잡함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여유로움이 넘친다.
여의도 공원에는 자전거길, 걷는길, 휠체어길 등이 있는데, 그 어떤 길을 따라가도 아름다운 단풍을 즐길 수 있다.
가을을 가장 잘 느끼기 위한 방법은 가을 속으로 들어가는 것. 태양의 기운을 한껏 받은 색색의 나무들 사이로 자전거를 타거나,
커피 한 잔 들고,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가을 정취를 만끽해도 좋다.
때로는 신발을 벗고, 맨발로 낙엽을 밟아 보고,
천천히 가을로 물들어가는 지당연못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겨보기도 하고,
오솔길을 따라 걷다가 고즈넉한 나무그늘 밑에서 그야말로 휴식을 취해 본다.
그리고, 황홀하게 빛나는 가을 하늘을 마주한다.
찬란했던 단풍도 이제 곧 말라 바스러지고 거름으로 돌아가 다시 새로운 생명을 피워내겠지.
아이들과 함께 각자의 방법으로 사그락 대는 낙엽을 밟으며, 우리는 이렇게 또 한번 단풍의 계절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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