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벽 호텔에서 보낸 아찔한 하루, 스페인 론다
- 센티멘탈 여행기/한 달쯤, 스페인
- 2016. 1. 12. 10:55
스페인 한 달 여행이 끝난 후,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을 떠올려 보니 '론다'가 떠올랐다.
한 나절이면 전체를 돌아볼 수 있는 작은 도시에서 꽤 오랜 시간을 머물렀기에 추억이 많기도 했지만, 사방이 거친 절벽과 협곡으로 둘러싸인 도시의 경관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돌아보는 곳마다 자연의 경이로움에 놀라고, 그것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위대함에 감탄했던 곳. 오늘은 스페인 말라가 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 그러나 도시보다는 마을이라는 소박한 표현이 더 어울리는 소도시, 론다를 소개한다.
▲ 절벽 위 하얀 건물들이 인상적인 론다의 도시 전경
론다의 상징, 누에보 다리
론다를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18세기 말에 지은 누에보 다리를 보러 이곳에 들른다. 구시가와 신시가를 잇는 이 다리는 스페인 말로 Nuebo, 새롭다(new)는 뜻. 다른 쪽에 이슬람 시대에 지은 구교가 있어서 신교라는 뜻으로 지은 이름일 테지만 누에보 다리는 자체로 론다의 상징이자 절벽과 절벽을 잇는 새로운 절벽이고 구도시와 신도시, 과거와 현재를 잇는 가교역할을 한다.
도시 아래 타호 계곡 맞은편으로는 저 멀리 평야가 이어진다. 누에보 다리 옆에 아래로 내려갈 수 있는 길이 있는데, 론다에서 관광업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곳에서 올리브 농사를 짓는다고. 깎아지른 절벽 위의 도시가 얼핏 '천공의 섬' 같다.
환상적인 경치를 자랑하는 절벽 위 카페
절벽 위에서 보면 아득한 낭떠러지가 아찔하다. 고개를 내밀고 아래를 내려다보면 현기증부터 날 정도. 과달레빈 강에 침식된 대지 위에 우뚝 선 도시는 아래로부터 무려 100m나 떨어져 있다.
그런데 조금만 멀리 시선을 두면 굽이굽이 이어진 협곡이 그야말로 장관이다. 협곡의 절벽면 바로 위에는 호텔과 카페가 즐비하고, 관광객들은 굳이 전망대나 뷰포인트를 찾아 높이 오르지 않아도, 손쉽게 이 환상적인 경치를 즐길 수 있다. 석양이 지는 론다에서의 황홀한 저녁은 남녀노소 즐길 수 있는 모두의 것~!
안달루시아 지방 특유의 붉은 지붕을 얹은 하얀 집과 푸른 하늘, 아찔한 계곡과 평야가 이루는 독특한 경관은 너무나 아름다워 비현실적이기까지 하다. 헤밍웨이가 마지막 생을 보내기 위해 찾았던 곳이라니, 과연 고개가 끄덕여진다.
론다 파라도르에서 보낸 아찔한 하룻밤
사실 스페인에서 론다는 누에보 다리와 투우장을 중심으로 한나절 정도 보고 거쳐가는 코스로 알려졌다. 그러나 론다는 그렇게 스쳐보기에는 너무 아까운 곳이다. 적어도 하룻밤의 일정을 투자해 절벽 위에 아찔하게 지어진 고성에서 묵어봐야 한다.
스페인어로 '휴식처'를 뜻하는 파라도르(Parador)는 국가가 직영하는 호텔 체인이다. 주로 각 지역의 중심이 되는 고성과 수도원의 내부를 현대식 호텔로 개조하는데, 가격이 꽤 비싼 편이다. 그래도 역사적인 장소에서 숙박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다양한 볼거리도 경험할 수 있으니 스페인 여행을 계획한다면 꼭 한번 묵어보기를 추천한다.
특히 론다 파라도르는 이곳의 랜드마크인 누에보다리 바로 옆에 있어서 경치가 좋을 뿐 아니라 옛 시청을 리모델링해 어디든 접근성이 좋다.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투우장 중 하나인 론다 투우장(Plaza de Toros de Ronda) 등 걸어서 론다의 주요 명소를 오갈 수 있으니 이만한 위치가 또 어디 있을까? 아담하지만 고풍스러움이 느껴지는 우아한 호텔 자체도 매력적이다.
파라도르 외벽을 따라 헤밍웨이가 걸었던 산책로를 걷다 보면 은은한 하프연주도 들을 수 있다.
운이 좋다면, 파라도르 앞으로 중세 전통 복장을 입고 행진을 하는 론다 지역의 축제, '론다 로만티카(Ronda Romantica)'를 만날 수 있다.
맥주 한잔과 안주를 주문하고 노천 카페에 앉아 즐기던 그 경치, 그 햇살, 그 올리브의 고소함을 잊을 수 없다.
헤밍웨이와 예술가들, 그리고 수많은 여행자를 홀린 매력적인 도시, 론다는 자연과 인간이 함께 만든 위대한 작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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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경련 자유광장(http://www.freedomsquare.co.kr)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