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한 달 여행, 내가 만든 길 위의 요리

고추장만 가져가도 촌스럽다 말하던 내가 밥솥까지 챙기게 될 줄이야...!


아이에게 이유식 먹일 시기가 지나면 더는 음식을 싸지 않아도, 여행 중 음식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줄 알았다. 그러나 26박 28일간의 스페인 렌터카 여행을 준비하며 토종 입맛을 가진 아이들의 먹거리를 준비하다 보니 가방 하나가 음식으로 꽉 찼다. 


아이들 핑계를 대긴 했지만, 28일간 세 끼씩이면 총 84끼, 4인 가족이 매번 매식을 하려면 대강 계산해도 수백만 원이 든다. 아무리 스페인 물가가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저렴하다고 해도 음료, 간식비까지 고려하면 이정도 식비는 장기 여행자에게 큰 부담이다. 게다가 스페인에서는 해가 길어서 하루 다섯 끼를 먹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고 여행의 가장 큰 즐거움인 식도락을 포기할 수는 없다. 스페인에는 먹으러 떠난다는 사람도 있는데, 먹방에 둘째가라면 서러운 우리가 빠질 수 있나. 결국 하루 두 끼는 외식을 하고, 한 끼 정도는 아이들을 챙길 겸, 경비도 절약할 겸 요리를 하기로 했다. 


큰 마음먹고 떠난 스페인 한 달 여행, 그렇게 길 위의 요리는 시작되었다.  




스페인 한 달 여행, 먹거리 준비하기


▲ 누룽지, 볶음김치, 마른 반찬, 삼각김밥 김과 틀, 라면, 즉석밥, 간장, 참기름, 고춧가루, 소금, 설탕, 국수, 즉석 국, 후리가케, 캔 반찬, 된장, 쌈장 등으로 이루어진 한달 여행 먹거리


"쌀은 스페인에도 있을 테니까 안 챙겨도 돼."

"그럼 비상식으로 누룽지를 챙겨갈까?"


하나라도 더 챙기려는 나와 하나라도 더 놓고 가려는 남편 사이에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결국 쌀은 현지에서 사고 대신 여행용 밥솥과 전기라면 포트를 사가는 것으로 타협을 봤다.   


음식은 즉석식품 몇 개와 조미료, 밑반찬 정도만 챙겼다. 그래도 한 달 생활이라 생각하니 계속 꺼내놓은 재료들이 걸렸다. 다행히 떠나기 전날, 친정엄마의 협찬으로 마른 반찬을 챙겨갈 수 있었다. 


[여행 음식 준비 꿀팁]

+ 볶음김치: 생김치는 비행기 기내에서 익으며 팽창해 폭발할 수 있다. 볶아가면 보관기간이 늘고, 터지지 않는다. 

+ 조미료: 간장, 참기름 등 기본적인 조미료를 챙겨가면 현지 재료로도 한식을 조리할 수 있다. 시럽통에 담아 가면 쓰기 편하다.
+ 액체류: 기내 압력 변화에 따라 샐 수 있으니 최대한 남는 공간이 없이 용기에 채우고, 한 번씩 더 포장하는 것이 좋다.




스페인 여행 중 장보기


 바르셀로나 보케리아 시장, 낯선 채소들 사이에서 익숙한 토마토나 고추를 찾아냈을 때의 기쁨이란!


 (왼쪽) 빠에야와 리소토를 즐겨먹는 스페인에는 쌀을 쉽게 구할 수 있다. 빠에야용 쌀은 짧고 통통해 비교적 한국 쌀에 가까운 편. (오른쪽) 즉석에서 하몽을 잘라주는 마트 코너

 

▲ (왼쪽) 마트에서 물을 나르며 한몫하는 둘째군 (오른쪽) 고구마를 발견하고 기뻐하는 첫째양


태양의 나라 스페인, 강렬한 태양만큼이나 농작물도 풍부한 나라. 

시장이나 마트에서 만나는 스페인의 제철 식재료는 여행의 또 다른 싱싱한 즐거움이다. 

낯선 모습, 낯선 이름, 낯설게 진열된 색색의 채소는 우리가 낯선 곳에 와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여행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스페인의 식당 물가는 점심 세트 기준 9~15 유로 선으로 한국보다 비싸다. 하지만 시장 물가는 무척 저렴하다. 특히 쌀(ARROZ)을 먹는 스페인에서는 어느 마트에서나 다양한 브랜드의 쌀을 구할 수 있다. 보통 1Kg씩 팔아 여행 중 구입하기에도 부담 없다.  가격은 1~2유로 선. 고기와 채소, 과일 등 식재료도 한국보다 저렴한 편이다. 대형마트인 까르푸, 메르까도나(Mercadona), 슈퍼 솔(Super Sol) 등이 스페인 곳곳에 있어 장보기도 편리하다.



장바구니 열어보기



▲ 한 달 여행 중 처음으로 마트에서 배추를 만났던 날. 한국에서 가져온 고춧가루를 넣어 만든 겉절이는 그야말로 꿀맛이었다.



바르셀로나에서 시작해 반시계 방향으로 안달루시아 지방을 여행했던 우리는 평균 4일에 한 번씩 숙소를 옮겼다. 따라서 장도 이동 일정에 따라 한 번씩 봤는데, 주로 간편하게 조리할 수 있는 고기와 계란, 날것으로 먹을 수 있는 오이와 토마토, 샐러드용 채소와 제철 과일 등을 샀다. 아이들이 마실 우유와 어른들을 위한 맥주, 즉석에서 잘라주는 하몽과 홈메이드 올리브 절임도 자주 장 봤던 품목들이다. 

   

같은 사진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비슷한 장바구니 내용물, 자세히 보면 소, 양, 돼지고기, 해산물, 하몽(흰 종이봉투) 등 다양하다. 크루즈 캄포, 산미구엘, 무르시아, 알람브라 등 각 지역에서 만나는 스페인 맥주도 완소~!




내맘대로 스페인 여행 요리



 스페인 여행 마지막 날, 삼겹살과 하몽을 곁들인 바르셀로나의 만찬


제목은 '본격 요리'라고 지어봤지만, 사실 여행 요리이니 조리에 시간이 걸리는 것보다 굽거나 삶아 바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주를 이뤘다. 26박 28일의 일정 중 절반은 주방이 없는 호텔에서, 나머지 반은 불과 싱크대를 사용할 수 있는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머물렀기에 그에 맞춰 때로는 신선 식품으로, 때로는 한국에서 가져온 즉석식품으로 음식을 만들었다. 


대부분 아이들을 위해 밥과 반찬을 조리하고, 나와 남편은 하몽과 멜론, 스페인식 문어 샐러드와 빵을 곁들인 퓨전식을 먹었다. 우리가 즐겨 먹었던 요리(?) 몇 가지를 소개한다.



1. 매일매일 고기파티

   

 여행 중엔 역시 아빠가 요리사~!




▲ 한국 마트에서는 구하기 어렵고 비싼 신선한 양 갈비가 한 근에 만 원 정도

지글지글 연기를 피워내며 익어가는 고기는 보기에도 좋고, 맛도 있지만 무엇보다 불만 있으면 가장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 여행 요리엔 제격이다. 특히 스페인 마트에서는 질 좋은 고기를 무척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어 고기 좋아하는 우리에겐 최고의 식재료였다. 마늘과 양파, 채소와 밥을 곁들여 아이들과 함께 소고기에서 양고기까지 매일매일 고기파티를 벌였다. 쌈장만 준비해 가면 다른 반찬이 필요 없는 든든한 한 끼 식사~!



2. 빠에야 재료로 만든 시원한 해물탕


▲ 빠에야 재료로 끓인 시원한 해물탕


빠에야를 즐겨먹는 스페인에서는 해산물도 쉽게 구할 수 있다.  마트에서 빠에야 용으로 손질된 종합 해산물 세트를 사면 조개와 홍합, 오징어, 새우 등 다양한 해산물이 조금씩 들어 있다. 여기에 마늘만 조금 넣고 보글보글 끓이면 시원한 해물탕이 완성~! 물론, 시판 양념을 넣고 스페인 요리를 시도해 봐도 좋다.



3. 간편한 반조리 식품

   

 마트에 진열된 간편 조리 식품

   

 (왼쪽) 아이들이 좋아했던 새우꼬치 (오른쪽) 소스만 뿌려 바로 먹는 문어 샐러드


요리에는 장보기와 조리뿐 아니라 재료 손질, 설거지까지 다양한 과정이 수반된다. 요리가 여행의 즐거움이라고는 하지만, 피곤한 일정 후에 설거지까지 하려면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다. 그럴 땐 반조리 식품을 사와 간단하게 굽거나 섞어 먹는 것도 방법이다. 아이와 어른 모두 좋아했던 반조리식품은 꼬치구이. 특히 올리브유와 마늘에 재운 새우꼬치는 아이들이 한국에 돌아와서도 찾을 만큼 인상적인 맛이었다.


4. 집밥이 생각날 땐, 한식

   

 멸치볶음을 우려(?) 국물을 내고, 주키니호박과 배추 등을 넣은 즉석된장국

     

 (왼쪽)조리도구가 없는 호텔에서 아이들의 끼니를 책임졌던 여행용 밥솥, 압력기능은 없지만 보온도 된다. (오른쪽) 차이니즈 캐비지를만나 반갑게 요리한 겉절이

 (왼쪽) 브랙퍼스트 인 배드를 준비하며, 남편의 모닝 생선전 (오른쪽) 어설프지만 맛은 좋았던 채소전


여행이 길어지면 뜨끈한 한국 음식이 생각나기 마련이다. 처음에는 밥과 즉석반찬으로 해결했지만, 여행 후반부가 되니 요령이 생겨 겉절이에서 수제비까지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음식 중 하나는 생선 전이었다. 여행 중엔 무조건 현지식을 고집하던 남편이 광어 필렛을 사와 밀가루와 계란에 묻혀 곱게 부쳐 아침상을 차려냈던 것. 그날 아침은 아이들이 밥 한 공기씩을 뚝딱 비워냈다. 


5. 다양한 도시락


 (왼쪽) 바르셀로나 몬주익 언덕을 오르며 주먹밥 하나 (오른쪽) 비타민 보충, 과일 도시락

   

▲ 마드리드 마트에서 발견한 일본산 소스를 넣어 만든 돈가스 샌드위치 

 그라나다에서 직접 만든 참치 마요 삼각김밥


렌터카 여행을 하면 차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이 길어지나 점심 식사를 하기 애매할 때가 있다. 어른들은 좀 참으면 되지만 몸집이 작은 아이들은 쉽게 체력이 고갈되기 때문에 간식이 자주 필요하다. 엄마 된 입장에서는 과자와 즉석식품 섭취가 많아지는 여행 중이니 가족의 건강을 위해 각종 도시락을 준비했다. 


삼각김밥은 한국에서부터 김과 틀을 준비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재료의 부피가 크지 않고 만들어 먹는 즐거움도 있어서 아이들이 좋아했다. 돼지고기 필렛을 사와 채소를 넣어 간단히 만든 돈가스 샌드위치, 질 좋은 스페인산 과일 등은 아이들이 좋아했던 영양간식이었다.



먹고 여행하고 사랑한 스페인의 추억



▲ 마을이 한눈에 보이는 옥상 테라스가 인상적이었던 말라가의 아파트 숙소


▲ 며칠간 이곳에서 식사를 하고 빨래를 널며, 이런 곳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꿈을 키우기도 했다.

   

지중해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옥상 테라스에서 매일 식사를 하고, 빨래를 널며 이런 곳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꿈을 키우기도 했다.

여행 요리의 가장 큰 즐거움은 마치 현지인처럼 장을 봐서 생활해 보는 것 아닐까? 

낯선 장소에서 서툴게 장을 보고 함께 조리해서 나눠먹는 즐거움은 유명 음식점의 요리와는 비교할 수 없는 색다른 재미가 있다. 게다가 아이들이 잘 먹고 건강하게 함께 여행할 수 있다면 요리하는 번거로움 쯤이야 감수할 수 있다.


소박하지만 즐거웠던 스페인 여행의 추억. 

아이들의 먹방 사진 몇 장으로 맺음말을 대신한다. 

▲ 그라나다, 알함브라 궁전에서 삼각김밥 도시락을 먹고


▲ (왼쪽) 바르셀로나, 달걀 프라이와 올리브의 새로운 조합을 탐구 중인 둘째 (오른쪽) 마드리드, 빈 그릇은 언제나 엄마를 춤추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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