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아이와 함께 광장으로! 촛불집회 스케치

내가 중학생 때, 우리 학교에는 장구채를 들고 다니는 국사 선생님이 있었다. 

총각 선생님이라 특히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좋았는데, 수업이 재미있었을 뿐 아니라 가끔 세상 돌아가는 얘기도 해 주시고 교탁을 장구삼아 치며 재미있는 노래도 알려 주셨다. 그런데 어느날 부턴가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친구들은 선생님이 '전교조라 짤렸다'고 했다.


당시 TV에서는 연일 전교조 교사에 대한 뉴스가 나왔다. 전교조란 마치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가치 판단이 미성숙한 학생들에게 편향된 정치적 시각을 심어주려는 집단인 것처럼 묘사됐다. 정부는 단순 가담한 선생님들까지 불이익을 주겠다며 으름장을 놓았고, 실제 많은 교사들이 단지 전교조라는 이유만으로 해고를 당했다. 쫓기듯 학교를 떠나는 선생님을 향해 사람들은 '빨갱이'라고 말했다. 



지난 11월 26일 토요일. 벌써 제 5차 촛불 집회.

언제까지 계속될지 모르는 집회에 참여하기 위해 나설 준비를 하며 이제는 얼굴도 가물가물한 그 선생님이 떠올랐다.

'학교는 공부만 하는 곳이 아니라'던 우리편 선생님을 잃었던 나쁜 추억. 

그때 가졌던 두려움과 왠지 모를 울컥하고 미안한 감정도 함께 생각났다.



제대로 알지 못하면 더 큰 불안과 공포가 될 수 있다. 

감정과 의견은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해야 한다.

나는 더 늦기 전에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고 싶었다.


한달 넘도록 쏟아지는 대통령 관련 뉴스를 보고 들으며 느끼는 불안한 기분,

물어도 물어도 시원하지 않고 궁금한 것이 더 많아지는 현상, 

추운 날씨에도 사람들이 광장으로 나가는 이유,

참과 거짓, 옳고 그름, 

그리고 작은 촛불이 가진 큰 힘에 대해.


당장은 아이들이 어려 이해할 수 없는 부분도 있겠지만, 

역사의 현장에서 직접 보고 듣고 이야기하기를 바랬다.



첫 눈이 내리던 지난 토요일 오후, 남편과 나는 아이들의 손을 잡고 지하철을 탔다. 

집회가 열리는 광화문으로 가려고 했으나, 광화문 역은 무정차 통과라, 가까운 시청 역에서 내렸다. 

어둠이 내리면서 눈은 그쳤지만, 날이 꽤 쌀쌀해졌다. 

그래도 지하철에서 내린 사람들은 모두 한 방향으로 향했다.  



광장에 도착한 시각은 6시 쯤. 밖으로 나와 걷다보니 생각보다 춥지 않았다.  

사람들의 체온과 촛불의 온기 때문인지, 장갑을 벗어도 손이 시리지 않았다.  



우리가 밝힌 첫 번째 촛불은 지하철 출구에서 만난 한 아저씨로부터 왔다.

등산복을 입은 중년의 남녀가 불씨가 살아있는 초를 들고 출구로 나가는 사람들을 살피더니 큰 아이에게 건넸던 것. 

아저씨는 '이제 네가 작은 불씨야~!'라는 말을 덧붙였는데 아이는 그 말 뜻을 자꾸만 내게 물었다.



아이가 건네받은 불씨를 우리가 준비한 양초로 옮겼다. 

190만 촛불에 네 개의 촛불을 더했다.



촛불집회에 참여하기 전, 아이에게 대통령이 잘못한 점과 현재의 답답한 상황, 집회와 투표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그때 나는 '국민이 주인이다'와 같은 문구를 프린트하고 있었는데, 설명을 듣고 방으로 사라진 아이는 이내 자신만의 언어로 직접 손피켓을 만들었다. 애니메이션 또봇(애슬론 알파)의 주제가 가사 중 '나쁜 악당은 비켜라'를 '나쁜 대통령은 물러서라!'로 바꿔 표현한 것이라고.

'탄핵'이나 '하야' 보다 훨씬 와닿는 문구였다. 



시간이 지날 수록 광화문과 시청 일대는 인산인해를 이뤘다. 

한 손에 촛불과 피켓을, 다른 한 손에는 아이의 손을 잡고 걸었다.


키가 작은 아이의 촛불이 다른 사람의 가방이나 옷깃에 스치지 않도록 조심하며 걷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그러나 아이를 데리고 걷는 사람들이 꽤 많았고, 아이가 있는 것을 확인한 어른들은 길을 비켜주기도 해서 많이 힘들지는 않았다. 


우리는 길 가장자리를 따라 걸었는데, 중간중간 차량에 설치된 이동식 스크린을 통해 안치환과 양희은의 공연도 볼 수 있었다. 암울한 시국에 촛불을 들고 걸으니 무척 비장한 기분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좋은 노래를 듣고 따라 부를 수 있어 뭉클했다. 나와 비슷한 기분을 느끼는 군중 사이에서 위안을 찾을 수도 있었다. 




▲ 저 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상록수가 시작되자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가 촛불을 들었다.





거리에는 촛불이나 주전부리를 파는 노점도 꽤 있었다. 어디서나, 어떤 상황에서도 이권을 챙기려는 사람들이 있다며 남편과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두 시간 여를 걷다보니 오히려 오뎅 한 꼬치에 몸도 녹이고 허기도 채울 수 있었다. 그래, 천 원 짜리 오뎅에 너무 날을 세우지 말자. 적어도 이 분들은 정당하게 몸을 움직여 돈을 벌고 있지 않은가.  



안치환의 '광야에서'를 따라 부르다가 붉어지기 시작한 눈시울은 거리에 있는 내내 젖어 있었다. 

가슴 속 뜨거운 불덩이는 여전한데... 딱히 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속상했다.
마음은 청와대 앞으로 향했지만, 아무래도 아이들이 우선이라 광화문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두 시간 동안 시청과 청계천 근처를 맴돌았다. 


아... 저 철면피 대통령은 대체 언제까지 비밀의 정원에서 버티고만 있을 것인가.

다시 지하철 역으로 향하며 홀로 조용히 '임을 위한 행진곡'을 읊조렸다.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아이야, 오늘을 기억하렴.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거짓은 참을 이길 수 없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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