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두사 머리의 비밀이 숨어있는 지하궁전

뜻하지 않은 귤하네 공원 일정 탓에 시간이 지체되어 가장 늦게 문 닫는 곳을 물색해 지하궁전을 둘러보기로 했다. 지하궁전은 스파이 영화의 고전, 007 위기일발 (From Russia with Love, 1963)편에 나와 유명해진 곳으로 수백 개의 대리석 기둥이 있는 지하 저수조이다.

트레일러를 보니 제임스 본드가 지하궁전에서 조각배를 타고 대리석 기둥 숲 사이를 스쳐 지나는 장면이 있다. 비밀통로로 숨어들어가 러시아 대사관을 감시하는 장면이라는데, 본드와 조각배라니... 클래식한 멋이 있긴 하지만 좀 어색하다.

자칫 지나치기 쉬운 평범한 지하궁전 입구 - Basilica Cistern (Yerebatan Sarnıcı)

입장료는 10TL (약 8,000원). 이스탄불 대부분의 유적지 입장료가 20TL임을 감안할때 저렴한 편. 입구에서 오디오 가이드를 빌릴 수 있는데 10TL였던 것 같다.

지하궁전은 비잔틴 제국시절 수도의 식수난을 해결하기 위해 아야소피아 성당 옆에 지은 거대한 저수조. 아치형 천장과 대리석 기둥들이 마치 궁전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물 저장량이 무려 8,000톤에 달해 궁전 및 대도시의 주요 식수원이 됐으며 약 천년간 사용되었다고 한다. 336개나 되는 기둥들은 모두 고대 그리스 신전에서 가져왔다는데, 각지에서 공수해온 기둥들은 저마다 독특한 조각과 특징을 가지고 있다. 
  
길게 늘어선 대리석 기둥 사이로 내부를 둘러볼 수 있도록 나무 통로가 만들어져 있다. (좌) 돌기둥을 가져오기 위해 희생한 인부들의 눈물을 상징한다는 돌기둥(우). 유난히 초록 물때가 많이 낀 이 기둥은 항상 축축하게 젖어있다.  

저수조의 끝 부분에 다다르면 대리석 기둥 아래 거꾸로 처박힌 두 개의 메두사 머리를 만날 수 있다. 물에 잠긴 메두사의 머리와 이를 거꾸로 비추는 조명, 습기 찬 실내 기운이 한데 어우러져 음산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 기둥에는 두 개의 전설이 얽혀 있다고 하는데, 오디오 가이드에서 음악과 함께 흘러나오는 설명은 마치 영화 한편을 보는듯 상상력을 자극했다. (짠이아빠님께서 이 전설이 영화 '타이탄'의 메인 스토리라고 하셔서 추가합니다.^^ 영화에 신전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다는데, 꼭 봐야겠습니다.) 
 
메두사의 기둥에 얽힌 전설
가장 잘 알려진 전설은 메두사와 페르수스의 비극적인 사랑. 검은 눈과 긴 머리, 매력적인 몸매를 겸비한 메두사는 지하세계에 사는 고르곤 자매 세 명 중 가장 아름다운 괴물. 그녀는 제우스의 아들 페르수스와 사랑에 빠졌는데 그녀를 질투한 아테네 여신이 메두사의 머리카락을 모두 뱀으로 만들었다. 그때부터 그녀와 시선을 마주치는 사람들은 모두 돌이 되었다고. 후에 페르수스는 그녀의 목을 베 메두사의 힘을 갖게 됐고 그로인해 영웅이 될 수 있었다. 비운의 여인 메두사. 돌기둥 아래 깔린 메두사의 머리가 옆으로, 또는 거꾸로 놓인 이유는 시선을 바로 마주치지 않기 위함이라고 한다.

또 다른 전설에 의하면 저주받은 메두사가 거울을 보고 자신을 돌로 변하게 했다고 한다. 이를 조각가가 태양이 비추는 각도에 따라 몇 가지 형태의 메두사 머리를 조각해 기둥에 얹었다고 한다.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지하궁전에서는 매해 여름 음악회를 열기도 한다는데, 그리스 신화의 전설이 얽힌 대리석 기둥 숲속에서 듣는 음악은 왠지 더 시원하게 느껴질 것 같다.

... 그러나 가뜩이나 쌀쌀한 날씨에 지하세계 탐방으로 오싹해진 우리는 서둘러 지하궁전을 빠져나와 근처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좌식 테이블에 올라앉아 쿠션에 등을 기댄채 설탕을 세 개쯤 넣은 진한 터키시 커피 한잔으로 몸을 녹여본다. 날은 이미 어둑해지고 있었다.


[Tip]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스탄불 구시가지의 액기스를 놓치고 싶지 않다면 미리 시각을 확인하자. 동절기에는 보통 1~2시간 일찍 폐관하는 곳이 많다. 2010년 3월 현재 참고했던 완소 시각표를 링크한다.
>> 터키 이스탄불 주요 유적지 입장료 및 시각표, 휴관일 총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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