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데워 먹으면 뇌기능 파괴? '전자레인지 괴담'의 진실
- 소셜 미디어 단상
- 2012. 4. 5. 12:33
최근 엄마들이 모이는 포털사이트 육아/교육 카페에서 이슈가 되고있는 주제가 하나 있다. 바로 '전자레인지를 쓰면 안되는 10가지 이유'. '물을 전자레인지에 끓인후, 식혀서 화분에 주면 어떻게 될까?' 로 시작되는 이 글은 전자레인지의 유해성을 알리는 내용으로 인터넷 뿐 아니라 카카오톡과 SNS를 통해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호기심에 내용을 읽어보니 간담이 서늘하다. 나도 진아에게 우유나 간식을 데워줄때 수시로 전자레인지를 사용하는데, 이 말이 사실이라면 당장에라도 전자레인지를 갖다 버려야 하는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자레인지를 쓰면 안되는 10가지 이유. 요약하면 이렇다.
전자레인지로 계속 물을 끓이거나 음식을 익혀 먹을 경우,
1. 전자파로 익힌 음식이 뇌기능을 파괴한다.
2. 성 호르몬의 분비를 멈추게 한다.
3. 전자레인지에 의해 생겨난 알 수 없는 부산물이 체내에 축척된다.
4. 축척된 부산물이 신체에 악영향을 준다.
5. 영양소들이 변형돼 몸이 분해할 수 없는 상태로 흡수된다.
6. 야채를 전자레인지에 익히면 암을 유발하는 괴물질을 만든다.
7. 위암 또는 소장암을 유발시킨다
8. 혈액암 유발물질을 만든다
9. 면역시스템을 파괴한다
10. 기억력 감퇴, 집중력 저하, 정서 불안을 야기하고 지적 능력을 감퇴시킨다
내용에 따르면 음식에 화기나 열기를 가하는 과정에서는 음식의 분자가 바뀌지 않지만 전자파가 대신할 경우 음식 분자 구조가 왜곡된다고 한다. 유전자를 조작할때도 전자파를 이용하니 왜곡된 분자는 좋을리 없다는 것이다. 또 이 글에서는 의학저널에 발표된 논문을 인용, 전자렌인지로 데운 유아용 우유에서 전이아미노산이 무영양 상태로 전환되는 현상을 지적했다. 스위스, 러시아 등 다양한 국가의 임상연구와 실험을 예로 들어가며 전자레인지의 유해성에 대한 가설을 뒷받침 했다.
전자레인지로 데운 혈액을 수혈받은 환자가 사망했다던지, 전자레인지로 데운 음식에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진다던지, 러시아 (구 소련)에서 전자레인지가 처음 나왔을때 무기한 판매 중지됐던 사건이며 미국 상류층에서는 전자레인지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읽다보니 점점 패닉에 빠졌다. 언급된 사례중 가장 무서운 것은 전자레인지로 끓인 물로 식물을 키웠더니 천천히 죽어가더라는 것. 마찬가지로 전자레인지로 끓인 물로 커피를 타 먹거나 우유를 데워 먹으면 사람의 미래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게시물에 달린 댓글에는 그동안 아기의 이유식을 데워 죄책감을 느낀다는 사람에서부터 벌써 전자레인지를 갖다 버렸다는 사람, 광파오븐도 해당되는것 아니냐는 걱정의 글까지 이어졌다.
'전자레인지 괴담', 과연 진짜일까?
전자파가 인체에 유해한건 알고 있었지만 이정도 일줄은 몰랐다. 자료를 찾아보니 '전자레인지는 음식을 화나게 한다'라는 기사가 보인다. 2008년 기사이긴 하지만 한겨레 21에 실린 컬럼이고, 저자가 '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이라는 베스트 셀러의 작가이기에 (이 책도 좀 무시무시하다.) 의심의 여지가 없어보였다.
그런데 이 난리법석에 전자레인지 제조업체에서는 왜 가만히 있는걸까? 전자회사 상품기획팀에 근무하는 남편에게 따지듯 물었다. 그가 코웃음을 치며 내놓은 답변은 이것.
다시보기> http://tv.ichannela.com/culture/xfile/vod/3/0400000000/20120331/45171803/2
며칠전 채널A에서 방영된 '이영돈 PD의 먹거리 X-파일'이라는 탐사 보도 프로에서 전자레인지 괴담에 대해 심층 취재를 했단다. 다시보기를 통해 방송을 보니 괴담에 언급된 10가지 내용에 대해 조목조목 검증을 하고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자레인지 괴담은 성립 불가!
1. 괴담의 내용처럼 화분실험을 하고 있는 사람을 직접 찾아갔다. 그는 괴담이 돌던 작년부터 수돗물을 주고 키우던 화분에 전자레인지에 데운 물을 주기 시작했단다. 그런데 화초는 현재 잘 자라고 있다. 그가 키운 파는 심지어 꽃까지 피웠다. PD는 직접 전자레인지에 물을 끓여 식힌후 실험을 하기도 했다. 결과는 괴담과 달랐다. 전자레인지로는 분자의 변형을 줄 수 없다는 것도 확인했다.
2. '전자레인지에 데운 우유가 위험한지' 확인하기 위해 우유와 분유를 각각 전자레인지로 데웠을때, 영양소의 변화가 있는지 봤다. 또 '전자레인지로 데친 채소는 콜레스테롤이 증가한다'는 가설을 확인하기 위해 시금치를 넣어 끓여봤다. 결과는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의 3대 영양소는 거의 차이가 없고, 콜레스테롤 수치는 아예 검출이 되지 않았다. 원래 채소에는 콜레스테롤이 거의 없다고 한다. 생성이 된다면 이거야 말로 대박 특허감이라는것. 우유와 분유 역시 영양소의 차이는 거의 없고, 콜레스테롤 수치는 오히려 낮아졌다. 30~40도의 열을 가해 음식을 데울 경우에는 구조적, 화학적 변화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3. 암 유발을 한다는 가설에 대해서는 단백질과 지방이 많은 육류에 오랜시간 열을 가할 경우, 발암물질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그런데 괴담과는 달리 전자레인지에 데우면 오히려 발암물질 생성을 줄일 수 있다. 냉동된 고기를 전자레인지에 해동시킨 후 구우면 오히려 몸에 더 좋다고 한다. 해동할때 나오는 육즙을 버린 후에 조리를 하면 발암물질을 생성을 억제할 수 있단다.
방송은 이 모든 가설과 이야기는 전자레인지의 전자파가 아닌 '방사선'일때 가능하다는 사실도 덧붙였다.
'괴담'은 돌고 돈다.
크게 이슈가 되지 않아서 그렇지 2008년에도, 2010년에도 같은 괴담이 돌았다. 마치 '선풍기 괴담 (밀폐공간에서 선풍기를 틀고 자면 사망한다는 괴담. 사실이 아니며 외국에서는 FAN DEATH라는 명칭으로 한국 괴담으로 불리우고 있다.)'처럼 전자레인지 괴담이 주기적으로 돌고 있다.
관련 검색을 해보니 2010년에 올라온 '전자레인지 괴담 첨삭지도'라는 글이 눈에 띄었다. 이 글은 위에 언급한 전자레인지를 사용하면 안되는 이유에 역시 조목조목 반박을 하고 있다. 블로그를 살펴보니 운영자가 바이오 공학을 연구하는 대학 교수다. 꽤 오랫동안 관련분야에 대해 심도 있는 포스팅을 해왔고, 경향신문 <과학오디세이>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 것을 보니 신뢰할만 한것 같다.
첨삭지도의 결론만 발췌/ 요약하면 이렇다.
이 블로그에 가장 최근에 올라온 포스팅은 전자레인지 괴담, 게임 셋! 이라는 글이다. 남편이 얘기한 '이영돈 PD의 먹거리 X-파일'에 대한 언급이다. 이 보도로 전자레인지 괴담은 더이상 언급할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그밖에 2008년부터 올라온 아래와 같은 글의 내용이 이 괴담의 터무니 없음을 뒷받침 하고 있다.
· 전자레인지 괴담. 근거는 있을까요?
· 전자파의 위해성 : 휴대전화와 전자레인지
· 전자레인지는 음식을 화나게 하지 않고 안전하게 한다?
· 전자레인지 괴담 첨삭지도
· 전자레인지로 끓인 물과 식물 성장
맺으며...
터무니 없는 괴담이 이렇게까지 퍼지게 된데는 확실히 수다떨기 좋아하는 엄마들의 입소문이 문제였다. 카카오톡이나 SNS를 통해 검증되지 않은 사실이 일파만파 공유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엄마들을 불안하게 만든 언론에도 책임이 있다. 괴담 사건의 발단으로 보이는 한겨레 21 기사를 필두로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자레인지 괴담에 대한 가십성 기사가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괴담의 사실여부를 확인하려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심지어는 사실인것 처럼 포장했기에 그 글을 보는 사람들의 불안감은 더 커져만 갔다. 흥미거리도 좋지만 내 아이와 가족의 먹거리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사안이니만큼 기사 발행 전, 최소한의 팩트 확인을 해보려는 노력을 했어야 하는것 아닌가 아쉽기만 하다.
혹시라도 아직, 전자레인지 괴담이 사실일거라 믿고 계시는 분이 있다면, 3월 30일에 방송된 '이영돈 PD의 먹거리 X-파일' 8회를 꼭 다시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