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치 여행을 위한 '하루 30분 그리기'
- 30분 그리기
- 2012. 4. 20. 11:14
올해 목표 중 하나인 '스케치 여행'을 위한 하루 30분 그리기를 시작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 대학시절 전공까지 했지만,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붓을 멀리 한지 10여 년. 스케치 여행은 매번 계획을 세웠다가 그림 그릴 시간에 더 많은 것을 보겠다는 이유로, 재료를 챙겨 가기 거추장스럽다는 이유로, 손을 놓은 지 너무 오래됐다는 이유로 번번이 포기하곤 했었다.
뭔가 여유롭지 않은 일정에서 손쉽게 그리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생각해 낸 것아 바로 크로키. 하지만 10분 이내에 사물의 특징을 잡아 그림을 완성해야 하는 크로키는 현재의 내 수준에서는 무리라고 판단됐다. 그렇다면 10분이 아니라 30분이면 어떨까. 일단 사물을 찬찬히 관찰하며 그리는 것부터 시작하면, 어느 순간 그리는 것에 익숙해지고, 습관이 되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부담없이 스케치 여행을 떠날 수 있지 않을까. 문득 딸아이를 위해 대량 구매해 놓은 스케치북과 연필이 생각났다.
4월 17일. 스케치 여행을 위한 첫 습작
처음으로 그림을 그렸다. 첫 습작은 아버지를 모델로 사진을 찍는 남편의 모습. 마침 모니터에 지난 변산여행 사진을 띄워놓고 인화할 사진을 고르던 중이라 책상 모서리에 비스듬히 앉아 모니터를 보고 그리기 시작했다.
4월 18일. 캐나다를 추억하며
전날 올린 그림을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어 용기를 냈다. 마침 이날은 캐나다 끝발원정대 5기 최종선발자 발표일이었기에 주제를 캐나다로 잡았다. 지난가을에 주워 잘 말려둔 아기 단풍잎이 이렇게 쓰일 줄이야. ㅎㅎ
4월 19일. 상수동 벚꽃 엔딩
며칠 새 벚꽃이 다 떨어졌다. 바람이 불 때마다 조금씩 흩날리는 벚꽃이 아쉬워 휴대폰으로 찍어두었다가 그려봤다. 꽃잎의 색감을 표현하고 싶어 창고에 처박아 두었던 화구박스를 꺼냈는데, 열어보니 물감은 없고, 36색 TOMBOW 색연필이 들어있었다. 원하던 수채화의 느낌은 낼 수 없었지만 유성이라 발색이 좋고, 무엇보다 따로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되니 일단 애용해주기로 했다.
그린 지 3일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날그날 관심 가는 소재를 매일 그리다보니 점점 그림일기가 되어가는 것 같아 재밌다.
꾸준히 그리기 위해 소소한 원칙도 정해봤다.
'하루 30분 그리기'의 다섯 가지 원칙
2. 그리는 시간은 30분. 30분 안에 마무리 하고, 혹시 완성하지 못해도 손을 놓는다.
3. 소재는 주변에서, 될 수 있으면 사진보다는 실물을 보고.
4. 그리기 위한 재료는 어떤 것이라도 좋지만 일단 연필이 기본.
5. 그날 그린 그림은 휴대폰으로 찍어 페이스북에 업로드.
그날 그림을 휴대폰으로 찍어 페이스북에 업로드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숙제검사'에 있다. 게으르고 꾸준하지 못한 내 성격상 뭔가 부담이 있어야 거르지 않을 것 같아서다. 두 번째는 페이스북에 올리면 '좋아요'나 댓글로 의견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칭찬과 격려는 고래도 춤추게 한다니 더욱 그리고 싶어지지 않을까? 물론 비판도 발전을 위한 밑거름이 될 테니 환영. 카메라가 아닌 휴대폰으로 찍는 이유는 번거롭기도 하고, 카메라로 찍어 포토샵으로 리사이즈를 하다 보니 자꾸 보정하고 싶어져서이다. 30분 그리고 10분 보정하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전공자가 다시 그림을 그리는 것이 뭐 대단한 일이겠느냐 싶겠지만, 전공했다는 이유로 오히려 더 쉽게 그리지 못하는 것이 내 솔직한 심정이었다. 유명 작가가 된 선후배가 있으니 손을 얼마나 놓았는지, 10여 년 동안 어떤 다른 일을 하며 살았는지와는 관계없이 뭔가 더 잘 그려야 할 것 같고, 실수하면 안될 것 같아서. 남편 앞에서도 그리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지만 솔직하게 고백하고 시작했으니 이제 점점 나아지는 일만 남았다.
이렇게 그리다보면 언젠가 스케치 여행도 떠날 것이고, 조금 더 인생을 즐기는 나를 만나게 되지 않을까.